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료집

보은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곳

산외면

산외면(山外面)

1. 위치

면적 58.64㎦, 인구 833가구 2415명(1999년말).
본군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경북(慶北) 상주시(尙州市) 화북면(化北面), 남은 내속리면(內俗離面)과 보은읍(報恩邑), 서쪽은 내북면(內北面), 북은 청원군(淸原郡), 미원면(米院面)과 괴산군 청천면(槐山郡 靑川面)에 닿는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서 속리산 바깥족이 되므로 산외면(山外面)이라 하여 여동(汝洞), 암동(岩洞), 장갑(長甲), 백석(白石), 문암(門岩), 구티(九峙), 아시(牙時), 상신(上新), 하신(下新), 탁주(濯注), 지동(池洞), 동화(東華), 삼부평(三芙坪), 원평(院坪), 오대(五大), 신흥(新興), 어온(於溫), 가고(加古), 이식(利息)의 19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 폐합에 따라 내북면의 산대, 중티, 길동, 탕동, 천산의 5개 동리를 병합하여 대원(大元), 신정(新正), 장갑(長甲), 백석(白石), 문암(門岩), 구티(九峙), 아시(牙時), 봉계(鳳溪), 탁주(濯注), 동화(東華), 원평(院坪), 오대(五大), 어온(於溫), 가고(加古), 이식(利息), 산대(山大), 중티(中峙), 길탕(吉湯)의 18개 리로 개편 관할하고 있다..


3. 자연

본면은 560m의 탁주봉을 중심으로 동에는 480m의 장구봉, 남으로는 513m의 산지로 북쪽은 512m의 산지가 분포되어 내속리면에서 발원하는 속리천의 복잡한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4. 산업

논 4,328ha, 밭 743ha, 임야 4,224ha, 대부분 산지가 많아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미곡 생산보다는 고추, 담배 재배로 소득증대를 꾀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인삼재배 농가로 소득증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5. 교통・문화

산지대로 형성되어 교통이 열악하였으나 최근에는 동서남북으로 2차선 교통망이 형성되어 용화면으로 해서 상주도 갈 수 있고, 청천면을 잇는 화양동을 지나 월악계곡을 이어가는 관관당지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청주에서 속리산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거북티재를 확장하고 있다. 4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통폐교되어 산외초등학교만이 독립교로 유지되고 장갑은 분교로 존립하고 있다. 신정리에 청소년 수련원이 생겨 인성교육의 요람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면 소재인 구티리에는 산외초등학교와 면사무소, 지서, 우체국, 농협분소가 있다. 옛날에는 5일장이 서서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은 교통이 편리하여 생활권이 경북 화북면 사람들까지도 보은장을 이용하고 있다.

가고리(加古里)

1. 위치

면적 1.58㎦, 인구 24가구 47명(1999년말), 본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북은 청원군 미원면 (淸原郡 未院面), 서는 어온리(於溫里), 남은 오대리(五大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 더구리 또한 덕우리(德友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고리(加古里)라 하였다. 교통은 마을 앞을 지나 청원군 금관리를 잇는 아스팔트 도로가 2차선으로 뚫려 있다.


3. 자연마을

  • 골-말 : 더구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 서쪽 골짜기를 따라 형성되었다고 하여 골마을이라고 한다.
  • 부자-골 : 옛날에는 부자가 많이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기왓장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함.
  • 양지-말 : 골말의 동쪽 가막골 고개 밑에 있는 양지쪽 마을.
  • 중-뜸 : 골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더구리 중간이 됨.

4. 기타지명

  • 가막골-고개 : 더구리에서 미원면 금관리 가막골로 넘어가는 고개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하며, 흙이 질어서 가막골 고개라고도 한다.
  • 국수봉 : 더구리 서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에 측량을 위한 푯대가 있었다고 함.
  • 동대-골 : 더구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부숫골내에 있음.
  • 부숫골 : 더구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부숫골-들 : 더구리 동남쪽 부숫골에 있는 들로서 오대리 사이가 됨.
  • 소시랑-봉 : 더구리 남쪽에 있는 산으로 소시랑처럼 생겼음.
  • 은골-고개 : 더구리에서 어온리 은골로 넘어가는 고개.
  • 중-고개 : 골말에서 은골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에 스님이 이 고개를 넘다가 기진해서 죽었다고 하여 중고개라고 함.
  • 칡-고개 : 더구리 서쪽에 있는 고개로서 미원면 운암리로 넘어감.
  • 큰-부숫골 : 더구리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로 미원면 옥화대로 넘어가는 골짜기.

구티리(九峙里)

1. 위치

면적 1.37㎦, 54호, 인구 147명(1999년 말). 본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은 탁주리(濯州里), 서북은 길탕리(吉湯里), 남쪽은 아시리(牙時里)에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거북티 고개 밑이 되므로 거북티 또는 구티(龜峙)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티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구티-리 : 구티는 원래 마을 입구에 있는 산이 거북이와 같다고 해서 구티(九峙)라 하였으며, 또한 구티고개가 아홉구비(九峙)라고 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고도 함.

4. 기타지명

  • 대부-산 : 방아재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큰 부자들이 살았다고 함.
  • 방아-재 : 거북티에서 두무골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디딜방아 같이 생겼다는 고개
  • 샛-골 : 거북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이 철분이 많아서인지 쇳물이 흘러나온다고 해서 쇳골이던 것이 구개음화되어 샛골이 되었음.
  • 숫돌-배기 : 거북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칼을 가는 숫돌이 많이 나왔음.
  • 아게미-골 : 거북티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생겼다고 하여 아가미골이라던 것이 변하여 아게미골이 됨.
  • 아래-재피산 : 거북티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재피나무가 많다고 함.
  • 여우-골 : 샛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여우가 살았다고 함.
  • 작은-고개 (작은거북티) : 구티에서 길탕리 주막거리로 넘어가는 고개. 큰 거북티재보다 작다고 하여 작은재라고도 함.
  • 장-터 : 구티리 시장터로서 1975년도까지 5일마다 장이 크게 서기도 하였으나 시내버스가 생기고 교통이 편리하게 되자 보은장으로 생활권이 변하여 없어지게 되었음.
  • 차돌-배기 : 거북티 동쪽의 골짜기로 큰차돌이 3개 박혀있음.
  • 참샘-골 : 아세미-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에 찬 샘이 있어 찬샘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참샘골이 됨.
  • 거북티 마을비 : 수령이 5백여넌으로 추정되는 마을 중앙에 위치한 느티나무 밑에 마을 유래비가 세워져 있음.

5. 문화유적

  • 김명진공적비(金明鎭功績碑)
    어사 김명진(金明鎭)의 애민선정비로서 우체국앞 중앙 느티나무 도로변 옆에 세워져 있으며, 일부가 파손 마모되어 내용이 확실치 않다.

