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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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북면(懷北面)

건천리(乾川里)

1. 위치

면적 6.10㎢, 인구 49가구 160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5㎞ 지점으로 면의 동남족에 위치하여 동은 수한면(水汗面), 서는 송평리(松坪里), 남은 회남면(懷南面), 북은 애곡리(艾谷里)와 접하여 있다.


2. 연혁

본래 회인군(懷仁郡) 읍내면(邑內面)의 지역으로서 자갈이 많이 있어서 내가 늘 말라 있으므로 건천(乾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건천리라 해서 회북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가랫-재[마을] 가래재 고개 아래 있는 마을. 건천리 위쪽에 있다하여 ‘상건천’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처음 피난민들이 화전을 개간하고 마을을 이루었다.
  • 공태-원(孔大院)[마을] 건천리의 중심 마을. 조선시대 여행자를 위하여 원(院)을 설치하였던 곳으로 예대원(禮大院)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을동쪽 10리에 있으며 옛날에는 공대원이라 불렀다(在縣東十里古稱孔大院)’라 기록되여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 말기의 매곡성주(昧谷城主) 공직(龔直)이 살았다 하여 공태원(孔台院)이라고 불렀다 함. 청주~회인~보은~상주를 있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 수리-티(車嶺)[마을] 공태원 남동쪽 옛날 수리티고개 아래 있는 마을. 현재 두집만 살고 있다.
  • 아낭-골(安央谷)[마을] 공태원 동북쪽에 있었던 마을. 옛날 아낭사(亞囊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건천리 본 마을도 이 골에 있었다고 함. 현재는 한 집만이 축산을 하며 살고 있음.
  • 여내-골(乃谷)[마을] 공태원 동북쪽에 있었던 마을. 해방 후 피난민들이 화전을 개간하여 살고 있었으나 화전정리시 모두 철거 되었다. 골의 산세가 아름다워 많은 남녀들이 밀회를 즐기던 곳으로 ‘연애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본말은 ‘이에내(乃)골’임.

4. 기타지명

  • 가래재-고개(楸嶺.蘆嶺)[고개] 상건천에서 수한면 차정리로 넘어가는 고개.
  • 가래재-골[골] 상건천 남쪽에 있는 골짜기. 자빠들 위에 있음.
  • 건천-소류지(乾川小溜池)[못] 공태원 동남쪽 아낭골 입구에 있는 소류지.
  • 귀고리-골[골] 상건천 서쪽에 있는 골짜기. 방아실 밑에 있음.
  • 독금-산(獨孤山)[산] 공태원 서쪽에 있는 산. 금이 한 단지 묻혀 있다고 함.
  • 먹뱅이-골(墨方山)[골] 공태원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묘-골[골] 아낭골 밑에 있는 골짜기.
  • 방아-실[산] 상건천 서쪽에 있는 산. 디딜방아처럼 생겼음. 높이 350m.
  • 버드나무-골[골] 여내골 안에 있는 골짜기.
  • 범-골[골] 공태원 남쪽에 있는 골짜기. 범골산 밑에 있음.
  • 범골-산[산] 공태원 남쪽에 있는 산. 위에서 보면 범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함. 높이 262m.
  • 불당-골[골] 아낭골 뒤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이 골안에 아낭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함.
  • 샴-동산[산] 공태원 북쪽에 있는 산. 산밑에 샘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워지고 없음.
  • 선힘-골[골] 수리티재 너머 북쪽으로 있는 골짜기.
  • 수리-티(車嶺)[고개] 수한면과의 경계에 있는 큰 고개. 지형이 수레바퀴처럼 생겼다고 함. 조선시대 청주~상주간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에 있는 고개로 ‘수리’는 ‘높은산이나 봉우리’를 뜻하는 고어로 ‘수리티’는 ‘높은 고개’를 의미하는 것임.
  • 수리티-골[골] 건천소류지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중간부터 골의 방향이 북동쪽으로 휘어져 수리티재로 이어짐.
  • 아낭-골(安央谷)[골] 공태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건천소류지 위에 있으며 ‘아낭골’마을이 있었던 골짜기임.
  • 안-산[산] 공태원 남서쪽에 있는 산.
  • 여내-골(乃谷)[골] 공태원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 자빠-들[골] 상건천 남쪽에 있는 골짜기. 방아실 밑에 있는 골짜기로 귀고리 위쪽에 있음.
  • 작은-범골[골] 공태원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범골 아래에 있음.
  • 질거너미-재(구들티재)[고개] 공태원에서 부수리로 넘어가는 고개. 조선시대 관리나 행인들이 회인현~질거너미재~공태원~수리티재~보은현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음.
  • 찬샘-내기[골] 공태원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공태원과 상건천 사이에 있음.
  • 터-골[골] 상건천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마을이 있었음.
  • 호랑이-골[골] 상건천 남쪽에 있는 골짜기.
  • 혼인-바우[바위] 가래재 서남쪽에 있는 바위. 바위 모습이 우산형으로 생겼으며 길을 가던 남녀가 비를 같이 피하다가 훗날 혼인을 하게 되었다고 함.

5. 문화유산

  • 예대원지(禮大院址)
    회인현(懷仁縣) 동쪽 10리에 있었던 원지(院址)로 지금 공태원 마을이 된다. 공대원(孔大院)이라고도 불렀으며 신라말의 매곡성주(昧谷城主) 공직(龔直)이 살았다 하여 공태원(龔台院)이라고도 하였다. 공직은 신라말의 혼란기에 스스로 매곡성주가 되어 처음에는 후백제의 견훤(甄萱)의 장군이 되었으나 뒤에 고려 왕건(王建)에게 투항하여 대상(大相)이 되었으나 견훤에게 인질로 가 있던 그의 아들 직달(直達)과 금서(金서) 그리고 딸은 견훤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뒤에 좌승(佐丞)으로 죽으니 태조는 정광(正匡)을 추중하고 봉의(奉義)라 시호하였다.
  • 아낭사지(亞囊寺址)
    아낭골 마을의 불당골에 있는 폐사지로 존폐시기와 유래는 알 수 없으며 절터의 흔적을 확인할만한 유구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마을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건천리 본 마을이 원래 이곳에 있었다 한다.
  • 민속
    산제:공태원 마을 뒷산에 있는 돌탑 제단에서 정월 초사흘날에 거행하고 있음.

6. 산업

고추, 참깨, 두류, 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