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료집

보은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곳

삼승면

삼승면(三升面)

1. 위치

면적 28.28㎢, 인구 1,266가구 3,748명(1999년말) 보은군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탄부면(炭釜面)과 마로면(馬산(청산老面), 서는 수한면(水汗面)과 옥천군(沃川郡) 안내면(安內面), 남은 옥천군(沃川郡) 청산(靑山) 청성(靑城), 안남면(安南面), 북은 보은읍(報恩邑)과 탄부면(炭釜面)과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의지역으로서 삼승산(三升山)의 이름을 따서 삼승면(三升面)이라 하고 삼승(三升), 각동(角洞), 상석남(上石南), 하석남(下石南), 내망(內望), 외망(外望), 탄금(彈琴), 막은(幕隱), 서원(西元), 하가(下可), 달산(達山), 상가(上可), 중가(中可), 송촌(松村), 중촌(中村), 월촌(越村), 상원암(上元岩), 익동(益洞), 온야(溫夜), 시촌(市村), 이동(梨洞)의 21개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니면(西尼面)의 둔덕(屯德), 양지(陽旨), 한천(寒泉), 선곡(仙谷), 선동(仙東), 선서(仙西), 사각(四覺), 송죽(松竹), 황토(黃土), 우진(右陳)의 10개 동리와 옥천군(沃川郡) 안남면(安南面)의 오산리(五山里)일부를 병합하여 천남(川南), 내망(內望), 탄금(彈琴), 달산(達山), 상가(上可), 원남(元南), 서원(西原), 둔덕(屯德), 선곡(仙谷), 송죽(松竹), 우진(右陳)의 11개 리로 개편하고 탄금리에 면사무소를 두어 관할하다가 그 후 소재지를 원남리로 이전하였다.
1989년 1월 1일 옥천군(沃川郡) 안내면(安內面) 오덕리(五德里)일부를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자연

군계 서쪽에 금적산(金積山:652m)과 동남쪽에 삼승산(三升山):574m)의 산록은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고, 동쪽에는 보청천(報靑川)이 탄부면과의 경계를 이루며 관류하면서 남부의 오덕천(五德川)과 합류되는데 주위에 폭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완사면으로 연결되고 있다.


4. 산업

논 871.6㏊, 밭 404.6㏊, 임야 1,036.9㏊로 주산업은 쌀, 담배, 과수등으로 내망리는 평야지역으로 쌀과 담배가 재배되고 서원, 탄금, 우진리에는 과수단지가 형성되었고 1997년 우진리에 삼승농공단지가 형성되어 농외소득을 올리고 있다.


5. 교통・문화

괴사~보은~영동간의 국도 19호선이 면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지나며 옥천~관기간의 지방도 502호선이 면소재지 원남에서 교차되고 있다. 이 두 도로간을 연결하는 군도가 얼기설기 엉키어 있어 교통은 매우편리하다. 문화재로는 1915년 창건된 금화사(金華祠)가 선곡리에 있는데 1871년 대원군때 철폐하였다가 1917년 재건되어 있고 중요민속자료 제 139호로 지정된 최태하(崔台夏) 가옥이 있다. 원남리에는 화광사(華光寺)와 송시열유허비(宋時烈遺墟碑)와 조선시대 원암역(元巖驛)이 있고, 천남리에는 선사시대의 지석묘(支石墓)가 있다.
교육기관응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내망리(內望里)

1. 위치

면적 3.56㎢, 인구 113가구 322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2.4㎞ 지점인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천남리(川南里), 서는 원남리(元南里), 남은 옥천군(沃川郡) 청성면(靑城面), 북은 탄금리(彈琴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의 지역으로서 망월(望月)이 안쪽이 되므로 안망월이 또는 내망(內望)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망리(外望里) 하석남리(下石南里) 일부를 병합하여 내망리(內望里)라 하였다.


3. 자연부락

  • 못-망월(望月 망월이)[마을] 내망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내망 1리가 됨.
  • 외-망(外望, 청산망월)[마을] 못망월 서남쪽에 있는 마을. 망월이 바깥쪽에 있음.
  • 웃-골[마을] 못망월 동북쪽에 있는 마을. 하내망의 위쪽에 있음.
  • 하-내망(下內望, 새말) 웃골남쪽 아래쪽에 있는 마을. 옛날 하석남리로 현재는 내망 2리가 됨.

4. 기타지명

  • 가죽나무-거리[들] 새말 북쪽에 있는 들. 큰 가죽나무가 있었다 함.
  • 개금-절[산] 못망월 서남쪽에 있는 산. 중턱에 개금나무 자리에 절이 있었다 함.
  • 개금절-들[들] 못망월 서쪽에 있는 들. 개금절 아래에 있음.
  • 고래-실[들] 못망월 서쪽에 있는 들. 망월못 위쪼에 있음.
  • 곰배-들[들] 새말 북동쪽에 있는 들. 곰배(곰방매)같이 생겼다 함.
  • 구상-들[들] 새말 동쪽에 있는 들.
  • 구성-고개[고개] 못망월이에서청성면 능월리 망월로 넘어가는 고개. 멀리서 보면 뱀처럼 굽어져서 구릉진 고개라 함.
  • 대밭-망월[산] 못망월 북쪽에 있는 산. 높이 200m 옛날 내망리의 최초로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도둑이 많고 식수가 모자라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함.
  • 대마산-들[들] 새말 북쪽에 있는 들.
  • 대찬이-골[골] 외망동쪽에 있는 골짜기.
  • 돈담-들[들] 새말 서쪽에 있는 들. 흙이 주위보다 두텁게 쌓여 있음.
  • 망월이-못(內望月小溜池)[못] 못망월 서쪽에 있는 못. 임진왜란때 생겼다 함.
  • 매봉-산[산] 새말 동남쪽에 있는 산. 이곳에서 매사냥을 많이 하였다 함.
  • 못-골[골] 새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못이 있음.
  • 못골-고개[고개] 못골못에서 못망월로 넘어가는 고개.
  • 못골-들[들] 못망월 서북쪽에 있는 들. 망월이못 아래에 있음.
  • 뱀근이-들(비양간이들)[들] 못밑들 북쪽에 있는 들. 물이 돌아가는 곳이라고 함.
  • 삼바-골[걸] 새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삼이 많이 자생한다 함.
  • 삼승-산(三升山:574m)[산] 새말 동남쪽에 있는 산. 삼승면, 마로면, 옥천군과의 경계가 됨.
  • 새말-고개[고개] 새말에서 천남리 석남으로 넘어가는 고개.
  • 새-청[개울] 새말 서쪽에 있는 냇물. 옛날에 새가 많이 살았다 함.
  • 새청-골[골] 새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서낭-고개[고개] 윗골에서 못망월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에 성황당이 있었다 함.
  • 수내-방구[바위] 윗골 남쪽 뒷산 중턱에 있는 바위.
  • 여수-굴[굴] 여수바우에 있는 굴. 옛날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 함.
  • 여수-바우[바위] 새말 동쪽에 있는 바위. 여수굴이 있음.
  • 오미기-들[들] 못망월 북쪽에 있는 들. 원남중학교 앞에 있음.
  • 왜벌-들[들] 못망월 북쪽에 있는 들. 원남중학교 앞에 있음.
  • 웃골-고개[고개] 새말에서 웃골로 넘어가는 고개
  • 작은-골[골] 새말 동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절-골[골] 못망월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함.
  • 조장이-들[들] 옛날에 조씨가 경작하였다 함.
  • 큰-골[골] 새말 동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 통시-골[골] 못망월이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 팔판서-터[터] 왜벌들에 있는 터. 여덟명의 판서가 나온다는 명당으로 현재 판동초등학교가 있음.
  • 힌두개-골[골] 못망월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5. 문화유적

  • 선 돌
    판동초등학교 교내 사택 옆의 수도가에 있으며, 크기는 높이 170cm 최대너비 181cm 두께 34cm 이다. 아래쪽의 폭이 넓고 윗변이 좀 좁으나 방형(方形)에 가까운 판석으로 윗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었다. 본래의 위치는 서편 옛 교사 현관옆에 있었으나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표시한 돌이라고전해오고 있다.
  • 김공귀봉송덕비(金公貴鳳頌德碑)
    판동초등학교 부지를 희사한 공적을 기리는 비로 학교 입구에 있다.