길탕리(吉湯里)

1. 위치

면적 2.15㎦, 인구 54가구 145명(1999년 말). 본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탁주리(濯洲里), 서는 중티리(中峙里), 남은 봉계리(鳳鷄里), 북은 산대리(山大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내북면 지역인에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길동과 탕동을 병함하여 길탕리라 해서 산외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도랫말 : 평진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평진말을 중심으로 돌아앉은 마을이라 도랫말이라고 함.
  • 안말 : 질골의 중간이 있는 마을.
  • 질골(吉谷) : 길탕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탕골에서 떡을 찌고 질골에서 질그릇을 설거지 한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
  • 탕골(湯谷) : 질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뒤로는 시루산이 있고 시냇물이 시루산을 돌아나감으로 시루에 떡을 찐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함.
  • 평진말 : 탕골 복판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대골 : 호랑봉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매우 커서 대골이라고 함.
  • 두무골 : 질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철광이 있어 드나들던 골로서 지금은 길탕 2리가 된다.
  • 메기바위 : 예부터 큰 메기가 살고 있었다고 함.
  • 방죽골 : 탕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방죽이 있음.
  • 빈정산 : 탕골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호랑봉을 빗겨 있다고 함.
  • 산지당골 : 질골 남쪽에 있는 산으로 배의 돛대형 모양으로 생겼다고 함.
  • 솟대봉 : 탕골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산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함.
  • 시루산 : 중티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산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함.
  • 아랫고개 : 질골에서 내북면 두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 웃고개 : 질골에서 봉계로 넘어가는 고개
  • 장고개 : 질골에서 봉계로 보은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 중티고개 : 탕골에서 창리로 넘어가는 군도 고개로 탕골에서는 가경관광농원이 조성되어있다.
  • 하들 : 탕골 동북쪽에 있는 들녘으로 마을 제일 아래쪽에 있음.
  • 호랑봉 : 탕골 동쪽에 있는 산으로 산 모양의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고 함.
  • 자연경권 : 속리산에서 발원하는 시냇물은 전혀 오염되지 않은 곳으로 어종이 다양할 뿐 아니라 피서지로도 적합하여 이 고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으먀, 충주 남한강 달천으로 가는 젖줄이다. 충주에서 청주를 거쳐 보은으로 보은에서 상주를 잇는 내륙 고속도로가 시루봉을 뚫고 이곳을 지나가게 된다.

대원리(大元里)

1. 위치

면적 3.33㎦, 인구 32가구 94명 (1999년 말). 본면의 동쪽 끝에 위치하며, 동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서는 청원군 미원면(淸原郡 米院面), 남은 장갑리(長甲里), 신정리(新正里), 북은 괴산군 청천면(槐山郡 靑川面)에 접하여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여동, 체항리, 고점리를 병합하여 대원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고점리(高店里) : 높은 제미 마을 이름이다.
  • 높은제미 : 체메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근처에서 가장 높은 신선봉 산맥이 있음.
  • 여동골(汝洞谷) : 대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뒤에서 동자처럼 생긴 산이 있고, 옛날에는 선녀들이 살았다고도 한다.
  • 체메기(棣項里) : 여동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 산맥이 체 모양으로 생겼으며, 청원군을 넘나드는 길목이 된다.

4. 기타지명

  • 갈골 : 체메기 왼쪽에 있는 골짜기
  • 검단산(儉丹山) : 대원리 여동골 뒷산으로 괴산군과 경계가 됨. 767m로 백제 때, 검단이란 스님이 살았으므로 검단산이라 부른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공부하던 고운암(孤雲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고 있다.
  • 구느돌 : 여동골 참나무쟁이 앞에 있는 들녘으로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 덕다리 하던 곳이라고 한다.
  • 깃대봉 : 여동골 북쪽에 있는 산으로 보은군, 괴산군, 청원군, 상주시 4군의 경계가 되며, 측량시 산정상에 깃대를 꽂았다고 함.
  • 너른 사태골 : 여동골 북쪽 안쪽에 있는 넓은 골짜기
  • 느다리 : 여동골 남쪽에 있는 다리로 신정리와 경계가 된다. ‘널다리’가 늘다리로, 늘다리가 ‘느다리’로 변함.
  • 떡갈목이(德加山) : 여동골 동쪽 석쇠골 끝에 있는 산으로, 보은군, 괴산군, 상주군과 경계가 되는 산이다.
  • 반석골 : 여동골 동남쪽 석쇠골 맞은 편에 있는 골짜기.
  • 번개펀던 : 여동골 북쪽 안골에 있는 버덩.
  • 범마당 : 여동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범이 놀았다고 함. ‘범골’이라고도 한다.
  • 비들목 : 여동골에서 장갑리로 넘어가는 고개.
  • 소삼각(小三角) : 여동골 동쪽에 있는 산으로 측량시 삼각형을 이루는 기점이 되었다고 하며, 소삼각으로 변함.
  • 신선봉(神仙峰) : 대원리 높은 제미 뒷산으로 보은군과 청원군, 괴산군, 3군의 경계가 됨. 백제때 검단(儉丹)과 최치원(崔致遠)이 죽어 신선이 되어 자주 이곳에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연애골 : 여동골 남쪽 병목안 아래에 있는 골짜기.
  • 중골 : 여동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높은 제미와 치메기로 가는 길목임.
  • 참나무 쟁이 : 여동골 입구에 있는 길목으로 참나무가 우거졌다고 하나, 오늘날 참나무는 베어지고 대신 느티나무를 심어 보호하고 있으며 정월 14일 밤에는 마을 사람들이 ‘대동제’를 지내고 있다.
  • 활목재 : 여동에서 경주 상주시 화북면 신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고 함.
  • 황박골 : 여동골 북쪽 안쪽 안에 있는 골짜기.

5. 전설

  • 검단산
    아득한 옛날 검단산에 금빛을한 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금돼지는 몇천년 묵은 것 이어서 온갖 조화를 다 부렸다. 금돼지는 고을 원님이 살고 있는 마을에 사람으로 변하여 나타나 고을 원의 부인을 잡아가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일로 금돼지를 잡기 위해 방을 붙이고 현상금을 걸었으나 조화가 무궁한 금돼지를 잡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이 고을에 부임하려는 원님이 없어 고심하던 중 아주 담력이 세고 힘께나 쓰는 장수 한 사람이 고을 원을 자청하였다.
    원으로 부임한 장수는 꾀를 내어 명주실 오천 발을 구해 오라고 시켜 그 실의 끝을 자기 부인 치마주름 끝에 단단히 매어 놓았다. 한 밤중에 곤히 자던 부인이 밖으로 나가던 것이었다. 원님이 정신을 차리고 명주실을 슬슬 풀어주고 오천 발이 되는 명주실이 더 이상 당겨지지 않자 다음 날 날이 밝자 명주실을 따라가다 보니 검단산 깊은 골짜기 어느 작은 굴안으로 이어져있어 들어가 보니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 굴 안에는 많은 여인들이 잡혀와 있었다. 원은 부인들과 자기 부인을 구하기 위하여 금돼지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사슴 가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고을 원님의 직인 주머니가 사슴 가죽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직인 주머니로 금돼지를 처치하고 자기 아내와 많은 여인들을 구해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수 개월이 지나 원님의 아내는 태기가 있게 되자 금돼지 새끼라고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원님의 간곡한 만류로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신라의 유명한 문장가요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이라는 전설이다.
  • 신선-봉
    옛날 이야기다.
    이 마을에 젊은 나무꾼 한 사람이 도끼를 가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나무를 한참 하다보니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두는지 나무꾼은 도끼를 옆에 두고 정신없이 두 노인의 바둑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가 서산 마루에 걸치자 두 노인의 바둑은 끝났다. 그리고 두 노인은 서로 손을 잡고 하늘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정신을 차리고 옆에 놓아두었던 도끼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갈 양 도끼를 찾아 보았더니 어느 새 도끼자루가 썩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는 온데간데 없고 낯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하도 기가막혀 따져보았더니 자신의 아내는 이미 50년전에 죽고 손자 내외가 아이들과 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무하러 가서 두 노인의 바둑구경을 하는 사이에 100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더라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일이 있은 후부터 바둑을 두던 두 노인은 신선이 된 검단과 최치원이고 신선이 놀다 간 봉우리라 하여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6. 산업, 교통

대부분 밭농사로 고추 밑 담배 인삼재배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산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음. 교통은 용화를 잇는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상주로 화양동 월악계곡을 잇는 교통 요충지이다.
생활권은 상주시 화북면 까지도 보은군이며, 또한 산외면 신정 개발권으로 희망에 부풀어 있는 고장이다.

