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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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水汗面)

차정리(車井里)

1. 위치

면적 3.42㎢, 45가구 136명(1999년말). 본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오정리(梧亭里), 서는 회북면, 남은 옥천군, 북은 산척리(山尺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는 회인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수리티 고개 밑이 되므로 수리티 또는 차령(車嶺), 차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후율리(後栗里)를 병합하여 차정리라 해서 보은군 회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수한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구소골:상차정 서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노인들이 모여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하여 구소골이라 하였다고 하나 신빙성이 없고, 지형이 구유처럼 생겨 구수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구소골이 되었음.
  • 밤나무골:원차정 동북쪽에 있는 마을. 밤나무가 많았음.
  • 상차정:→원차경
  • 수리티:→차정리
  • 원차정:차정의 위쪽에 있는 마을
  • 중차정:→밤나무골
  • 차돌배기:수리티 서쪽에 있는 마을. 큰 차돌이 박혀 있음.
  • 차령:→차정리
  • 차정:→차정리

4. 기타지명

  • 가래재:상차정에서 회북면 건천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가래모양으로 길다고 함.
  • 검사골:중차정과 상차정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고려장이 있어 무섭다하여 생긴 이름
  • 구밤낭골:중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 밤나무가 많았다 함.
  • 구소골: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노성리 점볼까지 4㎞정도 이어짐.
  • 논골:수리티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논이 있었다고 함.
  • 대밭들:조리대가 자라는 들이라고하여 대밭들이라고 함.
  • 덤박골:중차정과 하차정 사이에 있는 골짜기. 큰바위 밑에 둠벙이 잇었는데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며 섬겼다고 함.
  • 도덕골: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도둑들이 자주 출몰하여 거주하였다 함.
  • 등내골:도덕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떡갈박골: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자기. 떡갈나무가 많음.
  • 무성산:상차정 북쪽에 있는 산.
  • 밭굴멍:수리티에서 북쪽으로 있는 골짜기. 밭이 있다고 함.
  • 산지당:상차정 서남쪽에 있는 산. 산제당이 있고, 지금도 산제를 매년 지낸다고 함.
  • 삼박골: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산삼이 많이 났다고 함.
  • 서낭골:수리티재 정상에서 북쪽으로 있는 골짜기. 인가가 있었으나 독립가호 정리시 철거되었음.
  • 수리티재:하차정에서 회북면 건천리로 가는 재. 임진왜란 때 조중봉 선생이 지휘하여 석전으로 왜병을 전멸시킨 곳으로 경사가 심해 수레가 다닐수 없었다 함. ‘수리’는 ‘높다’는 뜻으로 ‘높은고개’라는 의미를 지님.
  • 시루봉:중차정 서쪽에 있는 산. 시루처럼 생겼다 함.
  • 여수밭골:상차정 앞, 개울가에 있는 들.
  • 웃삼밭골:상차정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삼밭골 위쪽에 있음.
  • 직골:상차정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집이 있었음.
  • 진골:수리티 뒤의 긴 골짜기. 골이 깊다고 함.
  • 차돌배기:차돌배기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차령티:→수리티재
  • 텃논:마을 앞에 있는 논.
  • 토광:상차정 남쪽에 있는 소류지.
  • 특내골:골이 높낮이에 따라 차례대로 있다고 함.
  • 푯대봉:수리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측량시 푯대를 꽂았다고 함. 옛날에 봉화를 올려 마을 사이에 연락을 하였다고 하여 신호봉이라고도 함.
  • 하마비:수리티 마을 입구에 있는 비. 조중봉 선생이 항상 말을 이곳에 세워 두었다고 함.
  • 한배미논:차정리에 있는 논. 한 마지기짜리 논이라고하여 붙인 이름.
  • 호박재:수리티에서 동정리 두푸골로 넘어가는 고개. 호박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겼다고 함.
  • 회인땅:원차정 이 전에는 회인군 동면 지역이었으므로 회인땅이라고 부름.

5. 문화유적

  • 교서비(敎書碑)
    차정리마을 앞에는 5백년이 넘어보이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다 조중봉 선생이 말을 매어놓았다고 하며, 그 옆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조중봉선생을 기리는 후율사(後栗祠)가 있다. 후율사 안에 있는 비가 바로 교서비이다.
  • 후율사(後栗祠)
    차정리에 있는 사당. 임진왜란때 금산에서 장렬한 죽음을 한 중봉 조현과 함께 순절한 의병 박춘무, 김절,조완기 등 20인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로서 조선 숙종때 보은, 옥천, 청주, 회인의 선비들이 그 충성스러운 영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처음 왜적과 만나 석전으로 승리한 곳에 세웠다.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한 것을 1928년에 복건하였다. 옆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교서각이 있다. 지방문화재 제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