6. 산업

쌀, 담배, 과수


달산리(達山里)

1. 위치

면적 2.15㎢, 인구 105가구 282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6㎞지점인 면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은 탄부면(炭釜面), 서는 상가리(上可里), 남은 천남리(川南里), 북은 우진리(右陳里)와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의 지역으로서 달처럼 생긴 산이 있어 달메 또는 월산(月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가리(下可里)를 병합하여 달산리(達山里)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가습(可習)[마을] 달미 동남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책을 펴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배우고 가르치라는 뜻이라고도 하며, 아름다운 숲속에 있다 하여 “가습”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이라고도 함.
  • 달-미(月山)[마을] 가습 서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달처럼 생겼다 하여 “달메”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양달-말[마을] 달미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응달-말[마을] 달미의 음지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맹이-구렁[들] 봇들 서쪽에 있는 들. 들이 괭이처럼 굽어서 냇물이 흘렀다 함.
  • 구뱅이-들[들] 가습 동남쪽에 있는 들.
  • 담안-밭[밭] 살구재 아래에 있던 밭. 경지정리로 논으로 변하였음.
  • 막은-골[골] 응달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말랑-뜸(아래말 뜸)[터] 재지골서 옮겨 마을을 형성하였으나 화산이 비쳐 화재가 자주 발생하므로 현재의 월산마을로 다시 옮겼다 함.
  • 모링이[산] 양달말 북쪽에 있는 산. 냇물이 산을 따라 돌아간다고 함.
  • 밀밭-들[들] 가습 남쪽에 있는 들. 밀을 많이 심었다 함.
  • 보지-바우[바위] 신근이 고개에 있는 바위. 바위형이 여자의 생식기처럼 생겼다고 함.
  • 봇-들[들] 달산리 동쪽에 있는 들. 보가 있음.
  • 사지보-들[들] 살구재 남쪽에 있는 들.
  • 살구-재[고개] 가습 동남쪽에 있는 작은 고개. 천남리로 가는 길목임.
  • 상주-말[마을] 가습 살구재 북쪽에 있는 마을.
  • 신근이-고개[고개] 야달말에서 상가리 신근이로 넘어가는 고개.
  • 양대-메미[논] 달미 동북쪽에 있는 논. 옛날 양대(동부)를 주고 샀다고 함.
  • 온돌집-터[터] 살구재 아래 본래 마을이 있었던 곳에 있던밭으로 경지 정리후 논으로 변하였음.
  • 옹고-뿔[들] 달미 북쪽에 있는 들.
  • 작은-골[골] 양지말 뒤에 있는 골짜기.
  • 재골-산[언덕] 가습 동쪽에 있는 작은 언덕
  • 재지-골[골] 가습 동쪽에 있는 처음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수해가 심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함.
  • 큰-봇들[들] 가습 동쪽에 있는 들.

5. 문화유산

  • 면서기 이인우시혜비(面書記 李寅雨施惠碑)
    빈민구제를 한 공적비로 1923년에 건립되었음.

6. 집성

  • 인천이씨(仁川李氏)
    청도군수공파(淸道郡守公派)로 달미에 거주
  • 경주김씨(慶州金氏)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직장공(直長公) 후손으로 가습에 거주

7. 산업

쌀, 고추, 담배


8. 기타

달살 2리는 1996년에 달산 1리는 1998년에 마을 자랑비를건립하였다.

둔덕리(屯德里)

1. 위치

면적 2.13㎢, 인구 52가구 165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북쪽 8㎞ 지점인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과 북은 보은읍(報恩邑), 서는 수한면(水汗面), 남은 선곡리(仙谷里)와 송죽리(松竹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서니면(西尼面) 지역으로서 마을이 둔덕에 형성되어 있다하여 둔덕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陽旨里), 한천리(寒川里)를 병합하여 둔덕리(屯德里)라 하고 삼승면(三升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둔덕(屯德)[마을] 둔덕리의 중심마을.
  • 양짓-말[마을] 둔덕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웃-골[마을] 한우물의 위쪽에 있는 마을.
  • 점촌(店村)[마을] 둔덕 남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옹기점이 있었음.
  • 큰-말[마을] 둔덕 북쪽에 있는 큰 마을.
  • 한-우물(寒川)[마을] 점촌 서쪽에 있는 마을. 참샘이 있음.

4. 기타지명

  • 갓-골[골] 둔덕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골안-소금절이골[골] 한우물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농-바우(籠岩)[바위] 둔덕 서쪽 농바우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 농처럼 생겼음.
  • 농바우-산(籠岩山:353m)[산] 둔덕 서쪽 보은읍과 수한면 경계에 있는 산. 농바위가 있음.
  • 돌다리-들[들] 한우물 동쪽에 있는 들. 현재의 송죽교가 돌다리로 되어 있었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임.
  • 동문-지[못] 큰말 동쪽에 있는 연못
  • 망두면-골[들] 큰말 동쪽에 있는 들. 토질이 매우 메마름
  • 매봉-재[산] 한우물 서쪽에 있는 271m의 산. 매와 흡사하다고 함.
  • 분무-골[골] 큰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비성-골[골] 한우물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 소금절이-골[골] 한우물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소금절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함.
  • 소금절이-들[들] 둔덕 남쪽에 있는 들.
  • 숙-고개[고개] 큰말에서 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숲이 우거져 “숲고개”라 부르던 것이 ‘숙고개’로 변하였음.
  • 산-들[들] 한우물 동쪽에 있는 들. 신을 발에 동여맨 것처럼 생겼다 함.
  • 웃-골[골] 음지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농바위산 동남쪽이 됨.
  • 유경지-골[골] 한우물 서쪽에 이쓴 골짜기.
  • 장사리-들[들] 한우물 남쪽 산너머에 있는 들.
  • 장판-골[골] 음지말서쪽 웃골 위에 있는 골짜기. 갓골 북쪽임.
  • 잿-골[골] 큰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재너머 있는 골.
  • ・절-구탱이[들] 점촌에 있는 들. 진흙이 많다 함.
  • 찬-골[들] 한우물 서북쪽에 있는 들. 찬골과 연결되고 찬샘이 있음.
  • 찬샘-들[들] 한우물 북쪽에 있는 들. 찬골과 연결되고 찬샘이 있음.
  • 황-골[골] 한우물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토질이 붉음.
  • 황골-고개[고개] 한우물에서 선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 효자-못(孝子池)[못] 음지말 동쪽 마을 앞에 있는 못.