동화리(東華里)

1. 위치

면적 9.24㎞, 인구 18가구 43명(1999년말). 본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은 장갑리(長甲里) 서는 탁주리(濯洲里), 남은 백석리(白石里), 북은 원평리(院坪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동아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동아목 또는 동화목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부평리(三芙坪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화리라 하였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들녘을 금밭들이라 하였는데 예전에 금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6.25전란 중에도 한 명의 희생자가 없던 명당 마을이다. 오늘날 고추와 인삼재배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3. 자연마을

  • 고제 : 웃말 남쪽에 있는 높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인 말임.
  • 아랫말 : 고제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가운데 아래에 있음. 아랫곳말이라고도 부른다.
  • 웃골말 : 아랫말 동쪽에 있는 마을. 동화리 맨 위에 있음.
  • 황곳말 : 아랫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 한끝말이던 것을 황곳말로 고쳐 부르게 됨.

4. 기타지명

  • 금밭들 : 아랫말 북쪽에 있는 들로서 옛날 금이 나왔다고 함.
  • 불당터 : 웃말 동쪽에 있는 불당터로 예전에 절이 있었음.
  • 새골 : 아랫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새들이 많다고 해서
  • 천지봉 : 웃골말 남쪽에 있는 높은 산이라고 해서 천지봉.
  • 칼바위 : 아랫말 하천에는 칼날처럼 생긴 바위가 있음. 칼바위 아래에는 보가 있어 항상 물이 가득하다. 해방 전 까지만 칼바위 아래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함.
  • 칼봇들 : 아랫말 북쪽에 있는 들로서 칼바위 아래에는 보가 있음.
  • 느티나무 : 마을 입구에 있는 수령이 5백년이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로 화재를 보아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전봇대로 받쳐 놓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동화목-소류지 : 마을 뒤에 있는 못으로 농사 짓는데 젖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보배로운 연못이다.

문암리(門岩里)

1. 위치

면적 3.2㎦, 인구 37가구 110명 (1999년 말). 본면의 남쪽에 동은 내속리면, 서는 아시리(牙時里), 남은 보은읍, 서는 탁주리(濯洲里), 백석리(白石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문바우가 있음으로 문바우, 또는 운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문암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뒷말(바깥곱냉이) : 곱냉기 바깥마을 뒤에 있다고 해서 뒷말임.
  • 밖곱냉기 : 곱냉기 바깥쪽에 있는 마을로 곡식이 곱으로 생산된다고 하여 곱냉이라고도 함.
  • 안말(안곱냉이) : 곱냉기 안쪽에 있는 마을
  • 중간말(원곱냉기) : 안말과 뒷말 중간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시양달 : 곱냉기 동쪽에 있는 산으로 덩굴가시가 만흔 양지쪽 산.
  • 대루봉 : 곱냉기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병풍을 둘러 친듯하여 두루봉이라고도 함.
  • 더덕골 : 곱냉기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함.
  • 동자석 : 곱냉기 입구에 있는 비석으로 마을 수호비이다.
  • 문바우(門岩) : 곱냉기 동남쪽에 있는 큰 바위로 성문처럼 생겼다고 함.
  • 북시골 : 곱냉기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북실로 넘어가는 고개
  • 오리나무들 : 안말 입구에 있는 들에 큰 오리나무가 있었다고 함.
  • 장군석 : 곱냉기 입구에 있는 비석으로 마을의 수호비이다.
  • 홍두깨날 : 가시양달 남쪽에 있는 산으로 산줄기가 홍두깨 같이 생겼다고 함.
  • 흔들고개 : 안말에서 백석리 흔들로 넘어가는 고개

5. 문화유적

  • 김원량부조묘(金元亮不祧廟)
    문암리에 있는 경주김씨 종중 소유의 비지정 문화재. 정사공신 월성군 김원량의 부조묘로서 1661년 현종 2년에 건립되었다.

6. 전설

  • 동자석과 장군석
    약 3백여년전 농사를 지으며 곱이 난다고 하여 ‘곱냉기’라고 하는 문암리에 터를 닦은 경주 김씨들은 학혈머리라는 명당에 선조의 산소를 쓰고 자손들과 마을의 번성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마을은 평온하지 못하였다. 해마다 잡귀가 들어 사람들이 죽어가는가 하면 도적이 들어와서 약탈과 살인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노승이 나타나서 마을 주위에 동자석과 장군석을 세우면 마을이 평온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떠났다. 그리하여 마을에서는 장군석과 동자석을 세웠더니 마을의 환난이 사라졌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많은 장군석과 동자석은 없어지고 지금은 한개씩 남아있어 해마다 음력 정월 초가 되면 축관과 제관을 하여 마을 수호신인 장군석과 동자석에게 제사를 지내며,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무해, 무병,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백석리(白石里)

1. 위치

면적 3.07㎦, 인구 40가구 154명(1999년 말). 본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내속리면(內俗離面), 서는 탁주리(濯洲里), 남은 문암리(門岩里), 북은 장갑리(長甲里)에 접하여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흰 돌이 많이 있으므로 흰돌이라 하던 것을 흔들 또는 백석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갑리 일부를 병합하여 백석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은점(銀店 : 백석사업장) : 1956년 피난민들이 모여 집단으로 개간하여 난민정착 사업장을 만들어 부자마을이 되었음. 일제 시대 은광으로 각광을 받았던 마을이다.

4. 기타지명

  • 갱경바우 : 홋대뿔 입구에 있는 바위가 안경처럼 생겨 안경바우라 하던 것이 갱경바우로 변함.
  • 고래실 : 홋돌 북쪽에 있는 들녘으로 언제나 물이 있는 논이라고 함.
  • 깊은골 : 홀애비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길고 깊음.
  • 닥박골 : 천시막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타박타박 걸을 수밖에 없다고 해서 닥박골이라고 함.
  • 닥박골고개 : 내속리면 백현리 잣고개로 넘어가는 고개
  • 돌안이(도라에) : 흔들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산을 끼고 비스듬히 돌아간다고 해서 돌안이
  • 두차골 : 흔들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대추나무가 많았음.
  • 박바우 : 장구봉 밑에 있는 바위로 박씨집 뒤에 있다고 함.
  • 백석 1교 : 장갑리에서 백석으로 가는 중간에 높은 콘크리트 다리 전장 69m로 1986년에 준공됨
  • 백석 2교 : 백석 2리 (은점)에서 내속리면 백현리로 가는 다리로서, 피난민들이 많이 살던 은점이며, 현재 백현리 앞에 놓은 교량으로 1교와 함께 건설되었음.
  • 백석사업장 : 현재 백석 2리 마을 뒷산으로 일제 때 은광이 있었다고 해서 은점이 되었고 남으로는 암벽산으로 절경을 이루었고 속리산에서 발원되는 냇물은 명경지수를 이뤄, 여름철 피서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고장이 되었다.
  • 사랭이 : 흔들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호랑이가 나왔다고 함.
  • 서낭고개(흔들고개) : 흔들에서 문안리 곱냉기로 넘어가는 고개.
  • 천시막골 : 사랭이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에서 전에는 천막을 치고 살았다고 함.
  • 홀애비골 : 흔들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전에는 홀애비들이 많이 살았었다고 함.

