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료집

보은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곳

내북면

내북면(內北面)

1. 위치

면적 63.07㎢, 인구 870가구 2,379명(1999년말) 보은군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은 산외면(山外面), 서는 회북면(懷北面), 남은 보은읍(報恩邑)과 수한면(水汗面), 북은 청원군(凊原郡)과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고을 북쪽 안이라 하여 내북면(內北面)이라 하고 서지(西枝), 두평(斗坪), 웅장(熊掌), 상초(上草), 중초(中草), 하초(下草), 노티(老峙), 산성(山城), 구이목(九二目), 송정(松亭), 모정(毛丁), 내동(內洞), 소지동(小지洞), 내사막(內士幕), 외사막(外士幕), 도촌(道村), 용암(龍岩), 상룡(上龍), 대비(大庇), 수남(水南), 이원(이院), 백운(白雲), 상궁(上弓), 중궁(中弓), 율성(栗城), 천산(天山), 중티(中峙), 탕동(湯洞), 산대(山大), 길동(吉洞)의 30개 동리를 관할하고 중초리가 면소재지였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웃 주성면(朱城面)의 성티(星峙), 대안(大安), 엽동(葉洞), 천곡(泉谷), 창리(倉里), 내저(內저), 외저(外저), 성암(聖岩), 백동(柏洞), 사평(沙坪), 도엽(桃葉), 봉황(鳳凰), 창상(倉上), 신기(新基), 묵동(墨洞), 수평(水坪), 염둔(鹽屯), 평동(平洞), 아곡(峨谷)의 19개 동리와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의 신평(新平), 율성(栗城), 염둔(鹽屯), 용흥(龍興)의 4개 동리의 일부를 병합하는 한편 천산, 중티, 탕동, 산대, 길동의 5개 동리를 산외면(山外面)에 넘겨주고 다시 내북면이라 하고 서지, 두평, 노티, 산성, 장속(장俗) 봉평(鳳坪), 용암, 이원, 상궁, 하궁(下弓), 성티, 대안, 창리, 적음(積蔭), 성암, 봉황, 동산(東山), 화전(花田), 도원(桃源), 아곡의 21개 리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이때 편입된 주성면(朱城面)은 본래 상주목(尙州牧)의 소속된 주성부곡(酒城部曲)이였으나, 1390년(고려 공양왕 2)폐읍하였던 청산현(靑山縣)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다스리는 영지(領地)가 작다는 이유로 청산현에 붙이고 주성면(朱城面)이라 부르다가 1906년 칙령 제 49호에 의하여 보은군에 편입되고 주성면(朱城面)이라 표기가 변경되고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시 내북면에 편입하게 되었다.
1934년 면소새지가 이원리로 옮겨졌고 1946년 2월 1일 행정구역 변경시 회북면의 염둔(鹽屯), 법주(法住), 용수(龍壽), 신궁(新宮)의 4개 리를 병합하여 25개 리를 관할하고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시 다시 회북면의 세촌리(世村里)를 편입하여 26개 리를 관할하는 한편, 1984년 면사무소를 이원리에서 창리로 이전하게 되었으며, 1987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중초, 산성, 노티, 용암, 봉평, 장속의 6개 리를 보은읍에 넘겨주고 현재 창(倉), 이원(이院), 서지(西枝), 두평(斗坪), 성티(星峙), 적음(積蔭), 염둔(鹽屯), 법주(法住), 대안(大安), 아곡(峨谷), 용수(龍壽), 봉황(鳳凰), 성암(聖岩), 동산(東山), 도원(桃源), 화전(花田), 신궁(新宮), 상궁(上弓), 하궁(下弓), 세촌(世村) 등 20개리를 관할하고 있다.


3. 자연

면의 동쪽 산외면과의 경계의 한남금북정맥의 시루산(482m)이 면 중심지역을 지나면서 구봉산(九峰山:511m) 구룡상(九龍上:548m)에 이르고 다시 북동쪽으로 뻗으며 북부 청원군과의 경계에 국사봉(國師峰:586m)등 500m 내외의 산지가 한강(漢江)과 금강(錦江)의 분수령이 되어 면지역을 동북부와 서남부로 구분하고 있다.
구룡산 남록에서 발원하는 금강 상류인 보청천(報靑川)이 서남부를 곡류하면서 남류하여 보은읍으로, 구룡산 북록에서 발원한 흑천(黑川)이 북동쪽에서 유입되는 한강 상류인 달천(達川)과 봉황리에서 합류 청원군으로 흐르는 부근에 국지적인 산간 분지가 형성되여 있다.


4. 산업

논 437.5㏊, 밭 610.7㏊, 임야 4,851.7㏊, 기타 70.1㏊로 주산업은 밭농사로 고추, 담배, 감, 인삼 등의 특용작물이 성하며, 특히 봉황리 일대는 고추의 주산지이고 법주리는 인삼을 재배하며 근래에 과수농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원리에서 생산하던 천연스레트는 모두 폐광되었으나 염둔리에 1988년 한국화약공장이 건설되었다.


5. 교통・문화

국도 19호선이 면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571호, 575호 지방도가 북부와 남부에서 동서로 연결되고 8호군도를 비롯 기타 도로가 확포장되어 도로가 잘 발달되여 있으나 국도를 제외한 도로에 정기버스 운행회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문화재로는 창리의 주성산성과 민속유적인 서지리의 돌탑과 선돌이 있으며,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교와 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대안리(大安里)

1. 위치

면적 1.62㎢, 인구 31가구 89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남쪽 3㎞ 지점으로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은 성티리(星峙里), 서는 법주리(法住里), 염둔리(鹽屯里), 남은 아곡리(峨谷里), 북은 화전리(花田里), 창리(倉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朱城面) 지역으로 높은 지역 안쪽에 있다하여 대안이라 불렀는데 1906년 보은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엽동(葉洞) 일부와 합쳐 대안리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내-대안(內大安)[마을] →안대안.
  • 대안(大安)[마을] 마을 뒷산에 산제당이 있고 앞에 있는 활인봉(活人峰:424m) 밑에 살면 마을이 편안하다 하여 대안이라 불렀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대안리(大安里)라 기록하였다.
  • 바깥-대안(外大安)[마을] 대안 바깥쪽에 있는 마을.
  • 안-대안(內大安)[마을] 대안 안쪽에 있는 마을로 대안리의 중심마을임.
  • 외-대안(外大安)[마을] →바깥대안