5. 문화유산

  • 고원재(高原齋)
    둔덕리 17201번지에 소재한 고원군수(高原郡守) 화순인(和順人) 최동제(崔東濟)의 재실로 뒤에 그의 묘소가 있다.
  • 둔덕단사(屯德檀祠)
    한우물 마을 앞산에 있는 가정대부황해도관찰사(嘉靖大夫黃海道觀察使) 경주인(慶州人) 김을돈(金乙敦)과 그의 자손 3대의 단사
  • 민속
    산제 : 둔덕 1리 마을 뒷산에 있는 산제당에서 매년 정월 산신하강일(택일)에 거행하고 있음.

6. 집성

창원황씨(昌原黃氏)가 둔덕 1리에 크게 세를 떨쳤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는 전무하고 경주김씨(慶州金氏)와 한우물에는 광주안씨(廣州安氏)가 각기 10여호 거주하고 있음.


7. 산업

  • 쌀, 고추, 담배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초가식품 둔덕리 165 감식초 2

8. 전설

  • 효자못(孝子池)
    옛날 삼승면 둔덕리에 백씨 성을 가진 젊은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지 그 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나뿐인 어머니를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잘 모셨다. 그러던 어느 해 어머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젊은이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었지만 그의 어머니의 병환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용하다는 의원이 있다면 백리밖에까지 가서 모셔다 어머니를 치료하였고, 좋다는 약은 모조리 구하여 복용토록 하였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더 싶어만 갔다.
    어느 날, 그 날은 새벽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귀가 떨어져나가는 듯이 몹시 추운 날이었다. 병중에 어머니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씀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워낙 가난한 젊은이는 생선을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는 형편이었고 연못이나 냇가에 나가잡을래야 모두 꽁꽁 얼어붙었으므로 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청산 강가에 가서 잡든지 누구에게 사정을 하든지 구하고자 집을 나섰다. 눈보라는 그쳤지만 눈위 바람은 몹시도 세차게 불어 쌓인 눈이 하얗게 먼지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옷깃을 여미고 옷속으로 고개를 웅크리고 걸었지만 후들 후들 떨렸다. 정말로 칼날같이 추운 날이었다. 젊은이가 동구밖에 있는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연못에서 “우지직, 우지직”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는 발길을 멈추고 연못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꽁꽁 얼어 붙었던 연못 한쪽의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갈라진 얼음 사이로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가 튀어 올라왔다. 한 마리 두 마리 잉어는 계속하여 10여 마리나 뛰어 올라와서는 얼음위에서 펄떡 펄떡 뛰고 있었다. 젊은이는 너무나 기뻤다 정신없이 잉어를 가지고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이는 정성을 다하여 잉어를 삶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잉어를 잡수신 어머니는 그 날부터 위중하던 병이 차차 낫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소문이 나자 듣는 사람마다 젊은이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로 이와 같은 기적이 나타났다고 말하였다. 그 후부터 둔덕못은 “효자못”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9. 기타

둔덕 1리는 1994년에 둔덕 2리는 1996년에 각기 마을 자랑비를 건립하였음.

상가리(上可里)

1. 위치

면적 1.33㎢, 인구 98가구 271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3.5㎞ 북쪽으로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달산리(達山里), 서는 서원리(西原里), 남은 탄금리(彈琴里), 북은 우진리(右陳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지역으로서 가습(可習)의 위쪽이 되므로 윗가습 또는 상가(上可)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가리(中可里), 막은리(幕隱里) 일부를 병합하여 상가리(上可里)라 하고 삼승면에 펴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골막음-골[터] 신근이 남쪽에 있었던 마을. 탄금리 막음골 서북쪽옆 골짜기에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음.
  • 상-가(상가)[마을] -> 윗 가습
  • 새-뜸[마을] 신근이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
  • 신근이(新根伊)[마을] 상가 동쪽에 있는 마을.
  • 윗-가습(상가)[마을] 상가리의 중심마을로 신근이와 연접되어 있음.
  • 음달-말[마을] 새뜸 남쪽 음달에 있는 마을.
  • 중-가습(中可習)[마을] 신근이 동쪽에 있는 마을. 신근이(上可)와 가습(下可) 사이에 있다.

4. 기타지명

  • 갱빈-들[들] 신근이 남쪽 상가들 앞 냇물건너에 있는 들.
  • 골막음-골[골] 신근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골막음골 마을이 있었음.
  • 동독-끝[모퉁이] 중가습 동남쪽 산 모퉁이
  • 동두끝밭-들[들] 신근이 동쪽에 있는 들
  • 문앞-들[들] 중가습 남쪽에 있는 들. 중가습 마을 앞이 됨.
  • 분통-골[골] 신근이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상가-골[골] 새뜸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상가-들[들] 신근이 남쪽 상가들 앞 냇물 건너에 있는 들.
  • 새텃-골[골] 신근이 서쪽에 있는골짜기. 마을에서 외딴집과 많이 떨어져 있는 곳임.
  • 신근이-고개[고개] 신근이에서 달산리 양달말로 넘어가는 고개. 현재 신근이는 한자로 “新根伊”로 표기하고 있으나 그 고개에 “보지바우”라는 바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월내는 “腎根”으로표기하였던 것으로 추측됨.
  • 속갈-골[골] 신근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 현재는 삼승농공단지 조성으로 없어졌음.
  • 아리랑-고개[고개] 중가습에서 탄금리 막음골로 넘어가는 고개
  • 안-사(案山:174m)[산] 신근이 남쪽에 있는 산. 음달말 뒤쪽에 있음.
  • 황개-보[보] 신근이 동남쪽 개울에 있는 막음골 보

5. 문화유산

  • 박원진송덕기념비(朴元鎭頌德記念碑)
    1930년 빈민구제를 한 공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
  • 민속
    산제 : 매년 정월 2~3 택일하여 금적산 아래 산신당에서 거행되었다가 중단하고 있음.

6. 산업

과수, 담배


7. 기타

1958년 마을 스스로 농협운동을 전개. 선진마을이 되었으며, 1974년과 1975년 연 2회 쌀증산 단지로 선정되어 새마을 지도자 현지교육장으로 각광을 받았음. 1991년 마을입구인 국도 19호선 버스승강장 옆에 마을 자랑비를 건립하였다.

서원리(西原里)

1. 위치

면적 2.79㎢, 인구 96가구 223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북서쪽 2.5㎞ 지점으로 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탄금리(彈琴里), 서는 옥천군(沃川郡), 남은 원남리(元南里), 북은 선곡리(仙谷里)와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지역으로서 서쪽 언저리라 하여 서원(西元)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동(梨洞)과 서니면(西尼面)의 황토리(黃土里) 일부를 병합하여 (西原里)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하였다.


