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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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면(懷南面)

신곡리(新谷里)

1. 위치

면적 1.79㎢, 인구 32가구 89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1.6㎞ 지점인 면의 중앙에 위치하여 동은 용호리(龍湖里)와 판장리(板藏里), 서는 어성리(漁城里), 남은 용호리, 북은 남대문리(南大門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회인군(懷仁郡) 서면(西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읍리(新邑里)와 후곡리(後谷里)와 양중지리(陽中旨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읍과 후곡의 이름을 따서 신곡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뒤에 면 소재지 마을이 되었으나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신곡 1.3리 및 2리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3. 자연마을

  • 뒷-골(後谷)[마을] 영당 서북쪽에 있는 마을.
  • 새-별(新邑里)[마을] 영당 서남쪽에 있었던 마을.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완전 수몰되었음.
  • 양-중지(陽中旨)[마을] 옛 신곡리에서 으뜸되었던 마을. 옛날 이 마을에서 승지 벼슬한 사람이 많이 났다함. 1980년 대청댐 담수로 본 마을은 완전 수몰되고 일부 수몰민들이 매람부리산 동쪽으로 이전하였음.
  • 영당(影堂)[마을] 회남면사무소가 있었던 마을. 송시열(宋時烈) 송환기(宋煥箕) 양 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影堂)이 있었으므로 ‘영당’이라고 불렀음. 영당의 이름인 흥인사(興仁祠)를 떠서 ‘興仁里’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완전 수몰되었음.
  • 장-터[마을] 영당에 딸린 마을 장이 섰었음.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음.
  • 포-전[마을] 양중지 남쪽에 있는 마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음.

4. 기타지명

  • 강판-말[골] 뒷골에서 남대문으로 넘어가는 골짜기. 새앙이라는 식물의 뿌리로 즙을 내어 팔던 마을 뒤에 있는 고개.
  • 까치-고개[고개] 뒷골에서 새별로 넘어가던 고개.
  • 구승-골[골] 양종지 서쪽에 있는 골짜기. 장래에 정승 아홉이 나온다는 골짜기라 함.
  • 논-꼬맹이[고개] 뒷골 동쪽으로 해서 거교 2리로 가는 고갯길. 고개가 작아 붙여진 이름.
  • 뒷-골[골] 뒷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어성고개까지 이어짐.
  • 매람부리-산(楓巖山:138m)[산] 양종지 서쪽에 있는 산. 회인천을 따라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어 금강에 이르렀다. 금강의 바람이 모두 이곳에 쳐 온다. 회남대교 동쪽에 있다.
  • 매-봉[산] 뒷골 동남쪽에 있는 산. 매의 형체를 닮았다 함.
  • 새모-봉[산] 산형이 세모가 났음.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음.
  • 안뫼-골[골] 뒷골 남쪽에 있었던 골짜기.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음.
  • 어부동-고개[고개] 양중지 서쪽에 있는 고개. 회남대교 입구에 있음.
  • 어성-고개[고개] 뒷골에서 어성리로 넘어가는 고개.
  • 영귀-대(詠歸臺)[바위] 영당 북쪽 회인천가에 있던 바위 절벽. 우암(尤庵) 송시열(宋詩烈)이 찾아 놀던 곳이라고 함. 뒤에 우암선생 유상지처라 하여 유상대(遊賞臺)라고도 불렀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음.
  • 장-고개[고개] 뒷골 동북쪽으로 해서 남대문으로 넘어가는 고개
  • 철정이-고개[고개] 새볕에서 양중지로 넘어가는 고개. 큰 무쇠솥을 가지고 넘어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
  • 회남-대교(懷南大橋)[다리] 신곡리에서 사음리로 가는 다리. 1980년 12월 대청호반 위에 놓은 다리로 길이 450m, 너비 10m의 철근콘크리트로 된 다리로 교각의 높이가 57m(상판포함 60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다리임.

5. 문화유적

  • 어필각(御筆閣)
    1756년(영조32)에 왕이 지은 글을 직제학(直提學) 문명구(文命龜)에게 하사한 것을 현판하여 보존하였던 곳.
  • 효열각(孝烈閣))
    1905년(광무9) 효자 양달해(梁達海)와 효열부인 그의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정문으로 1980년 대청댐 담수로 남대문리로 이건하였음.

6. 산업

서비스업, 어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