4. 기타지명

  • 곰티-고개[고개] 안대안에서 창리로 넘어가는 고개.
  • 냉경[들] 안대안 동북쪽에 있는 냉갱이골 앞들. 날씨가 너무 냉하여 노고지리가 오지못한다 함.
  • 대안-고개[고개] →서낭고개.
  • 대안-방죽[못] 안대안 앞 도로변에 있는 연목. ‘대안소류지’라고도 부르고 있음.
  • 말-고개[고개] 안대안에서 법주로 넘어가는 고개.
  • 말구리고개[고개] 안대안 내북주유소 뒤에서 염둔으로 넘어가는 고개. 말고개 동북 능선에 있으며 두 고개 모두 고개가 험해서 말이 넘다가 굴러 죽었다고 한다. 도로가 개설되기 전 ‘말구리고개-살티고개-미티고개-청주에 이르는 길목’이었다고 함.
  • 마당대(場峙)[고개] 바깥대안 남쪽에 있는 산위에 있는 터. 옛날 대안리를 개동한 경주김씨의 선조 한 사람이 이 곳에서 무예를 기르고 공기놀이하면서 놀았다고 함.
  • 방아-골[골] 바깥대안 남쪽에 있는 골짜기. 방아처럼 생겼다고 함.
  • 벼재-고개(星峙)[고개] 바깥대안에서 성티로 가는 고개. 벼랑이 있으므로 ‘별재고개’라 부르던 것이 ‘벼재고개’로 변함. ‘별’은 ‘벼랑’의 고어임.
  • 분무-골[골] 안대안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산-너머[산] 안대안 서쪽에 있는 산. 높이 473m.
  • 삼발-골[골] 안대안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산삼을 캐었다고 함.
  • 상-가마골[골] 안대안 동쪽에 있는 골짜기. ‘선다마골’이라고도 부름.
  • 서낭-고개[고개] 안대안에서 바깥대안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 보은↔청주간 19호 국도상에 있음. 전에는 서낭당이 있었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없어졌음. 이 고개에서 북쪽 안대안 물은 한강으로, 남쪽 바깥대안 물은 금강으로 흘러가는 분수령이 됨.
  • 석-광(石鑛)[광] 안대안 서쪽 산너머에 있는 천연스레트 광산으로 폐광되었음.
  • 성티-고개[고개] →벼재고개.
  • 솟대-봉[산] 바깥대안 서쪽 큰골 안쪽에 있는 산. 옛날에 솟대를 세웠다고 함. 높이 370m.
  • 수리-티[고개] 바깥대안에서 아곡리 조리터로 넘어가는 고개.
  • 승조-골[골] 안대안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안터-골[골] 바깥대안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청기와 주유소가 있음.
  • 잿-글[글] 안대안 동북쪽 ‘선다미골’에 있는 들.
  • 차돌배기[바위] 바깥대안 서쪽 큰골 입구에 있는 높이 1.5m, 지름 1.5m 정도의 둥근 차돌바 위로 도로확장공사로 없어졌음.
  • 큰-골[골] 바깥대안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크고 넓다고 하며 처음으로 마을이 이루워졌던 곳이라고 함.
  • 팽나무-골[골] 바깥대안 동쪽에 있는 골짜기. 큰 팽나무가 있었다 함.
  • 활인-봉(活人峰:372m) 바깥대안 북쪽에 있는 산. 예부터 정월 초순에 날을 가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유허만 남아있음.
  • 흘팅이-골[골] 안대안 북쪽에 있는 골짜기 외지게 들어앉아 있음.

5. 집성

경주김씨 계림군과 후손이 조선 중기에 처음으로 큰골에서 촌락을 이루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이 번창한 뒤 농지가 있는 곳으로 자연 부락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는 각성(各姓)이 혼재하고 있음.


6. 산업

고추, 담배.


7. 전설

  • 마당대(場峙)와 차돌배기
    조선 중기 대안리 경주김씨 집안에 칠곡군수(柒谷郡守) 경성(景聖)의 아들 중 추(楸)가 있었다. 추는 날 때부터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어 집안에서는 이를 감추고 키웠는데 그는 자라면서 힘이 세고 지혜가 남달랐다고 한다.
    일찍이 마을 앞 산위에 넓찍한 터에서 무예를 닦고 주위에 있는 큰 차돌을 가지고 놀았는데 마치 공기돌 다루듯 하니 모두 놀랬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가지고 놀던 차돌(크기 1.5m, 둘레 1.5m)을 산아래 마을을 향하여 던졌는데 그 돌은 5리나 날라가 마을 입구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와같은 소문이 널리 알려져 나라에서는 통덕랑(通德郞)의 벼슬을 주었는데 뒤에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는 것이 탄로되어 불길하다하여 잡아다 처형을 하였으나 뒤에 그 억울함을 호소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추증하였다고 한다. 그가 무예를 닦은 곳이 마당대(場峙)이고 마을 앞에 떨어진 차돌을 사람들이 ‘차돌베기’라 불렀는데 그 돌은 1990년도 초까지 도로변에 있었는데 그 뒤 도로확장시 없어지고 그의 무덤은 지금까지 큰골 입구에 남아있고 묘앞에 이와같은 사실을 기록한 묘비가 세워져 있다.

도원리(桃源里)

1. 위치

면적 5.5㎢, 인구 45가구 107명(1999년말)
면 소재지 서북쪽 2㎞ 지점으로 면의 북부에 위치하여 동은 봉황리(鳳凰里), 남은 동산리(東山里), 화전리(花田里), 서와 북은 청원군(凊原郡) 낭성면(낭城面)과 미원면(米院面)에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상주목(尙州牧) 관할지역으로 ‘술바위’가 있다하여 주성(주성)이라 부르고 부곡(부곡)을 삼았으나, 고려 말기에 청산현(靑山縣)에 붙이고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다가 1906년 보은군에 편입될 때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평동(平洞)과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지대가 중국의 무능도원(武陵桃源)과 같이 그윽하다 하여 도원리라 고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음.


3. 자연마을

  • 방아-골[마을] 점말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방아산 밑이 됨.
  • 점-말[마을] 도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전에 옹기점 있었음.

4. 기타지명

  • 갈-골[골] 수티와 점말 중간에 있는 골자기. 갈치와 같이 골이 길다고 함.
  • 건넌-들[들] 점말 동남쪽 개울 건너에 있는 들.
  • 국수-골[골] 한작골에 있는 작은 골짜기. 국사봉 밑에 있는 골짜기로 군사적으로 주요한 요충지였다고 함.
  • 도리-미[골] 태봉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태봉산에서 우측으로 돈다고 함.
  • 동막-골[골] 태봉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도원리에서 동쪽으로 마지막 골짜기임.
  • 문앞-들[들] 점말 남쪽 마을 입구에 있는 들.
  • 방아-산[산] 점말 서북족에 있는 산. 높이 445m. 조선시대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함.
  • 사그막-골[골] 수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사교장골’이라고도 부르고 있음. 수티재를 넘을 때 험준한 서쪽산에서 도적들이 심하여 ‘사고막골’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이라고도 하고 사기막이 있었다고 함.
  • 새내-골[골] 태봉산 입구 점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물이 맑고 깨끗하여 ‘새내골’이라 하였다고 함.
  • 수-티[고개] 점말에서 미원면 성대리 퇴뫼로 가는 고개. 나무가 울창하다 하여 ‘숲티’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수티’로 되었음.
  • 술-바위[바위] 점말 서북쪽에 있었던 바위. 바위에서 술이 나와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술을 먹고 쉬어가던 곳이라고 하나 도원저수지 용수로 공사로 없어졌음.
  • 술바우-모팅이[모롱이] 술바위가 있는 모롱이.
  • 아래-도리미[골] 도리미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태봉산에서 돌아가는 골짜기로 아래서 돈다 하여 아랫도리미라 함.
  • 아래-소리골[골] 점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윗-도리미[골] 도리미 위쪽에 있는 골짜기. 태봉산의 웃골짜기를 돈다 함.
  • 윗-소리골[골] 점말 서쪽 아래 소리골 위에 있는 골짜기.
  • 옻-샘[약수] 국수골에 있는 약수터. 피부병에 좋다 함.
  • 장수-바위[바위] 점말 서쪽에 있는 바위. 장수의 발자국이 있음.
  • 점-골[골] 점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능선에 사기그릇을 굽던 큰 옹기점이 있었다 함.
  • 태봉-(胎峯山:413m)[산] 점말 동북쪽에 있는 산. 이곳에 세종(世宗)의 태를 묻었다고 전해오고 있음.
  • 한사동-골(寒寺谷)[골] 점말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한작골이라고도 함. 전에 한사(寒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함.