3. 자연마을

  • 감나무-골(枾洞)[마을] 서원 북쪽에 있는 마을. 감나무가 많음.
  • 배나무-골(梨洞)[마을] 감나무골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 큰 배나무가 있고 서원 1리의 중심마을임.
  • 서원(西原)[마을] 금적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서북쪽은 병풍을 친 듯 하고 삼승면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음. 조선 현종때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아우인 세한재 송시도(歲寒齋 宋時燾)가 일경당이란 서숙을 건립하고 강학하므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음.
  • 시-동(枾洞)[마을] -> 감나무골
  • 신-촌(新村)[마을] 배나무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 삼승초등학교가 있음.
  • 웃-말[마을] 서원 서쪽 위쪽에 있는 마을.
  • 원-서원(元西原)[마을] -> 서원
  • 이-동(梨洞)[마을] -> 배나무골

4. 기타지명

  • 가재-골[골] 원서원 서쪽에 있는 골짜기. 가재가 많음.
  • 개두울-봉[산] 배나무골 서남쪽에 있는 높이 284m의 산.
  • 꽃밭-골[골] 원서원 서쪽에 있는 골짜기. 꽃이 많이 핀다고 함.
  • 굴-샘[우물] 원서원 서쪽에 있는 샘. 굴속에 있음.
  • 금적-산(금적산:652m)[산] 서원리 서쪽에 있는 산. 삼승면과 수한면, 옥천군, 안내면의 경계가 되고 있다.
  • 동-메(獨山:190m) 감나무골 동남쪽에 있는 외딴산, 마을 동쪽이 된다.
  • 딸-바우[바위] -> 용도바우
  • 떡-바우[바위] 원서원 서쪽에 있는 바위. 바위가 떡 벌어졌음.
  • 둔박-골[골] 원서원 서남쪽 소류지 위에 있는 골짜기. 절골 아래가 됨.
  • 말등-재[산] 배나무골 서쪽에 있는 산. 형상이 말 잔등같이 생겼다 함.
  • 매-바우[바위] 매바우 산에 있는 바위. 매같이 생겼다 함.
  • 매바우-산[산] 감나무골 서쪽에 있는 산. 매바우가 있다.
  • 무시박-골[골] 꽃밭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다른 곳보다 평평하다 함.
  • 문-앞[들] 원서원 동쪽에 있는 들.
  • 배나무골-고개[고개] 감나무골에서 배나무골로 넘어가는 고개.
  • 병목-안[골] 배나무골 서쪽 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병목처럼 생겼음.
  • 병풍-바우[바위] 금적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병풍처럼 생겼음.
  • 서당-골[골] 감나무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음.
  • 서원리-소류지(西原里 小留池)[못] 원서원 남쪽에 있는 못.
  • 서원이-골[골] 감나무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골 남쪽임.
  • 선지-들[들] 원서원 동남쪽에 있는 들. 원남리까지 연결됨.
  • 수실-대[골] 원서원 동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어귀 소나무가 있는 곳을 일컬음.
  • 아들-바우[바위] -> 용도 바우
  • 안터-골[골] 원서원과 원남리 상원암 사이에 있는 골짜기.
  • 안터골-고개[고개] 원서원에서 원남리 상원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 얼거실-들[들] 감나무골 동쪽에 있는 들.
  • 여수-골[골] 배나무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여우가 많았다 함.
  • 용도-바우(아들바우, 딸바우)[바위] 바위에 구멍이 둘 있는데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이 아들, 딸 어느쪽이든지 소원대로 돌을 던져 넣으면 뜻이 이루어진다고 함.
  • 자래-바우[바위] 감나무골 서쪽에 있는 바위. 자라처럼 생겼다 함.
  • 작살-고개[고개] 원서원에서 탄금리로 넘어가는 고개
  • 재판-골[골] 배나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절-골[골] 배나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절골-샘[우물] 절골 중간에 있는 샘.
  • 집-넘어[들] 원서원과 감나무골 사이에 있는 들.
  • 집넘어-고개[고개] 원서원에서 감나무골로 넘어가는 고개
  • 큰-골[골] 배나무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큰골-바우[바위] 큰골에 있는 네모난 바위.
  • 큰골-소류지[못] 큰골 아래쪽에 있는 못, 상가소류지라고도 부른다.
  • 큰참나무-샘[우물] 샘 위쪽에 큰 참나무가 있었음.
  • 팽나무-골[골] 원서원 동쪽에 있는 골짜기. 팽나무가 있었고 산제당이 있었음.
  • 한밭-들[들] 감나무골 앞에 있는 들. 큰 밭이 있었다 함

5. 문화유산

  • 산앙사지(山仰祠址)
    1707년(숙종 33)에 창건하여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영정을 봉안하고 뒤에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와 운곡 송강석(雲谷 宋康錫)의 영정을 추가 배향하였던 사우로 1891년(고종 8) 훼철도어 주춧돌만 남아 있었던 곳에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 금적산 봉수대지(金積山 烽遂臺址)
    조선초기에 금적산 정상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청산 박달라산(靑山 朴達羅山)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에 있는 회인 용산점(懷仁 龍山岾)으로 연락하였던 봉수대터다.
  • 민속
    산신제 : 팽나무골에 있었던 산제당에서 매년 정월 2~3일(택일)에 거행하였으나 현재는 중단되었음.

6. 산업

과수, 담배


7. 전설

  • 금송아지와 금비둘기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에 남북으로 삼태기 모양으로 길게뻗은 산이 금적산(金積山 - 해발 652m)이고 이 산에는 전 국민이 3일간 먹을수 있는 보배가 묻혀 있다고 전해 오는데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먼 옛날이다.
    이 산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산기슭에 밭을 일구어 금비둘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곡식을 갖추어 심었고 양지바른 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바위 아래 옹달샘을 파서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금비둘기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하여 내외가 되었다. 금송아지와 금비둘기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금슬좋은쌍의 부부로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불행하게도 금송아지는 밭을 갈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두 눈이 멀고 말았다. 그 후 비둘기는 눈먼 남편을 열심히 봉양하였으나 금비둘기의벌이로는 도저히 금송아지를 충족히 먹일 수 없었다. 그럿게 몇 해가 지나자 아내인 금 비둘기는 남편 섬기기가 고통스럽게 느껴 지면서 짜증을 냈고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어느 날 하루종일 남편을 위해 식량을 물어나르던 금비둘기는 마침대 “나도 이제는 도저히 못참겠어요 난 나대로 갈것이니 당신은 당신대로 살 길을 찾아 보도록 하세요”
    하고는 금송아지가 울면서 붙잡았지만 매정스럽게 뿌리치고 어디론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금송아지는 그 후 산기슭을 헤메며 아내를 부르다가 지친 나머지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금송아지가 죽은 산을 금적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금송아지가 죽었을 때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꼬리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이 많이 나고 머리가 있는 북쪽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에는 부자가 많이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곡리(仙谷里)

1. 위치

면적 4.28㎢, 인구 109가구 285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북서쪽 7㎞ 지점으로 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우진리(右陳里), 서는 수한면(水汗面), 남은 서원리(西原里), 북은 둔덕리(屯德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서니면(西尼面)지역으로서 선우실 또는 선곡(仙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동리(仙東里), 선서리(仙西里), 사각리(四覺里), 황토리(黃土里) 일부를 병합하여 선곡리(仙谷里)라 하고 삼승면(三升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동-편(東便)[마을] 선우실 동쪽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선동리라 하였다.
  • 사각-골(四覺洞)[마을] 선우실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사각리라 불렀으며, 마을 주위의 산이 사각모양을 했다 함. 선곡 3리임.
  • 상웃-말[마을] 선우실의 서남쪽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
  • 서-편(西便)[마을] 선우실 서쪽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는 선서리라 하였다.
  • 선우-실(仙谷)[마을] 선곡리의 으뜸되는 마을. 선곡 1리임.
  • 아랫-말[마을] 선우실 동쪽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웃-말[마을] 선우실 서북쪽 위쪽에 있는 마을.
  • 중간-말[마을] 선우실의 중심마을로 중간에 있다.
  • 황토-말(黃土- )[마을] 사각골 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황토리 마을로 현재는 선곡 2리임.

