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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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승면(三升面)

둔덕리(屯德里)

1. 위치

면적 2.13㎢, 인구 52가구 165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북쪽 8㎞ 지점인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과 북은 보은읍(報恩邑), 서는 수한면(水汗面), 남은 선곡리(仙谷里)와 송죽리(松竹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서니면(西尼面) 지역으로서 마을이 둔덕에 형성되어 있다하여 둔덕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陽旨里), 한천리(寒川里)를 병합하여 둔덕리(屯德里)라 하고 삼승면(三升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둔덕(屯德)[마을] 둔덕리의 중심마을.
  • 양짓-말[마을] 둔덕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웃-골[마을] 한우물의 위쪽에 있는 마을.
  • 점촌(店村)[마을] 둔덕 남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옹기점이 있었음.
  • 큰-말[마을] 둔덕 북쪽에 있는 큰 마을.
  • 한-우물(寒川)[마을] 점촌 서쪽에 있는 마을. 참샘이 있음.

4. 기타지명

  • 갓-골[골] 둔덕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골안-소금절이골[골] 한우물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농-바우(籠岩)[바위] 둔덕 서쪽 농바우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 농처럼 생겼음.
  • 농바우-산(籠岩山:353m)[산] 둔덕 서쪽 보은읍과 수한면 경계에 있는 산. 농바위가 있음.
  • 돌다리-들[들] 한우물 동쪽에 있는 들. 현재의 송죽교가 돌다리로 되어 있었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임.
  • 동문-지[못] 큰말 동쪽에 있는 연못
  • 망두면-골[들] 큰말 동쪽에 있는 들. 토질이 매우 메마름
  • 매봉-재[산] 한우물 서쪽에 있는 271m의 산. 매와 흡사하다고 함.
  • 분무-골[골] 큰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비성-골[골] 한우물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 소금절이-골[골] 한우물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소금절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함.
  • 소금절이-들[들] 둔덕 남쪽에 있는 들.
  • 숙-고개[고개] 큰말에서 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숲이 우거져 “숲고개”라 부르던 것이 ‘숙고개’로 변하였음.
  • 산-들[들] 한우물 동쪽에 있는 들. 신을 발에 동여맨 것처럼 생겼다 함.
  • 웃-골[골] 음지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농바위산 동남쪽이 됨.
  • 유경지-골[골] 한우물 서쪽에 이쓴 골짜기.
  • 장사리-들[들] 한우물 남쪽 산너머에 있는 들.
  • 장판-골[골] 음지말서쪽 웃골 위에 있는 골짜기. 갓골 북쪽임.
  • 잿-골[골] 큰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재너머 있는 골.
  • ・절-구탱이[들] 점촌에 있는 들. 진흙이 많다 함.
  • 찬-골[들] 한우물 서북쪽에 있는 들. 찬골과 연결되고 찬샘이 있음.
  • 찬샘-들[들] 한우물 북쪽에 있는 들. 찬골과 연결되고 찬샘이 있음.
  • 황-골[골] 한우물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토질이 붉음.
  • 황골-고개[고개] 한우물에서 선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 효자-못(孝子池)[못] 음지말 동쪽 마을 앞에 있는 못.

5. 문화유산

  • 고원재(高原齋)
    둔덕리 17201번지에 소재한 고원군수(高原郡守) 화순인(和順人) 최동제(崔東濟)의 재실로 뒤에 그의 묘소가 있다.
  • 둔덕단사(屯德檀祠)
    한우물 마을 앞산에 있는 가정대부황해도관찰사(嘉靖大夫黃海道觀察使) 경주인(慶州人) 김을돈(金乙敦)과 그의 자손 3대의 단사
  • 민속
    산제 : 둔덕 1리 마을 뒷산에 있는 산제당에서 매년 정월 산신하강일(택일)에 거행하고 있음.

6. 집성

창원황씨(昌原黃氏)가 둔덕 1리에 크게 세를 떨쳤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는 전무하고 경주김씨(慶州金氏)와 한우물에는 광주안씨(廣州安氏)가 각기 10여호 거주하고 있음.


7. 산업

  • 쌀, 고추, 담배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초가식품 둔덕리 165 감식초 2

8. 전설

  • 효자못(孝子池)
    옛날 삼승면 둔덕리에 백씨 성을 가진 젊은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지 그 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나뿐인 어머니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잘 모셨다. 그러던 어느 해 어머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젊은이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었지만 그의 어머니의 병환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용하다는 의원이 있다면 백리밖에까지 가서 모셔다 어머니를 치료하였고, 좋다는 약은 모조리 구하여 복용토록 하였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더 싶어만 갔다.
    어느 날, 그 날은 새벽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귀가 떨어져나가는 듯이 몹시 추운 날이었다. 병중에 어머니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씀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워낙 가난한 젊은이는 생선을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는 형편이었고 연못이나 냇가에 나가잡을래야 모두 꽁꽁 얼어붙었으므로 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청산 강가에 가서 잡든지 누구에게 사정을 하든지 구하고자 집을 나섰다. 눈보라는 그쳤지만 눈위 바람은 몹시도 세차게 불어 쌓인 눈이 하얗게 먼지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옷깃을 여미고 옷속으로 고개를 웅크리고 걸었지만 후들 후들 떨렸다. 정말로 칼날같이 추운 날이었다. 젊은이가 동구밖에 있는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연못에서 “우지직, 우지직”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는 발길을 멈추고 연못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꽁꽁 얼어 붙었던 연못 한쪽의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갈라진 얼음 사이로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가 튀어 올라왔다. 한 마리 두 마리 잉어는 계속하여 10여 마리나 뛰어 올라와서는 얼음위에서 펄떡 펄떡 뛰고 있었다. 젊은이는 너무나 기뻤다 정신없이 잉어를 가지고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이는 정성을 다하여 잉어를 삶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잉어를 잡수신 어머니는 그 날부터 위중하던 병이 차차 낫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소문이 나자 듣는 사람마다 젊은이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로 이와 같은 기적이 나타났다고 말하였다. 그 후부터 둔덕못은 “효자못”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9. 기타

둔덕 1리는 1994년에 둔덕 2리는 1996년에 각기 마을 자랑비를 건립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