5. 문화유적

  • 의병아장홍공우선공적비(義兵亞將洪公雨先功積碑)
    1905년 을사보호조약 후 의병장 한봉수(韓鳳洙) 대장의 아장으로 의병활동을 한 홍우선의 사적을 기록한 비로 점말 마을 입구에 1973년 내북면 애향동지회에서 건립한 비.
  • 낙가사(洛迦寺)
    점말 북쪽 도원저수지 아래에 있는 사찰로 1987년에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의 말사.

6. 집성

경주이씨(慶州李氏)


7. 산업

고추, 담배.


8. 전설

    술바위구멍
    점말 서북쪽 산 15번지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에서는 술이 나오는 구멍이 있었는데 술은 행인 지나갈 때마다 한잔씩 흘러 갈증을 풀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욕심 많은 행인이 한잔 술에 갈증을 해소하고 한잔 더 마시려 하였으나 술이 나오지 않자 짚고있던 지팡이로 술이 나오는 굴을 마구 찔러 보았으나 술은 더 나오지 않았고, 그 후로 술은 나오지 않고 구멍만 남았다고 한다.

동산리(東山里)

1. 위치

면적 1.77㎢, 인구 69가구 196명(1999년말). 면 소재지 서쪽 0.5㎞ 지점인 면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성암리(聖岩里), 서는 화전리(花田里), 남은 창리(倉里), 북은 도원리(桃源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懸)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 1906년 보은군 주성면(酒城面) 관할로 변경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상리(倉上里)와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東山里)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상-촌(上村)[마을] 청룡 동쪽에 있는 마을. 동산리에서 제일 위가 됨.
  • 새-터(新)[마을] 청룡 서쪽에 있는 새로 된 마을.
  • 소안-이(素安)[마을] → 수안이.
  • 수안-이(素安)[마을] 청룡 남쪽에 있는 마을. 화전리가 수해를 입어 현 위치로 이주할 때 숲 안쪽이 된다하여 ‘숲안’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수안이’가 됨. 마을 앞에 숲이 울창했다고 함
  • 신 - 기(新基)[마을] → 새터
  • 쐬안 - 말 [마을] 청룡 동쪽에 있는 마을. 바위가 흉하여 보이지 않도록 나무로 숲을 만들어 가렸다고 ‘숲안말’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음.
  • 양지 - 말(陽地村) [마을] 새터 남쪽 양지에 있는 마을. ‘양지촌’이라고도 부른다. 잿들이 있었던 마을을 옮겨 새로 조성한 마을임.
  • 청룡(靑龍) [마을] 동산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 뒷산이 옛 주성면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된다 함. 청룡은 풍수지리설에서 동쪽 바위를 맡은 상징인 용으로 동쪽을 뜻하는데 마을 이름 ‘동산(東山)‘은 바로 이곳에서 비롯된 것임.

4. 기타지명

  • 국수 - 골[골] 새터 서북쪽 도원리 한자골에 있는 골짜기. 국수가락처럼 골이 깊음. 나라에서 중요한 군사요지로 사용했다 함.
  • 노산 - 골[골] 새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밭을 갈면 기와조각이 나온다 함. 한여름에도 찬물이 흘러 ‘노상골’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임.
  • 동산 - 골[골] 상촌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내북파출소 뒤쪽임.
  • 돼지 - 골[골] 새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도원구역임.
  • 먹굴 - 펑개 [버덩] 새터 서북쪽에 있는 버덩. 돼지골과 연결됨.
  • 명주 - 골(名地谷) [골] 국수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예부터 묘자리가 좋고 물이 좋았다 함.
  • 명지 - 골(名地谷) [골] → 명주골
  • 명지 - 들[들] 명지골 앞에 있는 들
  • 소리 - 골[골] 새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좁고 길다 함.
  • 소시랑 - 봉[산] 새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와 산봉우리. 소시랑처럼 생겼음.
  • 잿 - 들[들] 새터 남쪽에 있는 들. 동네가 없어지고 들로 변하였음. ‘동산앞들’이라고도 부르고도 있음.
  • 탕근 - 봉[산] 노산이골 서쪽에 있는 산. 높이는 422m 산 모형이 탕근처럼 생겼다 함.

5. 문화유적

  • 김벽(金碧) 부부의 묘
    동산골에 있는 경주인(慶州人) 건공장군충순위부사직(建功將軍忠順衛副詞直) 김 벽(金碧)과 그의 부인 숙부인(淑夫人)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쌍분묘로 묘갈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김벽묘 앞에 있는 묘갈은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박광우(朴光佑)가 짓고 세워져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김로(金魯)가 썻고 유씨묘앞의 묘갈은 그들의 사위인 사재감정(司宰監正) 성운(盛運)이 짓고 예조참판(禮曹參判) 이택(利澤)이 쓴 것으로 특히 유씨묘갈비는 선조 초기에 세운 것으로 금석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임.
  • 노면청자혜제중불망비(虜勉淸慈惠濟衆不忘碑)
    의관(醫官) 노면청이 빈민의 병을 무료로 고쳐주고 구제한 덕을 기리기 위하여 1931년에 세운 비
  • 현감이후윤신청덕선정비 (縣監李侯潤身淸德善政碑)
    현감 이윤신의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
  • 이모재 (履慕齋)
    경주인(慶州人) 사옹원판관(司甕院判官) 김증손(金曾孫)을 제향하기 위한 재실로 정면 4칸, 옆면 2칸 팔작지붕 스트레즙이다.

6. 산업

쌀, 고추, 담배

두평리(斗坪里)

1. 위치

면적 5.33㎢. 인구 28가구 87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남쪽 10㎞ 지점으로 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과 북은 산외면(山外面). 서는 이원리(泥院里). 남은 서지리(西枝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보은군 내북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두멍처럼 생겼다 하여 두멍뜰 또는 두평이라 하 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웅장리(熊場里)를 병합하여 두평리(斗坪里)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곰 - 쟁이(熊場里)[마을] 두멍들, 서북쪽에 있는 마을
  • 두멍 - 들[마을] 두평리에서 가장 큰마을. 본래 도로변에 있었으나 70년대초 취락구조, 개선으로 현재에 위치로 옮겼다. 두멍처럼 생긴 웅덩이가 있었다고 한다.
  • 두 - 평(斗坪) [마을] → 두평리
  • 북상 - 곡(北上谷)[마을] → 북상골
  • 웅장 - 리(熊場里)[마을] → 곰쟁이