4. 기타지명

  • 가장-골[골] 사각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사각골과 황토말 중간이 됨.
  • 개-토시(개토시)[고개] 웃말 서북쪽에서 수한면 묘서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땅을 일구어 처음으로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함.
  • 거먹-바우[바위] 개토시고개 중턱에 있는 검은 바위.
  • 견투-실(犬鬪室)[고개] -> 개토시
  • 고서방터-들[들] 사각골 북동쪽에 있는 들. 옛날 고씨들이 살았던 곳이라 함.
  • 금화사-골(金華洞- )[골] 윗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화사 아래쪽임.
  • 께-저울[골] 황토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저울처럼 생겼다 함.
  • 낭-골[골] 중간말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 ・높은-고개[고개] 황토말에서 서원리 배나무골로 넘어가는 고개
  • 담-안[들] 상웃말 서쪽에 있는 들. 항상 구름이 끼어있는 들이라 함.
  • 덕-고개[고개] 선우실에서 수한면 거현리로 넘어가는 고개
  • 덕고개-골[골] 웃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덕고개 아래쪽임
  • 도둑-골[골] 깨저울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잡도적들로 구성, 취락을 이룬 곳으로 피씨가 주로 살았다고 함. 처음 “도적골”로 부르다가 변한 것이라고 함.
  • 독정이[고개] 선우실에서 수한면 거현리로 넘어가는 고개
  • 독정-골[골] 윗말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독정이고개 아래가 됨
  • 독정이-못[골] 윗말 서남쪽에 있는 못. 독정골 아래 있으며, 독정이들에 물을 대줌
  • 뒤장-재[고개] 서편에서 수한면 묘서리로 넘어가는 고개
  • 뒷-골[골] 황토말과 사각말 사이에 있는 골짜기.
  • 매봉-재[고개] -> 사청재
  • 방구-배기[산] 황토말 서쪽에 있는 산. 큰 바위가 하나 박혀있음.
  • 북-촌[들] 아랫말 북쪽에 있는 들.
  • 사청-재(매봉재)[고개] 황토말에서 성녁골로 넘어가는 고개
  • 삼동-산(三洞山)[산] 산봉우리가 셋이였으나 지금은 둘 뿐임.
  • 상도-골[골] 도둑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물이 처음 내려가는 골짜기.
  • 상-장[들] 동편 남쪽에 있는 들
  • 성녁-골(松禮洞)[들] 사청재 동쪽에 있는 들. 마을 동쪽으로 숲이 우거져 있음.
  • 소금-절이[골] 사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송례동(松禮洞)[들] -> 성녁골
  • 숲-거리(쑤거리)[들] 선우실 동쪽에 있는 들. 숲이 우거져 있음.
  • 쓰리-골[골] 금화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왜-뿔[들] 동편 남쪽에 있는 들. 뿔처럼 솟아오른 곳을 말함.
  • 우동-골[골] 서편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장사리-들[들] 사각골 북동쪽에 있는 들. 고서방터들 북쪽으로 송죽천 건너에 있음.
  • 점-바우[바위] 서편 마을 뒤에 있는 바위. 바위 위를 작은 돌로 문지르며 애타는 사연을 말하면 바위 위에 작은 돌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하여 점을 쳤다고 함.
  • 질구실-골[골] 서편 북쪽에 있는 골짜기. 땅이 질다고 함
  • 질장재-골[골] 서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황-골[골] 아랫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

5. 문화유산

  • 보은 최태하 가옥(報恩 崔台夏 家屋)
    선곡리 281번지 중간말에 있는 건물로 1892년에 건립되었다. 중요민속자료 제 139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 계당(溪堂)
    금화서원(金華書院) 경내에 있는 강당으로 화순인(和順人) 계당 최흥림(溪堂 崔興霖)이 조선 명종 때 을사사화후 은거하여 도학을 닦던 곳이다. 1764년(영조 40)에 증건된 건물이다.
  • 금화서원(金華書院)
    선곡리 산 21-1번지에 있는 것으로 1814년(순조 14)에 건립하고 최운(崔澐), 성운(成運), 조식(曺植), 성제원(成悌元), 최흥림(崔興霖)등 5현을 배향하고 계당을 강당으로 인재를 양성하였으나 1871년에 훼철되었다. 1917년 지방 유림들의 발의로 금화사(金華祠)를 복원하고 5현을 배향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묘정에 대곡(大谷, 成運), 남명(南冥 曺植), 동주(東州 成悌元), 계당(溪棠 崔興霖)등 4현비(四賢碑)가 건립되었으나 1980년 수해때 유실되어 1982년 새로 세웠다.

6. 집성

  • 화순최씨(和順崔氏)
    부정공파(副正公派) 후예로 선느실에 20여호가 거주하고 있다.
  • 전주이씨(全州李氏)
    익안대군(益安大君) 후예로 황토말에 1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7. 산업

  • 고추, 담배, 쌀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신광물산 선곡리 52 인조송 11

8. 기타

선느실 마을 어귀 숲거리에 1993년에 건립한 마을 자랑비가 있음.

송죽리(松竹里)

1. 위치

면적 1,70㎢, 인구 62가구 19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5.2㎞지점으로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탄부면(炭釜面), 서는 둔덕리(屯德里)와 선곡리(仙谷里), 남은 우진리(右陳里), 북은 보은읍(報恩邑)과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서니면(西尼面) 지역으로서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이 있으므로 송죽(松竹)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황토리(黃土里) 일부를 병합하여 송죽리(松竹里)라 하고 삼승면(三升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납식이[마을] 송죽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새-터[마을] 송죽에 딸린 마을로 새로 이루었음.
  • 송죽(松竹)[마을] -> 송죽리
  • 점-말(店村)[마을] 납식이에 딸린 마을. 옹기점이 있음.

4. 기타지명

  • 납식이-들[들] 납식이 동쪽 마을 앞에 있는 들.
  • 돌-빼기[들] 송죽북쪽에 있는 들. 전에 바위가 있었는데 깨뜨려버렸다 함.
  • 산대-골[골] 새터 서쪽에 이쓴 골짜기. 마늘이 많이 나는 골짜기임.
  • 석류-골[골] 납식이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석둥이못 위가 됨.
  • 송죽-교(松竹橋)[다리] 국도 19호선에 있는 다리로 송죽천에 있음. 보은읍과 경계가 됨.
  • 송죽-들[들] 송죽 북쪽에 있는 들.
  • 송죽-천(松竹川)[내] 송죽 북쪽에 있는 내. 선곡리 금적산에서 발원
  • 애기산-터[산] 송죽 서남쪽에 있는 177m의 산
  • 인천보-들[들] 송죽 북쪽에 있는 들. 솔밭 동쪽에 있음.
  • 솔-밭[숲] 송죽초등학교 북쪽 길 건너에 있는 소나무 숲
  • 장승-배기[들] 장승이 있었다 함.
  • 텃-골[들] 납식이 서남쪽에 있는 들. 송죽리의 원마을 터였으나. 마적떼 등살에 못이겨 지금의 마을 자리로 옮겨 갔다고 함.
  • 텃골-못[못] 텃솔 서쪽 위쪽에 있는 못

5. 문화유산

  • 월성이공희우부인김해김씨효열비(月城李公希雨夫人金海金氏孝烈碑)
    김씨부인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1932년에 건립하였다.
  • 장사랑최창봉봉도시혜지비(將仕郞崔昌鳳捧賭施惠之碑)
    빈민의 소작료를 감면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립하였다.