5. 전설

지금의 백석 1리에서 문암리 쪽으로 가는 골짜기 베틀 바위에서 예쁜 아가씨가 몰래 베를 짷았다고 해서 ‘베틀바우’가 되었다고 함.


6. 민속놀이

우리 고장 보은군을 대표하여 ‘전국민속놀이 경연대회’에서 백석리의 ‘흰돌물다리기’가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기도 하였다. 속리축전 행사시 여러번 시연하기도 하였으니 백석리의 자랑이다.

봉계리(鳳溪里)

1. 위치

면적 2.14㎦, 인구 111가구 318명(1999년 말). 본면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아시리(牙時里), 서남은 내북면(內北面), 북은 길탕리(吉湯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새실 또는 봉계, 신곡(新谷)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신리(上新里), 하신리(下新里)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상신 : 봉계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세거리(三巨里) : 상신 남쪽에 있는 마을. 보은 청주간 세 갈랫길이 있음.
  • 아랫말 : 상신리 아래 쪽에 있는 마을
  • 안터 : 상신리 안쪽에 있는 마을
  • 중신 : 봉계리의 중간에 있는 마을
  • 지디기 : 웃말 남쪽에 있는 긴 마을
  • 하신 : 봉계 아래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운뎃골 : 안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마을 가운데 있음.
  • 갓골 : 안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 모양이 옛날 갓 같이 생겼음.
  • 깔바우 : 절골에 있는 바위로 널리 깔려 있음./li>
  • 논장골 : 가운뎃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근처의 논이 길어서 논장골 또는 깊은골이라고도 함.
  • 도둑골 : 논장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적들이 많이 살았음.
  • 말랑고개 : 하신에서 중신으로 넘어가는 고개.
  • 무네미(미네미) : 세거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물이 넘어왔다고 함.
  • 문암천(門岩川) : 문암리에서 발원하여 보청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내
  • 봉계교(세거리다리) : 봉계리 남쪽에 있는 다리. 1957년 10월 준공
  • 새실들 : 봉계리 앞에 있는 들녘
  • 성수봉(송수뱅이) : 도둑골 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성인들이 도를 닦았다고 함.
  • 옻샘 : 상신 입구에 있는 우물. 옻오른 사람의 피부병 환자가 씻으면 치료가 잘 된다고 함.
  • 웃골 : 중신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절골 : 아랫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전에는 절이있었음.
  • 절골 소류지 : 절골에 있는 작은 소류지
  • 진도리 : 세거리 서쪽에 있는 긴 골짜기
  • 큰골 : 하신 뒤쪽에 있는 큰 골짜기

산대리(山大里)

1. 위치

면적 1.92㎦, 인구 52가구 162명(1999년 말). 본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오대리(五大里), 서는 이식리(梨息里), 중티리(中峙里), 남은 길탕리(吉湯里), 북은 어온리(於溫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서, 산 속의 터가 되므로 산대(山大)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포, 재동, 모정을 병합하여 산대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모링개 : 원산대 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노루를 잡으려고 모랐다고 해서 붙인 말
  • 모정(茅亭) : 산대리 동쪽에 있는 마을. 약 2백여년전, 구씨의 선조 모정공이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함.
  • 바깥모정 : 모정의 바깥쪽에 있는 마을 이름
  • 신개울(新浦) : 산대 서쪽에 있는 마을
  • 재경골(재궁골,才洞) : 신개울 동쪽에 있는 마을. 약 2백년전 문화 류씨의 재궁이 있었음
  • 원-산대 : 신개울 남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느티나무 : 바깥 모정 복판에 있는 큰 느티나무
  • 뒷골 : 모링개 뒤쪽에 있는 골짜기
  • 베징개골 : 산대에서 이식으로 넘어가는 골짜기
  • 붓들 : 바깥 모종 남쪽에 있는 들녘으로 큰 보가 있음.
  • 빈정산 : 바깥모종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얼음이 녹지 않는다고 하여 징정산이라 불리다가 빈정산이 됨. 원평으로 가는쪽의 산임.
  • 산대고개 : 신개울에서 모종으로 넘어가는 고개
  • 산대대교 : 산대 입구에 있는 50m의 콘크리트 다리. 구티 창리간의 군도를 이어짐.
  • 서장골 : 바깥모종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승지골 : 바깥모종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도승지가 귀양와서 살던 곳이었다고 함. 지금의 오대임
  • 쟁골고개 : 신개울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횟돌이 많은 고개임.

5. 문화유적

  • 김경세충렬문(金景世忠烈門)
    산대리에 있는 금녕 김씨 중종 소유의 정문임.
  • 유상길(柳相吉), 상태(相泰), 상좌(相佐) 3형제
    본관은 문화 유씨(文化 柳氏). 성제 충원(忠源)의 아들로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였고, 친상 3년에 조석으로 묘소를 참배할뿐 아니라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한 효성에 고들에서도 감복하였다는 3효자 이야기.

신정리(新正里)

1. 위치

면적 3.25㎦, 인구 26가구 76명(1999년 말). 본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은 경북(慶北), 서는 장갑리(長甲里), 남은 내속리면(內俗離面), 북은 대원리(大元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 바위가 많이 있으므로 바위골 또는 암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정리로 고쳤다.


