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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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면(內北面)

대원리(大元里)

1. 위치

면적 3.33㎦, 인구 32가구 94명 (1999년 말). 본면의 동쪽 끝에 위치하며, 동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서는 청원군 미원면(淸原郡 米院面), 남은 장갑리(長甲里), 신정리(新正里), 북은 괴산군 청천면(槐山郡 靑川面)에 접하여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여동, 체항리, 고점리를 병합하여 대원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고점리(高店里) : 높은 제미 마을 이름이다.
  • 높은제미 : 체메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근처에서 가장 높은 신선봉 산맥이 있음.
  • 여동골(汝洞谷) : 대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뒤에서 동자처럼 생긴 산이 있고, 옛날에는 선녀들이 살았다고도 한다.
  • 체메기(棣項里) : 여동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 산맥이 체 모양으로 생겼으며, 청원군을 넘나드는 길목이 된다.

4. 기타지명

  • 갈골 : 체메기 왼쪽에 있는 골짜기
  • 검단산(儉丹山) : 대원리 여동골 뒷산으로 괴산군과 경계가 됨. 767m로 백제 때, 검단이란 스님이 살았으므로 검단산이라 부른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공부하던 고운암(孤雲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고 있다.
  • 구느돌 : 여동골 참나무쟁이 앞에 있는 들녘으로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 덕다리 하던 곳이라고 한다.
  • 깃대봉 : 여동골 북쪽에 있는 산으로 보은군, 괴산군, 청원군, 상주시 4군의 경계가 되며, 측량시 산정상에 깃대를 꽂았다고 함.
  • 너른 사태골 : 여동골 북쪽 안쪽에 있는 넓은 골짜기
  • 느다리 : 여동골 남쪽에 있는 다리로 신정리와 경계가 된다. ‘널다리’가 늘다리로, 늘다리가 ‘느다리’로 변함.
  • 떡갈목이(德加山) : 여동골 동쪽 석쇠골 끝에 있는 산으로, 보은군, 괴산군, 상주군과 경계가 되는 산이다.
  • 반석골 : 여동골 동남쪽 석쇠골 맞은 편에 있는 골짜기.
  • 번개펀던 : 여동골 북쪽 안골에 있는 버덩.
  • 범마당 : 여동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범이 놀았다고 함. ‘범골’이라고도 한다.
  • 비들목 : 여동골에서 장갑리로 넘어가는 고개.
  • 소삼각(小三角) : 여동골 동쪽에 있는 산으로 측량시 삼각형을 이루는 기점이 되었다고 하며, 소삼각으로 변함.
  • 신선봉(神仙峰) : 대원리 높은 제미 뒷산으로 보은군과 청원군, 괴산군, 3군의 경계가 됨. 백제때 검단(儉丹)과 최치원(崔致遠)이 죽어 신선이 되어 자주 이곳에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연애골 : 여동골 남쪽 병목안 아래에 있는 골짜기.
  • 중골 : 여동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높은 제미와 치메기로 가는 길목임.
  • 참나무 쟁이 : 여동골 입구에 있는 길목으로 참나무가 우거졌다고 하나, 오늘날 참나무는 베어지고 대신 느티나무를 심어 보호하고 있으며 정월 14일 밤에는 마을 사람들이 ‘대동제’를 지내고 있다.
  • 활목재 : 여동에서 경주 상주시 화북면 신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고 함.
  • 황박골 : 여동골 북쪽 안쪽 안에 있는 골짜기.

5. 전설

  • 검단산
    아득한 옛날 검단산에 금빛을한 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금돼지는 몇천년 묵은 것 이어서 온갖 조화를 다 부렸다. 금돼지는 고을 원님이 살고 있는 마을에 사람으로 변하여 나타나 고을 원의 부인을 잡아가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일로 금돼지를 잡기 위해 방을 붙이고 현상금을 걸었으나 조화가 무궁한 금돼지를 잡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이 고을에 부임하려는 원님이 없어 고심하던 중 아주 담력이 세고 힘께나 쓰는 장수 한 사람이 고을 원을 자청하였다.
    원으로 부임한 장수는 꾀를 내어 명주실 오천 발을 구해 오라고 시켜 그 실의 끝을 자기 부인 치마주름 끝에 단단히 매어 놓았다. 한 밤중에 곤히 자던 부인이 밖으로 나가던 것이었다. 원님이 정신을 차리고 명주실을 슬슬 풀어주고 오천 발이 되는 명주실이 더 이상 당겨지지 않자 다음 날 날이 밝자 명주실을 따라가다 보니 검단산 깊은 골짜기 어느 작은 굴안으로 이어져있어 들어가 보니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 굴 안에는 많은 여인들이 잡혀와 있었다. 원은 부인들과 자기 부인을 구하기 위하여 금돼지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사슴 가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고을 원님의 직인 주머니가 사슴 가죽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직인 주머니로 금돼지를 처치하고 자기 아내와 많은 여인들을 구해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수 개월이 지나 원님의 아내는 태기가 있게 되자 금돼지 새끼라고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원님의 간곡한 만류로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신라의 유명한 문장가요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이라는 전설이다.
  • 신선-봉
    옛날 이야기다.
    이 마을에 젊은 나무꾼 한 사람이 도끼를 가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나무를 한참 하다보니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두는지 나무꾼은 도끼를 옆에 두고 정신없이 두 노인의 바둑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가 서산 마루에 걸치자 두 노인의 바둑은 끝났다. 그리고 두 노인은 서로 손을 잡고 하늘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정신을 차리고 옆에 놓아두었던 도끼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갈 양 도끼를 찾아 보았더니 어느 새 도끼자루가 썩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는 온데간데 없고 낯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하도 기가막혀 따져보았더니 자신의 아내는 이미 50년전에 죽고 손자 내외가 아이들과 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무하러 가서 두 노인의 바둑구경을 하는 사이에 100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더라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일이 있은 후부터 바둑을 두던 두 노인은 신선이 된 검단과 최치원이고 신선이 놀다 간 봉우리라 하여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6. 산업, 교통

대부분 밭농사로 고추 밑 담배 인삼재배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산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음. 교통은 용화를 잇는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상주로 화양동 월악계곡을 잇는 교통 요충지이다.
생활권은 상주시 화북면 까지도 보은군이며, 또한 산외면 신정 개발권으로 희망에 부풀어 있는 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