4. 기타지명

  • 곰 - 마당(熊장)[버덩] 곰쟁이 북쪽 윗골 마루턱에 있는 넓고 평평한 마당. 약 2천평 정도됨. 예전에 곰이 놀았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등 옛지리서에 고을 특산품에 웅담(熊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국어학자들은 ‘곰’은 ‘뒤,북’의 옛말로 마을 뒤, 즉 북쪽에 있는 넓은 마당을 뜻한다고 해석하고 있음.
  • 곰쟁이 - 고개[고개] 북상골에서 곰쟁이로 넘어가는 고개
  • 굴 - 바위[바위] 두멍들 북쪽에 있는 바위로 굴이 여러개 있음. 현재는 입구를 막어버렸음.
  • 너드리 - 골 [골] 곰쟁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입구가 됨. 곰쟁이에서는 가장 넓은 골짜기임.
  • 돼지 - 골[골] 곰쟁이에서 북상골로 넘어가기 전에 있는 골짜리고 산돼자가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낭캐터골’이라고도 부른다.
  • 밀개 - 봉[산] 곰쟁이 남쪽에 있는 산으로 밀개처럼 생겼음. 높이 391m
  • 북상 - 골(北上谷)[골] 두멍들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큰길에서 북쪽으로 난 골짜기라 ‘북상골’ 이라고도 하고, 골짜기에 있는 마을 뒤편에 복숭아 나무가 있어 ‘복상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북상골’이 되었다고 함.
  • 상여 - 봉(喪輿峯)[산] 곰쟁이 남쪽에 있는 산으로 상여처럼 보인다고 함.
  • 생인 - 봉(生人峯)[산] 북상골 남쪽에 있는 산. 송이버섯이 자생하고 잇어 8~9월이면 채취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 시루 - 산[산] 곰쟁이 북쪽에 있는 칠봉산(七峯山)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482m)로 시루처럼 생겼음. 보은의 4증8항(四甑八項)의 하나로 북증(北甑)이라고 일컬워 왔다.
  • 아랫 - 골[골] → 너드리 골
  • 양지터골 - 고개[고개] 양지터골에 있는 고개. 북상골로 넘어가는 길목이 됨.
  • 욱 - 골[골] 곰쟁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길이가 4㎞ 시루산 밑까지 이어짐. ‘윗골’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화전민이 살았으나 76년 화전정리때 폐촌되었다.
  • 작은 - 고욤나무골[골] 곰쟁이 북쪽 큰 고욤나무골 아래 있는 골짜기
  • 작은 - 골[골] 곰쟁이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 장군 - 봉(將軍峯)[산] → 채알봉
  • 장자불 - 모퉁이[모롱이] 두멍뜰 북서쪽 큰 길가에 있는 모룽이. 장작을 쌓아놓고 팔았다고 함.
  • 장작 - 터[모롱이] → 장자불 모퉁이
  • 절터 - 굴멍[골] 북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질골고개 밑이 됨. 6.25전까지 절이 있었다고 함.
  • 중티 - 고개(中峙)[고개] 곰쟁이에서 산외면 중티리로 넘어가는 고개
  • 지픈 - 골[골] 곰쟁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외면 중티리와 경계가 됨. ‘깊은골’이 변하여 ‘지픈골’이 됨.
  • 질 - 골[골] 북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길어서 ‘길골’ 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질골 - 고개[고개] 북상골에서 산외면 길탕1리 질골로 넘어가는 고개
  • 채알 - 봉(遮日夆)[산] 북상골 북쪽에 있는 가장높은 봉우리로 멀리서 보면 네귀가 나 있는 모습이 차일을 쳐 놓은 것 같이 보인다고 함.
  • 초개 - 고개[고개] 두멍뜰에서 보은읍 상초로 넘어가는 고개
  • 큰 - 고욤나무골[골] 곰쟁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 고욤나무가 많았다고 함.
  • 탕골 - 고개 [고개] 북상골에서 산외면 길탕2리 탕골로 넘어가는 고개

5. 산업

쌀, 고추, 담배


6. 기타

1992년 8월 18일 마을앞에 세운 자랑비가 있음.

법주리(法注里)

1. 위치

면적 3.67㎢. 인구 52가구 135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남쪽 4㎞ 지점으로 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아곡리(蛾谷里). 서는 청원군 가덕면(淸原郡 加德面). 남은 회북면(懷北面). 북은 염둔리(鹽芚里)와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회인현(懷仁縣) 동면(東面) 지역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柳洞)라고 부르고 구룡산(九龍山) 밑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法主)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다라 보은군(報恩郡) 회북면(懷北面) 관할이 되었으나 1946년 2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내북면(內北面) 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법주(法主. 법줄. 버드리)[마을] 옛날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 함.
  • 새 - 터[마을] 음지말 북쪽에 새로된 마을
  • 양지 - 말(陽地村)[마을] 중뜸 서북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음지 - 말(陰地村)[마을] 중뜸 서북쪽 양지말 남쪽 음지에 있는 마을
  • 조정 - 골[마을] 양지말 북쪽에 있는 마을.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절터 옆에 샘이 잇어 새들이 많이 날아왔다고 함.
  • 중 - 뜸(中村)[마을] 중간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고씨 - 터 [집터] 중뜸 동쪽에 있으며 조선 성종때 이곳에 처음 와서 살았다는 제주고씨 집터.
  • 과녁 - 바우[바위] 중뜸 남서쪽 도로변에 있는 바위. 마치 과녁과 같이 생겼음
  • 구렁이 - 골[골] 양지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구렁이가 많이 살았다고 함.
  • 굴뚝 - 샘[우물] 중뜸 동쪽에 있는 우물. 굴뚝안 같이 생겼으며 옛날 가뭄이 심하면 부녀자들이 키를 들고와 키질을 하면 3일안에 비가 왔다고 함.
  • 긴 - 골[골] 중뜸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동저울 - 고개[고개] 양지말에서 회북면 쌍암리 지바우로 가는 고개. 구리가 나왔다고 함.
  • 만지 - 골[골] 양지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목우낭 - 골[골] 음지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묵논 - 골[골] 중뜸 동쪽에 있는 골짜기. 폐농한 논이 있음
  • 물방아 - 골[골] 양지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함.
  • 바른 - 골[골] 양지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밤적 - 골[골] 중뜸 서족에 있는 골짜기로 571호 지방도 남쪽으로 회북면과 경계가 됨
  • 새터 - 고개[고개] 양지말 서쪽에 있는 고개로 회북면 쌍암리 지바우로 가는 고개
  • 소 - 말구렁이[들] 양지말 서쪽에 있는 들로 이곳에 있는 작은 마을도 같이 부르고 있음.
  • 쇠절 - 골[골] 음지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고려시대에 창건된 서절(西寺)로 가는 길목으로 ‘서절골’이 변한 것으로 보임.
  • 승지 - 골[골] 중뜸 동쪽에 있는 골짜기. 본래 ‘저승골’이라 부렀으나 불길하다 하여 ‘승적골’로 고쳐 부르다 변하였다 함.
  • 쓴 - 배낭[골] 소말구렁이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작은 - 골[골] 중뜸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장고개 - 골[골] 양지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두산장(현 청원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 절뚝 - 골[골] 중뜸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절이 있었다 하고 ‘절골’이라고도 부른다.
  • 정 - 골[골] 소 말구렁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형태 - 들[들] 양지말 서쪽에 있는 들

5. 문화유적

  • 용암- 사(龍庵寺)[절]
    양지말 서쪽에 있는 절. 1945년 3월 김홍오, 김홍득, 최재선이 옛 절터에 세운 절로 그 뒤 구룡산 밑이라 하여 법룡사(法龍寺)라 고쳐 부르고 있다.
  • 민속
    - 장승재 :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마을 입구에 있는 석장승에 장승제를 지내고 있으며, 동은 남자. 서는 여자라 함.
    - 산제당 : 매년 음력 정월 닷새날 마을 뒷산에 있는 산신당에 실시하고 있음.