3. 자연마을

  • 말랑 : 아랫말과 웃말 사이에 있는 마을
  • 바윗골 : → 신정리
  • 아랫말 : 신정리 아래쪽 마을
  • 암동(岩洞) : → 신정리

4. 기타지명

  • 감투바위 : 아랫말 동쪽에 있는 바위로 감투같이 생겼으며, 바위밑에는 샘물이 나오고 있어, 6.25사변때 피난민들이 이 곳에서 기거한 곳이기도 함.
  • 괘등쟁이 : 아랫말 서쪽에 있는 산으로 마치 등잔을 걸어놓은 것같이 생겼음.
  • 농바위 : 아랫말 동쪽 절골에 있는 치마바위 아래 있으며, 마치 바위가 농을 엎어놓은 형상을 하고있음.
  • 덤바위 : 마을 동남쪽 너른개골에 있는 바위로 애기 없은 바위 옆에 있음 바위 밑에는 ㄱ자로 꺽어진 굴이 있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경음악처럼 들리는 바위임.
  • 덤부레골 : 아랫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다래, 으름덩굴이 많았음.
  • 묘봉(두루봉) : 마을 동남쪽에 있는 800여m나 되는 최고봉 산으로 속리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8경의 한 곳임.
  • 말바위 : 마을 뒷산에 있으며 말처럼 생겼다고 말바위라고 하는데 바위 밑에는 3백여 년이 넘어 보이는 노송이 웅장하게 서 있어 운치를 더 해주고 있다.
  • 미남봉 : 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미남 같이 생겨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장군석 세 개가 있고 그 밑에는 감투바위가 있어 8경의 하나로 절경을 이루고 있음.
  • 밤나무골 : 마을 동남쪽의 골짜기로 밤나무가 많았다고 함.
  • 벼루들( 硯坪) : 마을 입구에 있는 들녘으로 모양이 벼루처럼 생겼다고 해서 연평으로 한쪽에는 큰 바위가 있어 먹으로 생각하였으나 논을 넓히려고 바위를 들어내어 지금은 없음.
  • 병목안골 : 아랫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미남봉 밑이 되며, 병목처럼 생겼다고 함.
  • 부시골 : 웃말에서 내속리면 북암리 부숫골로 넘어가는 고개.
  • 산제골 :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제당은 1973년 헐렸으나 정월 초이튼날 마을 사람들이 지금도 산제를 지냄.
  • 상학 : 상학봉 중허리에 있는 절터로 지금은 흔적만 있음.
  • 상학봉 : 마을 동쪽에 있는 산으로 충북과 경북의 경계가 되며, 석천암 병풍바위에서 묘봉 - 주전봉 -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6시간 거리의 등산코스로 개발되고 있는 8경임.
  • 새터고개 : 아랫말에서 대원리 여동골로 넘어가는 고개.
  • 쌀개봉 : 마을 앞산에 있는 산으로 디딜방아의 쌀개와 같이 생김.
  • 신정유스타운 : 마을 입구 장승제단을 지나면, 왼쪽으로 육중한 5층으로 신축된 유스타운은 1997년에 개관되었다. 원시적인 자연 경관 속에서 청소년들의 산체험 학습장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준비하고 있다.
  • 석천암(병풍바위) : 마을로부터 남쪽 석천암 골짜기에 있는 바위로 바위 밑으로는 방안만한 굴이 있는데, 그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굴 입구를 막아버림.
  • 수문이골고개 : 웃말에서 내속리면 백현으로 넘어가는 고개.
  • 애기업은바위 : 마을 동남쪽 두루봉골에 있는 바위로 큰바위 뒤에 작은 바위가 붙어있는 것이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업은 것과 같다고 함.
  • 용화골고개 : 마을에서 경북 상주시 용화로 넘어가는 고개.
  • 장군석 : 마을 동쪽 절골에 있는 바위로 농바위 아래에 있으며, 두 개의 장군처럼 우뚝 솟은 바위가 장관이다. 주위에 탑이 있었기에 탑을 복원할 예정임.
  • 장성거리 : 마을 입구 탑거리 아래 노송들이 있는 곳에다 서재원씨가 나무로 된 장승을 조각하여 장승제단도 만들고 지난 해, 정월 열나흘 날 저녁에 거군적으로 전동민과 함께 동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장승문은 특이하다. 건건수괴대장군(乾建遂塊大將軍 : 남신) 곤순납복대장군(坤順納福大將軍 : 여신)이라고 마을 전체가 지내는 동고사는 정월 열나흘 날이며, 산신제는 정월 초이틀 날 지내고 있다고 함.
  • 절골 : 아랫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골과 미남봉 사이에 절이 있었다고 함.
  • 주전봉 : 마을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산 밑에서 몰래 엽전을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임.
  • 치마바위(상반석) : 마을 동쪽 절골에 있는 바위로 치마처럼 생겼음.
  • 탑거리 : 마을 입구에 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헐리움.
  • 민속미륵도 : 마을 웃말에 있는 토속신앙 미륵도는 지난 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으며, 미륵, 칠성, 산신, 용신, 터주신을 기도하는 곳.
  • 정심정도(正心正道) : 미륵도가 오기 전부터 웃말에는 토속신앙으로의 정심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5. 기타

신정리는 산촌 종합개발 마을로 지정되어 3개년 계획에 따라 14억원을 투입하여 살기좋은 복지농촌 건설에 희망에 부풀어 있는 마을이다. 3백여년전 인동 張씨, 평산 申씨, 대구 徐씨, 경주 金씨 들이 대성촌을 이루어 50여 호가 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26호가 사는 조그만 산촌 마을이지만, 빼어난 산천이 아름다워 ‘신정유스타운’이 생겨났고 청소년 수련워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고장이다. 산외면의 교통은 사통팔달로 경북을 직통할 수 있으며, 화양계곡을 지나 수안보 단양 팔경으로도 직행할 수 있는 2차선 도로가 시원스럽게 개통되어 있는 고장으로 다음과 같은 8경이 있다.

  • 신정리의 팔경 (新正里 八景)
    ⋅미남봉(美男峰) : 산세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산마루턱에 밝은 달이 가득차니
    ⋅상반암(裳般石) : 치마처럼 생긴 바위에 내린 서리와 이슬은 옥반에다 은빛 구슬을 가득 담은 것과 같도다
    ⋅상학봉(上鶴峰) : 학들이 창공을 날며 노닐던 상학봉의 단풍 사이에는 푸른 학이 날고
    ⋅주전봉(燽錢峰) : 엽전을 만들며 노닐던 주전봉에는 시선들이 돌부처가 되었도다.
    ⋅묘봉(妙峰) : 산세가 묘하게도 신령 같이 생긴 묘봉 하늘에는 한점 검은 구름이 나타나더니
    ⋅문암석곡(門岩石谷) : 문암리로 넘어가는 돌골짜기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가득하도다.
    ⋅석천암(石泉岩) : 병풍바위처럼 생긴 석천암 바윗돌에는 비내리는 소리 요란하더니
    ⋅괘등령(掛燈領) : 등잔을 걸어 놓은 것처럼 생긴 괘등령 중령에서부터 미남봉에 이르는 창공의 하늘에는 오색 무지개가 떠 있으니 바로 이 곳이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무릉도원이 아니랴?

아시리(牙時里)

1. 위치

면적 1.59㎦, 인구 17가구 45명(1999년 말). 본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문암리(門岩里), 서는 봉계리(鳳鷄里), 남은 보은읍(報恩邑), 북은 구티리(九峙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서 아시뱅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아시리라고 하였다.


3. 자연마을

  • 도랫말 : 산에서 큰바위가 떨어져 그 바위를 돌아가야 하는 마을
  • 아시뱅이(牙時里) : 골짜기가 집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오늘 날 마을에 들어선 지점이 아씨방(別堂)에 해당된다고 함.