6. 산업

쌀, 과수

우진리(右陳里)

1. 위치

면적 2.56㎢, 인구 57가구 192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북으로 5.3㎞ 지점인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달산리(達山里)와 탄부면(炭釜面), 서는 선곡리(仙谷里), 남은 상가리(上可里), 북은 송죽리(松竹里)와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서니면(西尼面)지역으로서 산부리 위에 있으므로 우진부리 또는 우진(右陳)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황토리(黃土里)일부와 삼승면(三升面)의 달산리(達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우진리(右陳里)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솔안-말[마을] 우진부리 북쪽에 있는 마을. 전에 마을 뒷산에 솔이 많았다고 함.
  • 우진(右陳)[마을] -> 우진부리
  • 우진-부리[마을] 우진리의 으뜸되는 마을. 고려때 산부리 위에 군대가 주둔하였는데 우군과 좌군으로 나누고 그중 우군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하여 우진부리라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옛날 우장군(禹將軍)이라는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진을 쳤던 곳이라 하는데 마을뒷산에 기를 꽂았던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고 그 바위 근처에서 돌로 만든 화살촉이 발견된 일도 있다고 함.

4. 기타지명

  • 구시-고개[고개] 우진부리에서 상가리 삼승초등학교로 넘어가는 고개. 모양이 구유같이 생겼다고 함.
  • 높은-고개[고개] 우진부리 서쪽에 참샘골에서 장판골로 넘어가는 고개
  • ・높은-골[골] 우진부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높은 고개 아래가 됨.
  • 달미-못[못] 우진부리 서쪽에 이쓴 못, 달미 사람들이 이 못물을 이용하여 몽리를 하고 농사를 지음.
  • 못구렁-골[골] 우진부리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달미못 서쪽 위가 됨.
  • 문앞-들[들] 우진부리 동쪽에 있는 들. 마을 문 앞이 됨.
  • 방아다리-들[들] 우진부리 서쪽에 있는 들. 일부는 농공단지가 되었음.
  • 섭둥이-못(석징이못들)[들] 우진부리 서쪽에 있는 들. 석징이못 아래에 있음.
  • 안-골[골] 우진부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아래쪽은 농공단지가 되었음.
  • 앞-들[들] 솔안말 동쪽 마을 앞에 있는 들.
  • 옹고뿔-들[들] 우진부리 남쪽에 있는 들. 토질이 메말라 전체 수확량이 한 옹기밖에 안된다함.
  • 옻샘-골[골] -> 참샘골
  • 용주샘-들[들] 우진부리 서북쪽에 있는 들
  • 장바우보-드리[보] 우진부리 동쪽 보청천에 있는 보. 장바우 사람들이 물을 쓰기 위하여 만든 보
  • 장판-골[골] 높은 고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 찬 샘물이 많이 남. 일부는 농공단지로 조성되었음.

5. 문화유산

  • 추모사(追慕祠)
    경주이씨(慶州李氏) 선대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
  • 경주이상동송덕비(慶州李相東頌德碑)
    빈민구제에 힘쓴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25년에 건립하였다.

6. 집성

・경주이씨(慶州李氏)
익재공(益齋公) 후예 20여호

7. 산업

  • 쌀, 과수
  • 1997년 삼승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삼영라텍스(주) 우진리 352-2 고무장갑 40
    (합)미주요업 우진리 258-2 적벽돌 41
    (주)삼베코리아 우진리 산8-11 마섬유 방적사 48
    (주)인우 우진리 366-4 암면파이프카바 21
    (주)런스킬 우진리 531(농동단지내) 철구조물트러스 19
    (주)대원칸막이 우진리 545(농동단지내) 조립식 판넬 10
    수정정판사 우진리 455(농동단지내) 장판지견본책자 4
    (주)서광프로젝트 우진리 534(농동단지내) 과수원용 전동카 20
    (주)K.P.S 우진리 539(농동단지내) 프라스틱 병마개 23
    삼우기영 우진리 532(농동단지내) 염료, 혼화제 20

원남리(元南里)

1. 위치

면적 2.51㎢, 인구 368가구 1,075명(1999년말)
면 소재지 마을로 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내망리(內望里), 서는 서원리(西原里), 남은 옥천군(沃川郡), 북은 탄금리(彈金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의 지역으로 고려시대부터 원암역(元巖驛)이 설치되어 워내미 또는 원암(元巖)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촌(松村), 중촌(中村), 월촌(越村), 상원암(上元岩), 익동(益洞), 온야(溫夜), 시촌(市村) 일부와 옥천군(沃川郡) 안남면(安南面)의 오산리(五山里)일부를 병합하여 원남리(원남리)라 하여 삼승면(三升面)에 편입되었다. 1989년 옥천군(沃川郡) 안내면(安內面) 오덕리(五德里) 일부를 다시 병합하였다.


3. 자연마을

  • 남산-촌(南山村)[마을] 온배미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상-원암(上元巖)[마을] 워내미 서북쪽에 있는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있으며 원남 3리임. 옛상원암리임.
  • 샛-골(益洞)[마을] 온배미 동쪽에 있는 마을. 옛 익동마을임.
  • 송방-뜸(松村, 두찜매)[마을] 워내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 전에 두집만 있었다고 함. 다른 지역보다 송바위처럼 올라보이는 곳이라 하여 송방이라 함. 옛 송촌 마을임.
  • 안-말[마을] 워내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 보은~영동간 국도 19호선과 안내~관기간 지방도 502호선이 교차되는 네거리 동북쪽 마을로 옛 중촌의 일부로 원남 1리임
  • 온-배미(溫夜)[마을] 워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지형적으로 밤에도 따뜻한 곳이라 함. 옛온야리 마을임.
  • 워내미(元南)[마을] 원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원남리가 변한 이름으로 국도 19호선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 중촌이며 지방도 502호선을 경계로 원남 1리와 2리로 구분된다.
  • 월-촌(越村)[마을] 워내미 서쪽에 있는 마을. 시냇물 건너 상원암 사이에 있는 옛 월촌마을임.
  • 장-터[마을] 시장이 있는 마을로 옛 시촌(市村) 마을로 원남 2리임.