6. 집성

처음 제주고씨가 마을을 창설하였으며 순홍안씨도 거주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는 없으며 동주최씨와 경주김씨가 각 10여호씩 거주하고 있음.


7. 산업

인삼, 과수, 담배


8. 집성

1994년 9월 1일 건립한 마을 유래비가 마을입구에 있음

봉황리(鳳凰里)

1. 위치

면적 1.627㎢. 인구 67가구 171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1.5㎞ 지점으로 면에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산외면(山外面). 서는 도원리면 (桃源里), 남은 성암리(聖岩里), 북은 청원군(淸原郡) 미원면 (米院面)에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 부렁바위가 잇으므로 봉황(鳳凰) 이라 하였는데 1906년 보은군에 편입 주성면(酒城面) 지역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사평리(沙坪里), 도엽리(桃葉里) 일부를 병합하여 봉황리로 하여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도리 -비(桃李葉)[마을] 봉황 북쪽에 있었던 마을. 마을 뒷산과 뚝에 복숭아 나무가 많아 ‘도엽’이라 부르다 변한 것임.
  • 모래 - 부리(沙坪)[마을] 도리비 동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는 현재의 전답이 전부 모래땅이 어서 ‘모래뻘’ 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임
  • 벌 - 뜸[마을] 마을광장 서남쪽에 있는 마을
  • 새 - 뜸[마을] 마을광장 북쪽에 있는 마을
  • 주막 - 뜸[마을] 마을광장 동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삼남에서 서울로 가는 삼남대로변에 주막이 있어 ‘주막거리’ 라 불려왔으나 마을이 형성된 후 새로 부르는 이름

4. 기타지명

  • 가는 - 골[골] 도리비 남쪽에 있는 가는 골짜기
  • 가마소 -들[들] 도리비 남서쪽에 있는 들. 아주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함.
  • 구 - 들[들] 도리비 동남쪽에 있는 들로 성티리 입구로 연결되고 있음.
  • 굴 - 바우[바위] 주막듬 동북쪽 굴바우산(28m) 에 있는 바위. 청벽밑에 천연굴이 있는데 바닷가의 굴을 닮았음.
  • 굴바우 - 산 [산] 굴바우가 있는 산
  • 낭사 - 대[대] 모래부리 서쪽에 있으며 이승칠(李承七) 의사가 자결하였음.
  • 말목 - 들[들] 봉황 북쪽 청원군과의 경계에 있는 들. 전에 흐르지 않던 하천이 어느날 흐르게 되자 보를 막아 물을 끌어 농사를 짓기 위해 각자의 경계 표시로 말목을 박았다 함.
  • 모래벌 - 청벽[벼랑] 모래부리 서쪽에 있는 천연 절벽. 높이가 100m 정도이며 청벽(절벽) 밑에 달천이 흐르고 모래밭이 광대함.
  • 비둘기 - 굴[굴] 굴바위에 있는 굴. 비둘기가 전에 떼를 지어 살았으나 지금은 똥만 남아 있다 함.
  • 살구재 - 고개[고개] 모래부리에서 청원군 미원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옛날 삼남대로(三南大路)가 통하는 길목임. 고개 정상에 고목의 살구나무가 있다 함.
  • 살목 - 개[냇물] 봉황입구에 흐르는 달천(達川)의 다른 이름.
  • 삼발 - 골[골] 가는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조선시대 삼을 재배하였던 곳이라 함.
  • 새 - 들 [들] 모래부리의 남쪽에 있는 들. 전에 이곳에서 처음 보를 막아 경작하면서 먼저 막은 보를 이용하는 들을 ‘구들’ 이라 부르고 이곳은 새들이라 부른다 함.
  • 새 - 평[냇물] 굴바우 아래 흐르는 달천의 다른 이름
  • 속구 - 바우[바위] 청벽산 봉우리에 솟아있는 바위
  • 아칠 - 고개[고개] 모래부리에서 창리장터로 넘어가는 고개
  • 원모랭이 - 들[들] 모래부리 동남쪽 산외면 경계에 있는 들
  • 작은도리비 - 골[골] 도리비 남쪽에 있는 골짜기. 현 봉황리 서북쪽이 됨
  • 장수 - 발자국[바위] 절터거리에 있는 바위로 커다란 발자국이 있음
  • 절터 - 거리[골] 봉황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함.
  • 청벽 - 산[산] 모래부리 서쪽에 있는 산.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되어있음.
  • 치마 - 바우 [바위] 속구바우 서남쪽에 있는 바위. 청벽산 옆으로 느리워진 모습이 치마를 펼쳐놓은 것처럼 보임.
  • 큰도리비 - 골[골] 도리비 남쪽에 있는 골짜기. 입구에 ‘이승칠항왜의결비’가 있음.
  • 함박 - 골[골] 모래부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호구 - 앞[바위] 모래부리 동쪽. 굴바우 아래에 있는 바위
  • 호룡 - 수(虎龍水)[늪] 모래부리 동쪽 호구암 아래에 있는 달천의 늪(沼). 옛날에 용이 살았다고 함.

5. 문화유적

  • 마을회관터
    옛날 야간보통학교(2년제) 가 있었으며, 후일 내북초등학교의 모체가 되었다.
  • 이의사승칠공항왜의결기념비 (李義士承七公抗倭義決記念碑)
    일본 명치천황(明治天皇)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복입기를 거부하고 청벽산 낭사대에 올라가 장열히 순절한 이승칠을 기념하기 위하여 큰도리비골 입구에 건립한 비로 내북면 애향동지회에서 매년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6. 집성

경주이씨(慶州李氏)


7. 산업

고추. 인삼


8. 전설

  • 절터와 장수발자국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고 그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전성기때는 많은 승려와 신도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때 주지승이 참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었다. 처음엔 그저 생각뿐이더니 시간이 갈수록 미치게 먹고 싶었다. 아무리 참을래야 참을 수 없던 주지승은 절은 빠져나와 인가가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달밤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않도록 어느 한 집에 들어가서 닭장에서 닭을 한 마리 훔쳐 가지고 절에 돌아와 잡아 먹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법당에 들어와 혼자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으며 중얼 거렸다.
    “중이 고기맛을 보면 빈대를 남기지 않는다는데 참으로 고기는 맛이 좋구나.”
    주지는 다시 부처앞에 꿇어 앉아 참선을 다시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주지는 등이 가려워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깜짝 놀랐다. 법당안이 언제 들어왔는지 빈대가 우글 거리고 있었다. 주지는 장삼에도 온통 빈대가 천지였다.
    빈대는 법당뿐만 아니라 절안 모든 건물로 심지어는 마당에까지 우굴거려 도저히 사람이 견딜 수가 없었다.
    주지승은 물론 다른 승려들도 모두 절을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신도들도 빈대 때문에 절을 찾을 수 가 없었다.
    주지승 한 사람의 파계는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 다른 사람이 모르게 비밀스럽게 저지른 일이지만 하늘과 땅 그리고 부처님은 알고 죄에 대하여 벌을 준다는 본보기인 것이다.
    그런데, 주지가 빈대에게 곤욕을 치를 때였다. 갑자기 법당문이 스르르 열리고 키가 장대같이 큰 무시무시한 신장이 나타나서 법당에 조용히 앉아 있는 부처를 업고 사라진 것이다.
    지금 이 절 아래 장수 발자국은 그 신장의 발자국이 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번창하던 절은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9. 기타

마을회관 앞 광장에 1991년 9월 10일에 건립한 ‘살기좋은 우리마을 자랑비’가 있다.