4. 기타지명

  • 가장골(가장골) : 아시뱅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노적봉 : 아시뱅이 남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낟가리를 쌓은 형상임
  • 매봉재 : 아시뱅이 북쪽 수옛산에 있는 봉우리로 매를 풀어 놓고 꿩사냥을 하던 곳이라고 함.
  • 무내미 : 아시뱅이 남쪽에 있는 산으로 천지개벽 당시 산으로 물이 넘어와 산 정상에 배를 매어 놓았다고 함
  • 밀개봉 : 아시뱅이 남쪽 노적봉 아래에 있는 산으로, 밀개처럼 생김
  • 불공고개 : 아시리에서 보은읍 중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산막골 안쪽에 있는 고개로 속리산으로 불공을 드리러 갈 때, 불공고개 - 수철령 - 무수목 - 북암 - 소리목 - 속리산에 이르렀다고 하며, 흙이 붉어서 불공고개라고도 하였다.
  • 불당골 : 아시뱅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불당사라는 절이 있었음.
  • 산막골 : 아시뱅이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줄기가 끝나는 골짜기.
  • 산제당골 : 예부터 산제를 올리는 산제당이 있었으나 1975년 화전정리로 인하여 없어짐.
  • 섬바위 : 아시리 동쪽 불당골에 있는 바위로 높이 2.5m, 세로 3m, 가로 6m가 되며, 쌀가마니를 쌓아놓은 모양을 하고 있음.
  • 선반다리 : 아시리 동쪽에 있는 밭으로 아씨방(別堂)에 걸려 있는 선반 위에 해당하며 실제로 선반이 걸려 있는 형상을 하고 있음.
  • 소리목 : 아시리에 있는 고개로 소나무가 무성하였다고 함.
  • 수옛산 : 아시뱅이 북쪽에 았눈 산임.
  • 아시방 : 아시리 마을 뒤에 있는 골짜기.
  • 아시뱅이고개 : 아시리에서 문암리로 넘어가는 고개.
  • 아홉모랭이 : 아시리에 있는 산으로 아홉 개의 고개가 있다고 함.
  • 우골 : 아시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함.
  • 정물 들 : 아시리 남서쪽 효자문이 있는 들녘
  • 팔교정 : 아시리에 있는 느티나무 정자, 능성 具씨 8대조가 심었다는 나무로 여덟그루를 심어 정자로 사용했었는데, 현재 일곱 그루가 남아있음. 옛날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려고 한양으로 갈 때, 마을 앞을 지나게 되는데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었다가 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 푯대봉 : 아시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봉화대가 있었고, 산정상에 측량시에 사용했었다는 푯대가 있음.

5. 문화유적

  • 구이극효자문(具爾極孝子門)
    아시리에 있는 능성 구씨 종중 소유의 정문이다. 효자 능성인 구이극과 그의 조카 시영(始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38년 (헌종 4년)에 명정되었다. 구이극은 봉일(鳳逸)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형제간 우애가 극진하였다. 구시영은 이익의 아들이요 이극의 조카로 효행이 지극하였고 흉년이 들어 도적이 집에 들어와 칼로 부친을 위협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도적과 싸우다 부친을 대신해 죽으니 그의 나이 20도 채 못되는 젊은이였다. 1838년 두 사람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고 1860년(철종 11년)에 증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6. 전설

  • 섬바우
    약 150년전, 불당골에는 불당사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었고, 이 절의 주지는 매우 자애롭고 어진 중이었다. 그런데 이 주지는 매일같이 공양미를 받으려고 신도들의 집을 찾는 것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다니며 불공미를 받아 왔는지 절 마당에 산같이 쌀가마니를 쌓아 놓았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 주지를 ‘불공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중’이라고 비웃었으나 그래도 주지는 날마다 열심히 공양미를 받아다가 쌓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큰 흉년이 들었다. 거리마다 아사하는 시체들 먹을것이 없어 아우성이었다. 관청에서 주는 구호곡으로는 턱부족이었으니 산골에서는 근초목피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곡기를 일흔 사람들은 부황으로 얼굴이 누렇게 부풀러 올라 그의 참상은 형언할 길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불당사 주지 스님은 쌀가마를 짊어지고 신도들 집을 찾아가 나누어 주기 시작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호행각을 나섰다. 그제서야 주지스님의 선견지명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불당사에는 도적들이 들어와 불을 지르고 곳간의 곡식을 훔쳐가는 순가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시꺼멓게 끼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불은 꺼지고 도적들이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쌓아 놓았던 공양미들은 돌로 변한 후였다. 더욱이 놀라운 일은 절 앞에 있었던 두개의 탑이 바위로 변하여 나란히 서 있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탑이 변하여 ‘탑바위’라 부르게 되었고 불당사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불당골’이 되었다.
  • 수옛산
    원래 수옛산은 봉계리 곽씨 문중의 산이었다고 하는데, 곽씨 문중에서 아시리 구씨 집안으로 선사했다. 어느 날 아시리 구씨 한 분이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노루 한 마리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발 아래에 엎드렸다.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눈치 챈 나무꾼 구씨는 노루를 나뭇짐 속에 숨겨 주었다. 사냥꾼들이 지나간 후, 나뭇짐 속에서 노루를 내놓자 도망갈 생각도 않고 네 발로 나무꾼이 서 있는 앞을 헤집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그곳이 ‘명당자리’라 생각하고 조상의 묘를 이장하였다. 그 후 아시리 구씨 집안은 날로 번성하였고, 봉계리 곽씨네 집안은 쇠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어온리(於溫里)

1. 위치

면적 1.79㎦, 인구 20가구 50명(1999년 말). 본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가고리(加古里), 서는 이식리(梨息里), 남은 산대리(山大里), 북은 청원군 미원면(淸原郡 米院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어은골, 은골 또는 어온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고리 일부를 병합하여 어온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은골(於溫동, 어은골, 어은리) : 사화시 선비들이 낙향하여 골이 깊어서 숨어 살기가 좋은 곳이라 은골이라고 함.

4. 기타지명

  • 괴수골 : 은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금바골 : 은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전에는 금을 캐었다고 함.
  • 능골 : 은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제당골 밑이 됨.
  • 더구리고개 : 은골 동북쪽에 있는 고개로 은골에서 가고리 밑 더구리로 넘어가는 길목이 됨.
  • 돌물안 : 은골 동쪽에 있는 들녘으로 돌이 많아 돌물안이라고도 하며, 돌아 흐르는 물 안쪽의 돌이라서 돌물안이라고도 한다.
  • 둥구제 : 은골 동북쪽에 있는 산 칙골과 돌물안 중간의 들 가운데 있는 봉우리
  • 산제당골 : 은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1980년 보은지방 수해 전까지만 해도 산제당을 모셔놓고 산제를 지냈으나 유실되었음.
  • 새골 : 은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돌물안 위쪽이 됨.
  • 성재 : 은골 북쪽 칙골에 있는 산으로 성터 흔적만이 남아있음.
  • 쇠주골 : 은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소가 죽을 먹는 형상을 함.
  • 점토골 : 은골 동쪽에 있는 터에 옛날에 사기그릇을 굽던 터로 지금도 사기 그릇 깨진 조각이 많이 나옴.
  • 칙골 : 은골 북쪽의 골짜기로 칡덩굴이 골짜기를 덮고 있음.
  • 황새골 : 마을 뒷산 봉우리가 황새같이 생겨 황새골이라 함. 황새 같이 생긴 황새봉 밑이 됨.
  • 회가마골 : 은골 북쪽의 골짜기로 횟돌이 있어 회를 구었다고 함.