4. 기타지명

  • 가재-골[골] 워내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재가 많았다 함.
  • 공심이-골[골] 워내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삼승면사무소 뒤에 있음.
  • 바우-배기[들] 샛골 동쪽에 있는 들. 큰 바위가 박혀 있음.
  • 바우배기-바우[바위] 바우배기에 있는 큰 바위.
  • 삼밭-골[들] 상원암 북쪽에 있는 들. 옛날에 삼밭이 있었다 함. 오리골 위에 있음.
  • 삿갓-들[들] 워내미 서쪽에 있는 들. 칼밭골샘이 유명해서 가마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삿갓처럼 보였다 함. 중간에 면사무소가 있음.
  • 새터-골[골] 온배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상여-바우[바위] 상원암 북쪽 금적산 중턱에 있는 바위. 모양이 상여처럼 생겼다.
  • 서낭-골[골] 상원암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선지-들[들] 원남 북쪽에 있는 들.
  • 안-산(案山)[산] 상원암 남쪽에 있는 산. 높이 191m
  • 여수-골[골] 사원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오리-골[골] 상원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오리나무가 많았음.
  • 오미기-들[들] 장터 동쪽에 있는 들. 오덕천 건너 내망리에 있음.
  • 온배미-고개[고개] 온배미에서 샛골로 넘어가는 고개
  • 온배미-골[골] 온배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절-골[골] 상원암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음.
  • 정구지-소류지[못] 원남 북쪽에 있는 못
  • 정구지구렁-골[골] 원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사람이 많이 살던 곳으로 구릉지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음. 정구지 소류지 동쪽에 있음.
  • 칼-바우[바위] 칼박골에 있는 바위. 모양이 칼처럼 생겼음.
  • 칼박-골[골] 상원암 남쪽에 있는 골짜기. 칼바위가 있음.
  • 칼박골-샘[샘] 칼바우 밑에 있는 샘
  • 텃-골[골] 상원암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 통수-골[골] 상원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퉁소가 있었음.
  • 통수골-고개[고개] 샛골에서 상원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5. 문화유산

  • 원암역지(元巖驛址)
    경산부도(京山府道)에 속한 역참으로 조선시대에는율봉도(栗峯道) 소속이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난으로 복주(福州:현재의 안동)에 몽진하였다가 평정된 뒤 환도길에 이 역에 거동한 기록이 남아있다.
    1362년(공민왕 11) 8월 병술(丙戌)에 이 역에 행차하고 정해(丁亥)에 속리산에 거동했다가 이튿날 큰 비가 와서 다시 이 역으로 돌아와 10일간 머물렀다. 이 때 늙은 대신 7인이 잔치를 베풀고 “연소창화(燕巢唱和)”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은 것이 “칠노연집시(七老讌集時)”가 남아 있는데 이색(李穡)이 서문을 썼다. 칠노란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환(尹桓),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암(李嵒), 회산부원군(檜山府院君), 황석기(黃石寄),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 홍원철(洪元哲), 수춘군(壽椿君) 이수산(李壽山), 계성군(啓城君) 왕재(王榟)다.
    대마(大馬) 1필, 기마(騎馬) 4필, 복마(卜馬) 5필과 역리(驛吏) 30명, 노(奴) 15명이 근무하던 곳이다.
  • 우암송선생 4형제 거려유허비(尤庵宋先生四兄弟居廬遺墟碑)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형제들이 병자호란때 일시 와서 살았던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2년에 상원암에 건립한 비
  • 감역송공병례선덕불망비(監役宋公秉禮善德不忘碑)
    빈민구휼에 힘쓴 송병례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1907년에 세운 비
  • 화광사(華光寺)
    상원암에 있는 대한불교 불입종 본사로 1960년에 창건되었다. 경내에 스리랑카에서 구해온 사리를 봉안한 석가세존진신사리탑(釋迦世尊眞身舍利塔)이 있는데 1992년에 건립한 것이다.
  • 법화사(法華寺)
    남산촌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로 1969년에 창건되었다.
  • 민속
    용왕제 : 매년 정월 원남 1리 주차장옆 신목(神木:느티나무, 버드나무)아래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올리고 있다.

6. 집성

  • 은진송씨(恩津宋氏)
    예로부터 은진송씨 집성촌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현재는 상원암에 장성공파(長城公派) 후손 10여호가 거주하고 있을 뿐임.

7. 산업

  • 쌀, 과수, 고추, 서비스업, 상업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대동물산(주) 원남공장 원남리 150-13 청결미(쌀) 24

8. 기타

상원암 입구에 마을자랑비를 1992년에 건립하였음.

천남리(川南里)

1. 위치

면적 3.64㎢, 인구 141가구 426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4㎞ 지점으로 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탄부면(炭釜面), 서는 탄금리(彈金里), 남은 내망리(內望里)와 마로면(馬老面), 북은 달산리(達山里)와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지역으로서 삼승산(三升山) 아래에 있다하여 삼승이 또는 삼승(三升)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각동(角洞), 상석남리(上石南里)와 하석남리(下石南里) 일부를 병합하여 오덕천(五德川) 남쪽이 되므로 천남리(川南里)라 하고 삼승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각골(角洞)[마을] 삼승이 동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봉우리가 사방에 뿔이 난 것같다 함. 옛각동 마을로 현재는 천남2리임.
  • 골-석남[마을] 성남 아래 벌판에 있었던 마을 지금은 없어졌음.
  • 삼성-이(三姓伊)[마을] -> 삼승이
  • 삼승-이(三升- )[마을] 각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 삼승리(三升里) 마을로 현재는 천남 3리임. 일설에는 삼성이(三姓伊)라 부르며 옛날에 강씨, 이씨, 산씨 등 세 사람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기도 한다.
  • 새-뜸(신촌)[마을] 각골 남쪽에 새로 된 마을.
  • 성-남(石南)[마을] 천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옛 상석남리(上石南里) 마을로 현재는 천남1리임. 남쪽에 성이 있어 “성남리”라고 부른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석남리”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 아랫-뜸[마을] 성남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아랫-말[마을] 삼승이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양짓-말[마을] 삼승이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위-뜸[마을] 성남 위쪽에 있는 마을.
  • 음짓-말[마을] 삼승이 음지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마-바위[바위] 성남꼬부랑재 중턱에 있는 바위. 모양이 가마같이 생겼다고 함.
  • 각골-꼬부랑재[고개] 각골에서 마로면 오천리로 넘어가는 고개. 뿔처럼 튀어나왔다 함.
  • 감지-둑[들] 삼승이 북쪽에 있는 들. 흙이 검어서 검지둑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임.
  • 개금불-들[들] 각골 서쪽에 있는 들.
  • 거름-산[산] 감지둑 동쪽에 있는 산. 산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검은산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임.
  • 고든-들[들] 삼승이 남쪽에 있는 들. 평야지가 많고 찰흙이 곧게 밀린다 하여 고든들이라 함.
  • 구상-골[골] 성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천남리와 내망리 사이에 있음.
  • 굴배-샘[우물] 굴뱃들 복판에 있었던 샘. 경지정리로 없어졌음.
  • 굴뱃-들[들] 석남 북쪽에 있는 들. 지형이 배의 밑바닥같이 생겼다 함.
  • 느티나무-골[골] 각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느티나무가 아래에 있음.
  • 도장-골[골] 삼승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복숭아 나무가 많다 함.
  • 돼지-구두리[산] 바람골 남쪽에 있는 산. 돼지구두리같이 생겼다 함.
  • 말둑-들[들] 새뜸 동북쪽에 이쓴 들.
  • 말랑-들[들] 삼승이 동쪽 높은지대에 있는 들.
  • 멍석-바우[바위] 삼승이 남쪽에 있는 바위. 모양이 멍석같이 생김
  • 바깥-사태[들] 성남 동북쪽에 있는 들. 안사태 동쪽임.
  • 바랑-골[골] 석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바람이 세게 불어 바람골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임.
  • 번-답[들] 굴뱃들 북쪽에 있는 들. 물이 잘 빠진다 함.
  • 보-들[들] 삼승이 북쪽에 있는 들. 감지둑들 북쪽임.
  • 사자-봉[산] 각골 동쪽에 높이 213m의 산
  • 산적-골[골] 각골 동쪽 사자산 너머에 있는 골짜기.
  • 삼승-골[골] 삼승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삼승-산(三升山:574m)[산] 천남리 남쪽에 있는 산. 삼승면 마로면과 옥천군 청산면의 경계가 됨. 신선 세사람이 승천하여 삼승산(三昇山)이라 표기하던 것이 현재의 표기로 변하였다고 함.
  • 삼승이-꼬부랑재[고개] 삼승이에서 마로면 오천리로 넘어가는 고개
  • 성남-꼬부랑재[고개] 성남에서 옥천군 청산면 만월리로 넘어가는 고개
  • 소두보-날망[들] 벌알 북쪽에 있는 들. 팥을 심어 소득을 올렸다 함.
  • 숲이-들[들] 새뜸 동북쪽에 있는 들. 숲이 보로 용수함
  • 아래-께[들] 작은골 동북쪽에 있는 들. 마을 아래에 있음.
  • 안-골[골] 각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각골재로 가는 길목임.
  • 안-구렁[들] 벌알 동쪽에 있는 들. 큰 구렁 안에 들어있어 안에 있는 들을 안구렁이라 부름.
  • 안-사태[들] 굴뱃들 북쪽에 있는 들. 옛날 사태가 많이 났다고 함.
  • 애기밭-골[골] 각골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
  • 애바달-들[들] 새뜸 동북쪽에 있는 들.
  • 은-골[골] 성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산적의 은거지역이었다 함.
  • 은담-들[들] 성남 동쪽에 있는 들. 성남과 삼승이 사이에 있음.
  • 작은-들[들] 새뜸 북쪽에 있는 들.
  • 작은망지-골[골] 각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탄부면 망지로 가는 길목에 있음.
  • 참-샘[우물] 은골 중간에 있는 찬 우물
  • 큰-골[골] 성남 북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 큰-다리[들] 삼성이 북서쪽에 있는 들