상궁리(上弓里)

1. 위치

면적 3.6㎢. 인구 20가구 52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8㎞ 지점으로 면의 남부에 위치하며 동은 이원리(泥院里), 서는 용수리(龍壽里), 신궁리(新宮里), 남은 하궁리(下弓里)와 보은읍(報恩邑), 북은 아곡리(峨谷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지역으로 궁뜰 위쪽이 되므로 웃궁뜰 또는 상궁(上弓), 상궁평(上弓坪)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궁리(中弓里) 일부를 병합하여 상궁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궁 - 뜰(弓坪)[마을] → 상궁리, 뒷산이 활처럼 생겼음.
  • 건너 - 말[마을] → 음지말
  • 상 - 궁(上弓)[마을] → 상궁리
  • 상 - 궁평(上弓坪)[마을] → 상궁리
  • 아래 - 궁뜰[마을] 상궁리, 상궁저수지 아래가 됨.
  • 아랫 - 말[마을] 상궁리의 중심마을, 옛날에 마을 뒤 느티나무에 해마다 황새가 서식했다고 함.
  • 양지 - 말[마을] 아랫말 서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음 - 동(陰洞)[마을] → 음지말
  • 음지 - 말(陰洞)[마을] 아랫말 남쪽 음지에 있었던 마을. 물건너에 있어 ‘건너말’ 이라고도 하였으나 80년 수해로 폐동되었음.
  • 황새 - 말(鶴忖)[마을] → 아랫말

4. 기타지명

  • 가장 - 골[골] 양지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좁은 골짜기가 많고 골이 아름답다.
  • 건너 - 들[들] 양지말 동쪽에 있는 들
  • 골바위 - 들[들] 19번 국도 상궁입구 남쪽에 있는 들
  • 궁 - 제(弓堤)[못] → 상궁저수지
  • 남상 - 바우[바위] 아랫말 동쪽에 있는 바위. 큰 폭우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고 돌아간다는 큰 바위로 남생이 모양이라 함. ‘남상’은 ‘남생’의 고어임.
  • 남상바우 - 둠벙[못] 아랫말 동쪽 남상바우 아래에 있는 둠벙
  • 노티 - 고개[고개] 상궁리에서 보은읍 노티리로 넘어가는 고개
  • 노티 - 골[골] 양지말 남쪽 노티고개 아래 골짜기
  • 모래 - 봉[산] 아랫말 남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447m. 산이 황폐해서 나무가 없고 모래가 많았던 산이라 함.
  • 부새 - 골[골] 양지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던 곳이라 하며 ‘버새골’이라고도 부르고 있음.
  • 부새골 - 고개[고개] 상구에서 보은읍 노티리 불당골로 넘어가는 고개.
  • 불무 - 골[골] 아랫말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불무’는 ‘풀무’의 고어로 전에 농기구를 벼리는 대장간이 있던 골짜기로 생수공장이 건설되어 있음.
  • 십작 - 재[고개] 아랫말에서 이원리 다락골로 넘어가는 고개. 큰 길이 개통되기 전 마을을 드나들던 길이라 함. 마을 입구에 사립문 같다 하여 붙이 이름임.
  • 상궁 - 저수지(上弓貯水池. 궁제)[못] 양지말 서남쪽에 있는 저수지
  • 선경 - 들[들] 아랫말 동쪽, 삽재들 북쪽에 잇는 들, 맨처음 신작로가 났던 곳.
  • 숫초 - 골[골] 아랫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안산 - 들[들] 아랫말 동쪽에 있는 들. 청룡안쪽에 있다하여 ‘청룡안’ 이라고도 부르고 있음.
  • 얼음 - 바위[바위] 선경들 북쪽에 있는 바위. 음력 4월까지 얼음이 얼었다 하여, 빛이 하얀 것이 마치 얼음처럼 생겼다 함.
  • 절터 - 골[골] 건너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절이 있었다 함.
  • 청룡 - 안[들] → 안산들
  • 큰 - 골[골] 모래봉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 푯대 - 봉[산] 건너말 서쪽에 있는 산. 전에 산봉에 푯대를 꽂았다고 함.
  • 활미 - 골[골] 아랫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 함.

5. 문화유적

  • 민속
    - 산제당 : 마을 뒷산에 있는 산제당에서 매년 정월에 날짜를 정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있음.
    - 성황당 : 삽작고개에 지금도 남아있고 장승이 있다.

6. 산업

  • 담배, 고추
  • 산업체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반료음료(주) 상궁리 201 탄산음료 40

서지리(西枝里)

1. 위치

면적 2.65㎢. 인구 27가구 83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11㎞ 떨어진 면의 남부에 위치하여 동은 산외면(山外面), 서와 북은 두평리(斗坪里), 남은 보은읍(報恩邑)과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지역으로 서갖, 서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지리(西枝里)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서 - 갖(西村)[마을] 터골 동쪽 500m 지점에 있었던 마을로 서쪽에 있는 터골이 살기좋다 하여 이전하고 현재 한집만 살고 있다. ‘서갖’은 ‘섭갖’이 변한 것으로 ‘섭’은 ‘섶’(薪)의 고어로 나뭇가지가 우거진 것을 뜻함.
  • 서지 - 리(西枝里)[마을] → 서갖
  • 터 - 골 [마을] 서지리의 본마을. 풍수지리설에 살기좋은 곳이라 하여 터골이라 한다고 함. 삼태기 모양으로 생겼음.

4. 기타지명

  • 갑둔-데(冠창峯)[산] 터골 북쪽에 있는 산(416m). 3.1운동때 마을에 살던 윤정훈(尹鼎勳). 구열조(具悅祖) 의사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 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 너름 - 골[골] 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넓다고 함.
  • 노적 - 봉(露積峯)[산] 터골 동쪽 관모봉 기슭에 있는 봉우리(225m). 모양이 노적가리처럼 동그랗게 생겼음.
  • 노정미 - 골[골] 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노적봉과 서갖 사이가 됨. ‘노적미’가 변하여 ‘노정미’가 되었음.
  • 뒷개 - 뜰[들] 터골 남쪽에 있는 들. 상궁저수지 완공후 모두 논으로 되었음.
  • 뒷 - 골[골] 터널 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뒤가 되므로 ‘뒷골’ 이라고 불르고 있음.
  • 뒷골 - 고개[고개] 터골에서 두평리 북상골로 넘어가는 고개
  • 문필 - 봉(文筆峯)[산] 터골 남쪽에 있는 산(338m).
  • 물건너 - 들[들] 터골 남쪽에 ‘뒷개들’ 앞 보청천 건너에 있는 들. 1980년 수해때 유실된 뒤 제방을 새로 축조하고 복구하였음
  • 바른 - 골[골] 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홍두깨처럼 골이 바르게 빠져 내려왔음.
  • 서갖 - 골[골] 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 성 - 산(城山)[산] 터널 남쪽에 있는 산. 노고성(老姑城)이 있음.
  • 아래 - 승지골[골] 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윗승지골’ 아래에 있음.
  • 윗 - 승지골[골] 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장승 - 골[골] 터골 서쪽 마을 입구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 입구에 돌탑이 있고 이곳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
  • 진사 - 터[골] 터골에 있는 집터. 진사가 살았던 곳이라 한다.
  • 질마 - 재[고개] 터골 서남쪽에 있는 고개. 보은읍 중초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질마처럼 생겼다 함.
  • 질마재 - 골[골] 터널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끝에 질마재가 있다.