오대리(五大里)

1. 위치

면적 2.08㎦, 인구 39호, 127명(1999년 말). 본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원평리(院坪里), 서는 산대리(山大里), 남은 길탕리(吉湯里), 탁주리(濯洲里), 북은 가고리(加古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서 오대(오대)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흥리를 병합하여 오대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건너말(新興里) : 오대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댓말의 건너편이 됨.
  • 댓말 : 오대 동쪽에 있는 마을로 대지가 있음.
  • 오대 : 산등성이가 5개가 내려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해서 ‘오대’
  • 원오대 : 중간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최초로 마을이 형성된 곳임.
  • 중간말(중간촌) : 오대리 중간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시마누들 : 원오대 서쪽에 있는 들, 들녘을 형성하기 전에는 가랑잎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고 함.
  • 게망골 : 부시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닭이 우는 형상을 닮아 계명골이라 하던 것이 변화된 것임.
  • 대구펀던(버덩) : 어리비떵 서쪽에 있는 1500평 정도의 넓은 버덩. 집터 위에 위치하며 대위펀던이라 부르던 것이 변함.
  • 뒷굴멍 : 중간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마당재 : 중간말 북쪽에 있는 버덩으로 위가 마당처럼 넓고 평평함.
  • 매봉 : 신흥리 뒷산으로 산형이 매처럼 형상을 하고 있음. 정상에는 측량을 위한 푯대가 있다고 함.
  • 벼루끝 : 중간말 남쪽 냇가에 있는 벼랑으로 벼루 또는 벼로가 변한 말로 벼랑의 고어임.
  • 보행이 : 원오대 북쪽에 있는 산으로 보를 막은 안에 위치함.
  • 본답 : 댓말 동쪽에 있는 돌로 부탁 형성시 처음 논을 만든 곳임.
  • 부시골 : 원오대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북쪽에 위치해 북시골이라 하던 것이 변함.
  • 빈정 : 원오대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얼음이 여름까지 녹지 않는다고 함.
  • 뻣나무골 : 원오대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벚나무가 많았다고 함.
  • 상사골 : 원오대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감사를 지낸 함양 박씨 묘에 상석을 세웠다고 하여 ‘상석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함.
  • 새골 : 냇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대 사이에 있음.
  • 안장바우 : 원오대 북쪽에 있는 바위로 보행산 중간에 위치하며, 보 안에 물 가운데 위치하여 앉아 놀기가 좋음.
  • 여리비똥 : 원오대 동쪽 상사골 옆에 있는 산으로 머리 빗는 얼레 빗 모양으로 생겨다고 하여 ‘어리비’는 ‘얼레빗’이 변한 말임.
  • 오대천 : 원평서부터 오대 앞을 흐르는 냇물로 예부터 고기가 많아 철렵꾼이 많은 곳임.
  • 오리골 : 뼛나무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리나무가 무성했음.
  • 지방바우 : 원오대 남쪽에 있는 바위로 지붕같이 생겨 지붕바위라고도 한 것이 변한 말임.
  • 진사래 : 중간말 중간 들로서 밭고랑이 길어서 ‘진사래’라고 함.
  • 출렁다리 : 나무를 사용해서 원오대와 새말을 잇던 다리로 쇠줄과 목재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 ‘출렁출렁’함으로 출렁다리라 명명됨.

원평리(院坪里)

1. 위치

면적 3.17㎦, 인구 53가구 168명 (1999년 말). 본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장갑리(長甲里), 서는 오대리(五大里), 남은 동화리(東華里), 북은 청원군 미원면(淸原郡 米院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행인들의 편의를 도와주는 추원(추원)이 있었으므로 원들 또는 원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부평리(三芙坪里) 일부를 병합하여 원평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삼버벌(三富坪, 三坪) : 원들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세 벙어리가 살았다고 함. 또한 부자가 우애좋게 살았다고 하여 삼부평(三富坪)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 원들(院坪) : 조선시대 관리와 행인들의 숙식을 제공하던 추원(추원)이 있었던 곳임.
  • 주막거리 : 원뜰 동남쪽에 있는 마을에 주막이 있었다고 함.

4. 기타지명

  • 바깥방죽 : 원들 남쪽에 있는 못으로 안방죽의 바깥쪽이 됨.
  • 보펀던 : 원뜰 동남쪽에 있는 들. 원래는 버덩이었으나 1983년 경지정이로 모두가 논이 됨.
  • 솔정자 : 원뜰 서쪽가에 있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솦 속의 놀이터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으나,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 싸리재(추峴): 원뜰에서 청원군 미원면 계원리로 넘어가는 고개.
  • 안방죽 : 원뜰 남쪽에 있는 못 안쪽에 있음.
  • 안장바우 : 원뜰 서남쪽 냇가에 있는 바위
  • 옻샵 : 원뜰 남쪽 지취불 고개 왼쪽에 있는 샘으로 이 물로 씻으면 옻이 낫는다고 한다.
  • 욱골(윗골) : 원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연탄 광산이 있었음.
  • 원평뜰 : 원뜰 남쪽 마을 앞에 있는 들로서 산외면에서 두 번째로 넓은 들녘임.
  • 작은옥골 : 원뜰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원뜰 마을 뒤에 있음.
  • 장터건너 : 원뜰 동쪽에 있는 산. 옛날에는 원뜰 장이 섰다는데, 장터 건너편에 있다고 하여 장터 건너라고 부름.
  • 지방바위 : 원오대 남쪽에 있는 바위.
  • 큰옥골 : 원뜰 동쪽 주막거리 뒤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크고 깊다고 하여 ‘큰 웃골’이 변하여 큰옥골이 되었음.

이식리(利息里)

1. 위치

면적 2.25㎦, 인구 54가구, 173명(1999년 말). 본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산대리(山大里), 서는 내북면(內北面), 남은 중티리(中峙里), 북은 청원군 미원면(淸原郡 米院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원래 보은군 사뇌면의 지역으로서 속리천이 앞으로 흘러서 배가 쉬었으므로 배쉰개 또는 배진개, 주식포(舟息浦), 주포(舟浦)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북면 천산리(天山里)를 병합하여 이식리라 하였다. 순흥 안(安)씨 집성촌으로 담배와 고추농사 벼농사로 생업을 삼고 있는 산촌이지만 한때는 이식초등학교도 있었던 고장으로 복지농촌이었다.


3. 자연마을

  • 밤소(天山) : 베진개 서남쪽에 있는 마을 밤나무 숲이 있었다고도 하며, 다른 지역보다 바람이 세 개 불어 바람의 준말로 밤소라고 한다. 중티 고개너머 마을임.
  • 새말(아랫말) : 배진개 아래 새로 생긴 마을
  • 양짓말(웃말) : 배진개 위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고래실 : 배진개 동쪽에 있는 들로서 논에 물이 많이 생긴다고 함.
  • 도람모랭이 : 배진개 남쪽에 있는 모롱이가 마을에 외돌아져 있음.
  • 동기너머 : 배진개 북쪽에 있는 들로서 동산너머에 있음.
  • 밤소보 : 원마루와 이식리 배진개 사이에 있는 보로 배진개 들녘에 물을 대어주는 소중한 보이다.
  • 붓들 : 배진개 서북쪽에 있는 들녘으로 보가 있음.
  • 비악산 : 이식리에 있는 세 봉우리의 산인데, 산의 바위가 깍은 듯이 험하여 비악산이라고 함.
  • 산뒤골 : 배진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산지당골 : 배진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제를 지내던 곳임.
  • 살구재 : 배진개에서 청원군 운암리로 넘어가는 고개.
  • 새터말 : 새말 동쪽에 있는 들. 전에 마을 터였음.
  • 속갱골 : 배진개 서쪽에 있는 여울
  • 안산 : 이식리 안부락 앞에 있는 산
  • 왜마루고개 : 배진개에서 내북면 봉황리로 넘어가는 고개 높은 고개로 명명 됨.
  • 은골고개 : 배진개에서 새터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 장승배기 : 장승이 서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짐.
  • 중다리 여울목 : 살구재 서쪽에 있는 여울로서 돌로 만들어 놓은 다리를 말함.
  • 중돌 : 배진개 동북쪽에 있는 들로서, 넓고 중간에 있다고 함.
  • 진사래돌 : 학교 앞에 있는 들로서, 넓고 길이가 길다고 함.
  • 짐박골 : 배진개 동남쪽의 골짜기로 골이 험하여 짐을 지고가다 넘어지는 골이라 하여 붙인 이름.
  • 터골 : 배진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황새골 : 배진개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의 모양이 길고 황새처럼 생겼으며, 이식 뒷산을 말함.
  • 황새들 : 황새골 밑에 있는 중간 들

