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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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면(三升面)

원남리(元南里)

1. 위치

면적 2.51㎢, 인구 368가구 1,075명(1999년말)
면 소재지 마을로 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내망리(內望里), 서는 서원리(西原里), 남은 옥천군(沃川郡), 북은 탄금리(彈金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의 지역으로 고려시대부터 원암역(元巖驛)이 설치되어 워내미 또는 원암(元巖)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촌(松村), 중촌(中村), 월촌(越村), 상원암(上元岩), 익동(益洞), 온야(溫夜), 시촌(市村) 일부와 옥천군(沃川郡) 안남면(安南面)의 오산리(五山里)일부를 병합하여 원남리(원남리)라 하여 삼승면(三升面)에 편입되었다. 1989년 옥천군(沃川郡) 안내면(安內面) 오덕리(五德里) 일부를 다시 병합하였다.


3. 자연마을

  • 남산-촌(南山村)[마을] 온배미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상-원암(上元巖)[마을] 워내미 서북쪽에 있는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있으며 원남 3리임. 옛상원암리임.
  • 샛-골(益洞)[마을] 온배미 동쪽에 있는 마을. 옛 익동마을임.
  • 송방-뜸(松村, 두찜매)[마을] 워내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 전에 두집만 있었다고 함. 다른 지역보다 송바위처럼 올라보이는 곳이라 하여 송방이라 함. 옛 송촌 마을임.
  • 안-말[마을] 워내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 보은~영동간 국도 19호선과 안내~관기간 지방도 502호선이 교차되는 네거리 동북쪽 마을로 옛 중촌의 일부로 원남 1리임
  • 온-배미(溫夜)[마을] 워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지형적으로 밤에도 따뜻한 곳이라 함. 옛온야리 마을임.
  • 워내미(元南)[마을] 원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원남리가 변한 이름으로 국도 19호선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 중촌이며 지방도 502호선을 경계로 원남 1리와 2리로 구분된다.
  • 월-촌(越村)[마을] 워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시냇물 건너 상원암 사이에 있는 옛 월촌마을임.
  • 장-터[마을] 시장이 있는 마을로 옛 시촌(市村) 마을로 원남 2리임.

4. 기타지명

  • 가재-골[골] 워내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재가 많았다 함.
  • 공심이-골[골] 워내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삼승면사무소 뒤에 있음.
  • 바우-배기[들] 샛골 동쪽에 있는 들. 큰 바위가 박혀 있음.
  • 바우배기-바우[바위] 바우배기에 있는 큰 바위.
  • 삼밭-골[들] 상원암 북쪽에 있는 들. 옛날에 삼밭이 있었다 함. 오리골 위에 있음.
  • 삿갓-들[들] 워내미 서쪽에 있는 들. 칼밭골샘이 유명해서 가마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삿갓처럼 보였다 함. 중간에 면사무소가 있음.
  • 새터-골[골] 온배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상여-바우[바위] 상원암 북쪽 금적산 중턱에 있는 바위. 모양이 상여처럼 생겼다.
  • 서낭-골[골] 상원암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선지-들[들] 원남 북쪽에 있는 들.
  • 안-산(案山)[산] 상원암 남쪽에 있는 산. 높이 191m
  • 여수-골[골] 사원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오리-골[골] 상원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오리나무가 많았음.
  • 오미기-들[들] 장터 동쪽에 있는 들. 오덕천 건너 내망리에 있음.
  • 온배미-고개[고개] 온배미에서 샛골로 넘어가는 고개
  • 온배미-골[골] 온배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절-골[골] 상원암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음.
  • 정구지-소류지[못] 원남 북쪽에 있는 못
  • 정구지구렁-골[골] 원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사람이 많이 살던 곳으로 구릉지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음. 정구지 소류지 동쪽에 있음.
  • 칼-바우[바위] 칼박골에 있는 바위. 모양이 칼처럼 생겼음.
  • 칼박-골[골] 상원암 남쪽에 있는 골짜기. 칼바위가 있음.
  • 칼박골-샘[샘] 칼바우 밑에 있는 샘
  • 텃-골[골] 상원암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 통수-골[골] 상원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퉁소가 있었음.
  • 통수골-고개[고개] 샛골에서 상원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5. 문화유산

  • 원암역지(元巖驛址)
    경산부도(京山府道)에 속한 역참으로 조선시대에는율봉도(栗峯道) 소속이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난으로 복주(福州:현재의 안동)에 몽진하였다가 평정된 뒤 환도길에 이 역에 거동한 기록이 남아있다.
    1362년(공민왕 11) 8월 병술(丙戌)에 이 역에 행차하고 정해(丁亥)에 속리산에 거동했다가 이튿날 큰 비가 와서 다시 이 역으로 돌아와 10일간 머물렀다. 이 때 늙은 대신 7인이 잔치를 베풀고 “연소창화(燕巢唱和)”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은 것이 “칠노연집시(七老讌集時)”가 남아 있는데 이색(李穡)이 서문을 썼다. 칠노란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환(尹桓),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암(李嵒), 회산부원군(檜山府院君), 황석기(黃石寄),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 홍원철(洪元哲), 수춘군(壽椿君) 이수산(李壽山), 계성군(啓城君) 왕재(王榟)다.
    대마(大馬) 1필, 기마(騎馬) 4필, 복마(卜馬) 5필과 역리(驛吏) 30명, 노(奴) 15명이 근무하던 곳이다.
  • 우암송선생 4형제 거려유허비(尤庵宋先生四兄弟居廬遺墟碑)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형제들이 병자호란때 일시 와서 살았던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2년에 상원암에 건립한 비
  • 감역송공병례선덕불망비(監役宋公秉禮善德不忘碑)
    빈민구휼에 힘쓴 송병례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1907년에 세운 비
  • 화광사(華光寺)
    상원암에 있는 대한불교 불입종 본사로 1960년에 창건되었다. 경내에 스리랑카에서 구해온 사리를 봉안한 석가세존진신사리탑(釋迦世尊眞身舍利塔)이 있는데 1992년에 건립한 것이다.
  • 법화사(法華寺)
    남산촌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로 1969년에 창건되었다.
  • 민속
    용왕제 : 매년 정월 원남 1리 주차장옆 신목(神木:느티나무, 버드나무)아래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올리고 있다.

6. 집성

  • 은진송씨(恩津宋氏)
    예로부터 은진송씨 집성촌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현재는 상원암에 장성공파(長城公派) 후손 10여호가 거주하고 있을 뿐임.

7. 산업

  • 쌀, 과수, 고추, 서비스업, 상업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대동물산(주) 원남공장 원남리 150-13 청결미(쌀) 24

8. 기타

상원암 입구에 마을자랑비를 1992년에 건립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