5. 문화유적

  • 구수팽 묘(具壽彭 墓)
    서갖골에 있는 능성인(綾城人) 증이조참판(贈吏曹嵾判) 구수팽(具壽彭)의 묘로서 묘갈비는 숭정대부원임의정부우찬성겸홍문관제학세자좌빈객(崇政大夫原任議政府右贊成兼弘文館提學世子左賓客) 송근수(宋近洙)가 짓고 종사랑휘경원참봉 (從仕郞徽慶園參奉) 송응수(宋膺洙) 가 쓴 것으로 1880년에 세웠다.
  • 돌탑
    터골 마을 동쪽과 서쪽 입구 산모롱이 앞에 있으며, 여러 개의 금줄이 쳐져 있다. 서돌탑은 전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원추형으로 쌓아 놓았는데 높이 135Cm, 지름 287Cm이다. 옛날에는 탑 위에 거북이모양의 돌이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동쪽탑은 30~50Cm 크기의 막돌을 원추형으로 쌓아 올렸는데 높이 214Cm, 지름 270Cm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돌탑돌을 ‘장군(將軍)’이라 부르고 있다.
  • 선돌
    터골 마을 입구 길가에 서있다. 사각주형에 가까운 자연석으로 상단부는 뾰족하다 높이 90Cm, 너비 45Cm, 두께 33Cm이고 여러개의 금줄이 쳐져있다. 마을 사람들이 ‘지신(地神)’ 이라 부르고 있으며 선돌과 돌탑을 합하여 ‘동구지신(洞口之神)’ 이라 부르고 동제를 지내고 있다.
  • 민속
    - 동신제(洞神祭) : 마을 입구에 있는 2개의 돌탑과 선돌에서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동신제를 지내고 있다. 동제의 순서는 선돌에 먼저 제사를 지낸 다음 서쪽 돌탑과 동쪽 돌탑에 차례로 제사를 지냄.

6. 산업

고추, 벼

성암리(聖岩里)

1. 위치

면적 1.87㎢. 인구 42가구 88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1㎞ 지점인 면의 북쪽에 위치하여 동과 남은 적음리(積陰里), 서는 창리(倉里), 북은 봉황리(鳳凰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 성암(聖岩)바위 밑이 되므로, 성암이라 불렀는데 1906년 보은군에 편입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다라 백동(栢洞)을 병합하여 성암리라 해서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바우 - 밑[마을] 성암리의 중심마을, 바위 절벽 밑에 있는 마을이다.
  • 백 - 동(栢洞)[마을] → 잣나무골
  • 잣나무 - 골(栢洞)[마을] 잣나무골에 있었던 마을. 옛날 전주 이씨(全州 李氏)가 한양에서 낙향하여 은둔생활을 하면서 주위에 잣나무를 심어 잣이 성했다 함.
  • 장승 - 배기[마을] 바위밑에 딸린 마을. 대원군 당시 경주김씨(慶州 金氏) 가문의 선비가 유생들을 가르치며 마을의 번영을 위해 장승을 세우고 빌었다 함.

4. 기타지명

  • 가마소 - 들[들] 바위밑 동북쪽에 있는 들, 물 주위에 검은 돌로 쌓여있어 연못이 검게 보였다 하여 ‘가마소’라 불렀다 함.
  • 구 - 들[들] 가마소들 동쪽 흑천 건너에 있는 들. 150여년 전 김교동씨의 외조부가 봉황리에 보를 막아 경작을 하자 봉황리의 들을 ‘새들’이라 하고 성암리의 들은 전부터 있던 들이라 하여 ‘구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늘미 - 골[골] 바위밑 남쪽에 있는 골짜기. 꼬리처럼 길게 늘어졌다고 함.
  • 능천 - 골[골] 바위밑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덤 - 바우[바위] 바위밑 서북쪽 있는 바위. 크고 웅장한 바위가 포개져 있고 절벽이 가파르다 함.
  • 덤바위 - 골[골] 바위밑 서북쪽 덤바위가 있는 골짜기.
  • 덤바위 - 들[들] 바위밑 남쪽 덤바위 동남쪽에 있는 들
  • 등 - 너머[골] 바위밑 북쪽에 있는 골짜기. 동네에서 고개를 넘어 있는 골짜기임.
  • 문앞 - 들[들] 바위밑 남쪽에 있는 들. 동네에서 문을 열면 펼쳐지는 들이 한눈에 들어와 문을 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하여 문앞들이라 부른다 함.
  • 북대 - 월[골] 바위밑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면에서 보낸 대(大)자형의 산이 양쪽으로 느리워 있음.
  • 삼밧 - 골[골 바위밑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삼을 처음 재배한 곳.
  • 성 - 암(聖岩)[바위] 바위밑 뒤에 있는 바위. 벼랑으로 되었는데 매우 영검하고 성스럽다함. 밀양 박씨(密陽 朴氏)의 선대인 대제학(大提學) 순간공이 청년시절 밀양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중 이 곳에 이르러 기암절벽과 바위의 자태가 기묘하여 풍류를 즐기고 떠날 때 이 바위를 성스럽다 하여 성암(聖岩)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 바위아래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이 되기도 하였다. 바위 위에 말발굽이 있다.
  • 아실기 - 고개[고개] 바위 밑에서 창리로 넘어가는 고개. 동네에서 떠나보내는 남정네들을 아낙네들이 이 고개에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흐느꼈다 함.
  • 옥녀 - 봉(玉女峯)[산] 바위밑 동쪽에 있는 산(375m). 옥녀산발형으로 맞은편 작은산 (289m)은 거울이며 작은산 아래 세 개의 바위는 빗이라고 한다.
  • 잣나무 - 골[골] 잣나무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잣나무가 많았다 함.
  • 장작 - 터[골] 잣나무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 안식원이 자리잡고 있다.

5. 산업

고추, 벼


7. 기타

1982, 1984, 1985년도에 범죄없는 마을로 세 번 선정 되었음.

성티리(城峙里)

1. 위치

면적 1.7㎢. 인구 26가구 69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남방 4㎞ 지점으로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동은 적음리(積陰里), 서와 북은 대안리(大安里), 남은 아곡리(峨谷里)와 이원리(泥院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酒城面) 지역으로1906년 보은군(報恩郡)에 편입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다라 성티리(城峙里)라 하여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벼 - 재(城峙)[마을] 본래 13번지 일원에 촌락이 있었으나 대화재로 마을이 전소되어 현재의 터전으로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비재’라고도 부르며 ‘벼재’라고도 부른다.