장갑리(長甲里)

1. 위치

면적 3.39㎦, 인구 109가구, 296명(1999년 말), 본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은 신정리(新正里), 서는 원평리(院坪里), 남은 백석리(白石里), 북은 대원리(大元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악, 벌말, 궉말, 새말을 병합하여 장갑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궉말(구억말) : 안말 서남쪽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
  • 나매기(南岳) : 안말 서쪽에 있는 마을 옛날 장군이 나막신을 신고 다녀서 나매기라고 함.
  • 벌말 : 궉말 서남쪽 들 복판에 있는 마을. 임진왜란때, 파평 윤(尹)씨가 수목을 베고 들어와 맨 처음 개간을 하였다고 한다.
  • 안나매기 : 새말이라고 하며, 장갑리에서 맨 나중에 생긴 마을
  • 안말 : 장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마소들 : 궉말 서쪽에 있는 들로서 가마솥같이 생겼다고 함
  • 건너들 : 새말 앞 동남쪽에 있는 들로 개울 건너에 있음.
  • 고수봉(高秀峰) : 새말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경사가 급하고 산의 생김새가 뾰족함.
  • 굴바우 : 천장바위 동쪽에 있는 바위로 굴이 있음.
  • 궉말고개 : 궉말에서 칼바우로 넘어가는 고개
  • 남산 : 안말 남쪽에 있는 산
  • 벼루골 : 새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암석이 많아 벼랑을 이루고 있었으며, 경치가 아름다움.
  • 북산 : 안말 북쪽에 있는 산
  • 비둘목이 (鳩項) : 안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비둘기 목처럼 생겼다고 함.
  • 사기장골 : 궉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사기점이 없었음.
  • 살목이골 : 안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살구나무가 많았다고 함.
  • 작은분투골 : 새말 서북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천장바우 : 벼루골 중턱에 있는 바위로 천장처럼 넓게 생겼다고 함.
  • 칼바우 : 벌말 서쪽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칼날처럼 생겼음.
  • 칼바우다리 : 궉말 서쪽 칼바위 밑에 있는 다리로 구티와 장갑을 잇는 다리임.
  • 큰분투골 : 작은 분투골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 큰 앞실 : 벼루골 동쪽에 이쓴 골짜기로 장갑리 맨 앞에 있는 골짜기.
  • 투구골 : 궉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투구처럼 생겼다고 함.
  • 느티나무 : 장갑리 안말에 있는 나무로 수령이 3백여 년 되었음.

중티리(中峙里)

1. 위치

면적 2.13㎦, 인구 39가구 110명(1999년 말). 본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산대리(山大里), 서는 내북면(內北面), 남은 길탕리(吉湯履), 북은 이식리(梨息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뒤에 중간 고개가 있으므로 중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궉말, 양지말, 아랫말을 병합하여 중티리라 하여 산외면에 편입하였다.


3. 자연마을

  • 아랫말(下村) : 중티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양짓말 : 웃말 동북쪽 양지에 있는 마을.
  • 웃말(생촌궉말) : 중티리 위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곰마당 : 중티 앞산으로 옛날 장수들이 싸웠다는 넓은 버덩이 산위에 있음.
  • 곰쟁이 고개(熊峴) : 아랫말에서 내북면 두평리 곰쟁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는 곰이 살았었다고 함.
  • 나자리 고개 : 웃말에서 길탕리 절골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명당 자리로 나의 자리라고 하였다.
  • 배랭이 : 양짓말 서쪽에 있는 벼랑으로 속리 천변에 있음.
  • 산대골 : 양짓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산대들 : 산대골 서쪽에 있는 들녘.
  • 승지골 : 아랫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도승지가 귀양와서 살았었다고 함.
  • 시루바우 : 시루산에 있는 바위로 시루처럼 생겼음.
  • 시루산(甑山, 시루봉) : 중티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시루처럼 생겼음. 중턱에 큰 지네가 살고 있었는데, 그 지네를 수호신으로 믿고 성황당을 세워 놓고 정월 대보름과 칠석 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함.
  • 시루산들 : 시루산 북쪽 밑에 있는 들녘
  • 중고개 : 양짓말에서 내북면 이식리 밤소로 넘어가는 고개.
  • 증암(甑岩) : 시루바우를 말함.
  • 탕골고개 : 아랫말에서 길탕리 탕골로 넘어가는 고개.

탁주리(濯注里)

1. 위치

면적 1.22㎦, 인구 55가구 157명 (1999년 말). 본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은 동화리(東華里), 서는 길탕리(吉湯里), 구티리(九峙里), 남은 문암리(門岩里), 북은 오대리(五大里), 원평리(院坪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산외면 지역으로서 탑자봉(塔自峰) 밑이 되므로 탑자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동, 동화리 일부를 병함하여 탁주리라 하였다. 산촌지역으로 칡 부산물을 이용한 느타리 버섯재배와 고추 담배농사가 주업이다.


3. 자연마을

  • 못골(池洞) : 탑거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못이 있었음.

4. 기타지명

  • 고래실 : 탑자리 동쪽의 들로 논에 항상 물이 많이 생긴다고 함.
  • 고재 : 탁주에서 동화로 넘어가는 골짜기로 지금은 전답이 되었음.
  • 못골저수지 : 못골 남쪽에 있는 저수지
  • 방아재 : 탑자리에서 구티와 길탕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고갯길이 디딜방아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
  • 불무당골 : 못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산지당물 : 탑자리 서쪽에 있는 샘으로 선제를 지내는 샘으로 수원이 아주 좋다.
  • 장승배기 : 탑자리 서쪽에 있는 들. 마을 어귀에 있는 돌로 장승이 서 있었음.
  • 주봉(周峰) : 탑자리 서쪽에 있는 산으로 탁주리에서 제일 높은 산.
  • 쥐치벌 고개 : 탑자리에서 원평리 원뜰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는 고개 조치벌 고개라고도 함. 쥐치나물이 많이 자란다고 함.
  • 칠발안산 : 탁주봉 위에서 보이는 봉우리로 일곱 개가 있음.
  • 칫도리골 : 탑자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모양이 쳇다리와 같다고 함. 쳇도리가 변하여 칫도리가 되었음.
  • 큰거부테재 : 못고레서 구티리 거북티로 넘어가는 고개
  • 탁주봉 : 탁주리 뒷산. 산봉우리가 면내에서 세 번째 높은 산으로 늙은 스님이 속리산을 바라보며 절을 하고 있는 형국임.
  • 병풍바위 : 큰 거북티재 못미처에 있는 바위가 병풍처럼 생겼음. 병풍바위 사이에 묘가 있는데, 묘를 쓰고 후손이 쌍둥이 네쌍을 낳아 8형제를 보았다는 명당터였다고 함.
  • 함박바위 : 쥐치벌 고개 밑에 있는 바위로 함박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바위 가운데가 오목하다고 함. 전설에 의하면 스님이 쥐치벌 고개의 표주박으로 함박바위에서 쌀을 씻어 밥을 해 먹었다고 전해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