5. 문화유산

  • 선사유적
    각골 마을 앞에 있는 2개의 큰 돌로 하나는 길이 330cm, 너비 215cm, 두께 60cm이고, 하나는 길이 400cm, 너비 160cm, 두께 60cm로 약 300m 떨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표시하는 국경표시돌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지석묘(支石墓)의 뚜껑(蓋石)으로 추정하고 있다.
  • 구장 김수의 청덕비(區長 金秀義 淸德碑)
    구장 재직중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41년에 세운 \

6. 집성

  • 진주강씨(晋州姜氏)
    천남 2리 각골 마을에 30여호가 거주하고 있다.
  • 경주이씨(慶州李氏)
    천남 3리 삼승이 마을에 15호가 거주하고 있다.

7. 산업

  • 쌀, 고추, 담배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태아포장 천남리 725-1 포장용 판지상자 5
    국일산업(주) 천남리 605-10 톱밥 12

탄금리(彈琴里)

1. 위치

면적 1.62㎢, 인구 65가구 208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북동쪽 2㎞ 지점인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은 천남리(川南里), 서는 서원리(西原里), 남은 원남리(元南里), 북은 상가리(上可里)와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삼승면(三升面) 소재지 마을로 지형이 거문고같이 되어있다 하여 탄금대(彈琴臺)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막은리(幕隱里)와 서원리(西原里) 일부를 병합하여 탄금리(彈琴里)라 하였다. 뒤에 면사무소가 원남리(元南里)로 이전되었다.


3. 자연마을

  • 막음-골(幕隱洞)[마을] 탄금대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좌우로 산이 가로막혀있고 앞은 수목으로 가려져서 마치 막을 친 것 같음. 옛 막은리(幕隱里)로 현재는 탄금 2리임.
  • 탄금-대(彈琴臺)[마을] 탄금리의 중심마을. 하내망 후산봉의 옥녀봉과 탄금리 막음골에서 옥녀가 앉아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함. 옛 탄금리로 현재는 탄금 1리임. 삼승면 소재지로 면사무소가 있었고 면내에서 최초로 사립학교가 세워졌다고 함.

4. 기타지명

  • 강당(講堂)[터] 탄금대 동쪽에 있는 터. 전에 강당이 있었다 함.
  • 곰배-들(丁坪)[들] 탄금대 남쪽에 있는 들. 모양이 등처럼 굽었다고 함.
  • 교천(蛟川)[내] 탄금대 앞으로 흐르는 내. 금적산에서 발원하여 내망리에서 오덕천과 합수됨
  • 구-메[터] 탄금대 남서쪽에 있는 마을터. 옛날 세집이 살았다고 함.
  • 구렁-들[들] 탄금대 북쪽에 있는 들. 궁고개 아래에 있음.
  • 궁-고개[고개] 탄금대에서 막음골로 넘어가는 고개. 활처럼 굽었다고 함.
  • 대마산-들[들] 탄금대 동남쪽에 있는 들. 1988년 경지정리로 모두 논으로 변하였음.
  • 대마산-보[보] 탄금대 동남쪽 대마산들에 있었던 보.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함.
  • 돈담-들[들] 탄금대 서쪽에 있는 들.
  • 마구-산[들] -> 마부산
  • 마부-산(마구산)[들] 탄금대 동남쪽에 있는 들. 말을 기르던 사람이 마굿간을 지어 붙인 이름으로 곰배들 동북쪽에 있음.
  • 말-무덤[들] 돈담들에 있는 말을 묻은 무덤이었으나 경지정리로 논이 되었음.
  • 바가지-샘[우물] 탄금대에 있는 샘
  • 백민-촌(白閔村)[골] 전에 백씨와 민씨가 살았다고 함.
  • 사지-보[보] 탄금대 동남쪽 오덕천에 있는 보. 사지봇들 용수에 사용됨
  • 사지봇-들[들] 탄금대 동쪽에 있는 들. 모래가 많은 들임.
  • 수반-들[들] 탄금대 서남쪽에 있는 들. 돈담들 남쪽 교천 건너에 있음.
  • 수정-골[골] 정구지 남쪽에 있는 골짜기. 신수가 나온 골짜기라 함.
  • 아리랑-고개[고개] 막음골에서 상가리와 달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가 높아서 넘기가 힘들었다 함.
  • 안-산[산] 탄금대 서남쪽에 있는 산. 마을 앞이 됨.
  • 역-고개[고개] 조징이에서 수정골을 거쳐 원남역으로 넘어가던 고개
  • 장-고개[고개] 막음골에서 탄금대로 넘어가는 고개. 청산에서 보은장을 보러 다니던 장꾼들이 넘던 고개라 함.
  • 정구지구렁-골[골] 탄금대 남쪽에 있는 골짜기. 사람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구릉지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정구지-소류지[못] 정구지구렁 서쪽에 있는 못
  • 조징이-들[들] 탄금대 서쪽에 있는 들. 전에 조씨와 정씨가 살았다고 함.
  • 첫-바우[바위] 조징이 남쪽에 있는 바위.

5. 문화유산

  • 사인정태경제궁비(士人鄭泰京濟窮碑)
    빈민구제에 힘쓴 공적을 기리는 비로 1936년에 세웠음.
  • 장분이여사공적비(張分伊女士功績碑)
    경로당부지를 희사한 공직비로 1988년에 세웠음.

6. 산업

  • 쌀, 과수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주)연초비료 탄금리 401 부산물 퇴비 17

7. 기타

1997년 마을 앞에 자랑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