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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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면(馬老面)

원정리(猿汀里)

1. 위치

면적 3.64㎢, 인구 79가구 229명(1999년말), 본면의 동남쪽에 있으며, 동은 세중리(世中里), 서는 오천리(梧川里), 남은 옥천군(沃川郡), 북은 기대리(箕大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마로면의 지역으로서, 원정 최수성(猿亭 崔壽城)이 살았으므로 원정 또는 원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모동(牟洞), 점동(店洞), 월남리(月南里)를 병합하여 원정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모동(보리골, 관리동, 본리골) : 원정 동남쪽에 있는 마을. 우암 송시열이 관리동으로 이름 지었는데, 그 후 현감의 전령문서에 관리동을 속칭한 보리골로 착각하여 모동이라 썼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함.
  • 점동 : 사모바우 동쪽에 있는 마을에 토기점이 있었다고 함.

4. 기타지명

  • 가지골 : 원정에 딸린 골짜기.
  • 가지골돌다리 : 가지골 앞에 있는 돌다리. 원정 최수성이 음양을 맞추어 놓아서 아무리 심한 장마에도 떠내려가지 않는다고 함.
  • 너소 : 보청천에 있는 소. 늘 깊은 물이 고여 있다고 함.
  • 바리봉산 : 점동 남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347m 점동에서 마주 보이는 산봉우리라 하여 바리봉이라고 함.
  • 바른골 : 원정 2리에 있는 골이 바르다고 함.
  • 바우배기산 : 원정 2리에 있는 산으로 바위가 많다고 함.
  • 분무골 : 원정 2리 골짜기로 옛날 대장간이 있었다고 함.
  • 사모바우(帽岩) : 모동 서북쪽에 있는 바위가 사모처럼 생겼다 함.
  • 삼밭골 : 원정 2리 골짜기에 삼밭이 많았는데 수확이 많았음.
  • 상운암(祥雲岩) : 장군봉에 있는 바위로 구름 이름을 딴 것임.
  • 장군봉 : 모동 북쪽 산에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 있다고 함.
  • 최원정 탑 : 탑싸니에 있는 오층석탑으로 최원정이 세웠다고 함.
  • 큰골 : 원정 2리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크다고 함.
  • 탑싼이 :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는데 오층석탑을 탑싼이라고 함.
  • 황개들 : 보청천과 세중천의 합수지점에 있는 들로 침수가 잘 되며,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된다고 함.
  • 흑연광산 : 모동 서남쪽에 있는 광산으로 1917년부터 4년간 일본 사람이 경영하다가 한일 광업주식회사가 불하를 받아 1958년부터 흑연을 캐다가 오늘날 폐광 상태임

5. 문화유적

  • 원정리 사지
    원정리 1리 마을에서 흑연광이 있는 곳으로 1km, 이곳에서 600m 쯤 산정을 향해 올라간 위치에 절터가 있다. 대지 500평에 건평 30평정도의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임야가 되고, 남쪽 산으로 올라가면 탑산석탑이 있다.
  • 강교(矼橋)
    원정리는 원정 최수성이 은거하며 살았다는 곳이라 해서 원정이라 불리웠다. 조선 중종(중종)때, 최수성이 이곳 점동에 은거하고 있던 중 주민들이 마을 앞 내를 건너는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오천에서 세중으로 건너는 여울에 음양석을 택하여 놓았기 때문에 4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요동하지 않는다 함.
  • 원정리 3층 석탑
    원정리 탑산리에 있는 높이 3.68m의 3층 석탑. 충청북도 유헝문화재 제 118호로 지정되었다.
    초층, 2층, 3층의 탑신석은 모두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각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는 소문이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체감이 급격하여 중후한 느낌은 없다. 전체의 형태나 그 조성 수법으로 보아 신라형을 따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2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일제시대 광산을 운영하던 일본사람이 탑에 유물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광부들을 동원하여 탑의 윗층을파손하고 도굴해간 뒤 마을이 불안하였는데 다시 광부와 마을 사람을 동원하여 탑을 복원한 뒤 마을이 무사하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6. 전설

  • 보리 1천 석의 부자가 알거지가 됨.
    옛날 보리 1천석을 하는 부자가 있었는데 어찌나 인심이 사나웠던지 이웃간에 왕래조차 없었다. 하루는 스님이 나타나 시주를 요구하니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스님을 내쫓았다. 스님이 돌아서며 부락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와 돌을 없애면 쌀 1천석은 할수 있을거라고 중얼거리자 그 말을 들은 부자가 즉시 나무를 베고 돌을 치워버렸더니 몇 해 안가서 부자는 알거지가 되어 마을을 떠나게 되고 마을에는 재앙이 끊이질 않았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심고 돌탑을 쌓았더니 재앙이 끝이 나고풍년이 들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