4. 기타지명

  • 골제 - 들[들] 벼재 서남쪽에 있는 들.
  • 곰골 - 재[고개] 벼재 남쪽에 있는 고개. 벼재에서 이원리 골골로 넘어가는 고개임
  • 굴봉 - 재[산] 벼재 동남쪽에 있는 산. 굴이 있음.
  • 냉갱이 - 골[골] 벼재 북쪽에 있는 골. 창리에서 벼재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로 기온이 냉하다고 함.
  • 넘 - 바우[바위] 벼재 북쪽에 있는 바위로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하고 있음.
  • 노루 - 고개[고개] 벼재 동쪽에 있는 고개.적음리로 넘어가느 고개임.
  • 노리개 - 들[들] 벼재 동쪽 노루고개 너머에 있는 들.
  • 대미 - 골[골] 벼재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 댕이 - 고개[고개] 벼재에서 바깥대안으로 넘어가는 고개. 벼재 서쪽에 있음.
  • 모이 - 골[골] → 조성방님 밭골.
  • 못 - 께[못] 벼재 남쪽에 있는 작은 연못
  • 바람 - 골[골] 벼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바람이 세게 분다고 함.
  • 방아 - 골[골] 벼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디딜방아처럼 Y자형을 하고 있음.
  • 벼 - 재(비재)[고개] 벼재에서 이원리로 넘어가는 고개. 벼랑이 있다. 고갯길이 험준하여 별이 떠오를 때까지 오른다 하여 ‘별재’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벼재’, ‘비재’가 되었음.
  • 벼재 - 들[들] 벼재 동북쪽 노루고개 넘어 노리개를 북쪽에 있는 들.
  • 벼재 - 물탕[샘] 벼재 동쪽 노리개들에 있는 샘.
  • 부처 - 바우[바위] 벼재 북쪽 샘건너에 있는 바위. 위에 부처가 있었다고 함.
  • 불당 - 골[골] 벼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뿔당골’이라고도 함.
  • 산지당 - 골[골] 벼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산제당이 있었음.
  • 상가마 - 골[골] 벼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샘건너-들[들] 벼재 북쪽에 공동우물 건너에 있는 들.
  • 작은-독작골[골] 벼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큰독작골’옆이 됨, ‘독작’은 ‘돌’의 사투리임.
  • 장살-삐알[골] 벼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조서방님-밭골[골] 벼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조서방내 산소 위토답이 있었다 한다. ‘조서방네모이골’이라고도 부른다.
  • 찬-셈[샘] 벼재 동쪽 가운데 있는 샘.
  • 큰-독작골[골] 벼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돌이 많음.
  • 팔밭-구렁[골] 벼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팔밭(화전)을 일구어 경작하였다 함. ‘팔원골’이라고도 함.
  • 희메-기[버덩] 벼재 남쪽에 있는 버덩

5. 산업

담배, 고추

세촌리(世村里)

1. 위치

면적 2.98㎦, 인구 26가구 65명(1999년 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남쪽 10㎞ 지점으로 면의 서쪽에 위치하여 동은 신궁리(新宮里), 서와 남은 회북면(懷北面), 북은 용수리(龍壽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지역으로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대대로 살고 있어 세촌(世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세촌리(世村里)라 해서 회북면(懷北面)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행정구역변경에 의하여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음.


3. 자연마을

  • 느리-울(世村里)[마을]본래 이름은 ‘누리울’이 변하여 ‘느리울’이 되었음. ‘누리’는 ‘세상(世上)의 옛말임. 임진왜란때 명나라 사람 나학천이 이여송을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곳에 이르렀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갔다고 한다.
  • 바깥-누리울[마을] 세촌리의 중심마을
  • 세-촌(世村)[마을] → 느리울
  • 안-느리울[마을] 바깥느리울 동북쪽 안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장-골[골] 바깥느리울 동쪽에 있는 골짜기
  • 개경주-골[골] 바깥느리울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깨밭-골[골] 안느리울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깨 농사가 잘 된다고 함.
  • 넌드랑-골[골] 바깥느리울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느리-골[골] 바깥느리울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마을 입구가 됨.
  • 말자라-기[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이 아래로 드리운 끝부분에 있는 골짜기를 뜻함.
  • 먹-골[골]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회북면(懷北面) 갈티리(葛峙里)로 넘어가는 길목이 됨.
  • 벼락-재[골] 바깥느리울 북쪽에 벼락재 밑에 있는 골짜기.
  • 벼락-재[산] 바깥느리울 북쪽에 있는 산(419m), '별‘은 ’벼랑‘의 고어로 큰 벼랑을 이룬 산을 말함. 옛회인 현감이 가물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 분모-골[골] 바깥느리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불무-골(治洞)[골]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쇠경-골[골] 바깥느리울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쇠를 구워냈던 흔적이 있다고 함. ‘쇠군골’이 ‘쇠근골’로 변했다가 ‘쇠경골’이 되었음.
  • 아랫-골[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안-산[산]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산 (339m). 마을 맞음편에 있음. ‘안산’은 바로 앞에있는 작은 산을 뜻함.
  • 오매기-골[골] 바깥느리울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오봉-산(五峯山)[산]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다섯임. 회북면 갈티리와 경계가 됨.
  • 작은-자라기[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장구-목이[고개] 바깥느리울 큰자라기를 거쳐 쌍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구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함.
  • 큰-자라기[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하-고개[들] 바깥느리울 동쪽. 하고개 아래 있는 들.
  • 항-고개[고개] 바깥느리울에서 회북면 고석리로 넘어가는 고개. ‘한고개’가 변하여 ‘항고개’가 되었음. ‘한’은 ‘큰’의 옛말로 ‘큰고개’를 뜻함.

5. 문화유적

  • 민속
    - 산신제 : 안느리울 북족 구룡산턱에 있는 산제당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알 산신제를 거행한 후 상 . 하에 수살제를 지내고 있음.
    - 성황당 : 항고개 마루에 있음.

6. 집성

경주 김씨(慶州 金氏) 장암공(壯庵公)후손 5호가 살고 있으며, 안느리울에 안동 김씨(安東 金氏)가 집성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2호만 있음.


7. 산업

담배, 고추, 감, 밤


8. 기타

1995년 마을 자랑비와 이장 김홍래 공적비 (里長 金洪來 功績碑)를 바깥느리울 입구에 건립 하였다.

신궁리(新宮里)

1. 위치

면적 3.47㎦, 인구 29가구 86명(1999년 말)
면 소재지로부터 남서쪽 9㎞ 지점인 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상궁리(上弓里), 서는 회북면(懷北面), 남은 하궁리(下弓里), 북은 세촌리(世村里), 용수리(龍壽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궁평리(宮坪里)와 세촌리(世村里), 신평리(新坪里)의 각 일부왕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의 상궁리(上弓里), 중궁리(中弓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과 궁평의 이름을 따서 신궁리(新宮里)라 하고 회북면(懷北面) 관할이 되었다가 1946년 (內北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갈티-골[마을] 신궁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갈티골 입구에 있음.
  • 네집-매[마을] 세촌리 입구에 있는 마을로 처음에 네 집으로 이루어져 붙은 이름임.
  • 느리울-골[마을]느리골 입구에 있는 마을. 옛 신평리(新坪里)에 으뜸되는 마을이었음.
  • 쉰-동골[마을] 쉰동골 입구에 있는 마을
  • 양지-말[마을] 느리울골 동쪽 양지에 있는 마을. 옛 궁평리(宮坪里)의 으뜸 마을이었음.

4. 기타지명

  • 가는-골[골] 쉰동골 안에 있는 골짜기. 가늘고 길다고 함.
  • 갈티-골[골] 회북면 갈티리로 가는 골짜기.
  • 느름나무-골[골]쉰동골 안에 있는 골짜기. 느름나무가 많았음.
  • 느리-골[골] 갈티골 북쪽, 세촌리 입구에 있는 골짜기.
  • 데부-뚝[둑] 상궁저수지의 제방. ‘데부’는 제방의 뜻을 갖은 일본말로 일어의 잔재가 남아 있는 특이한 예임.
  • 도덕-골[골] 쉰동골 안쪽에 있는 골짜기.
  • 번개-골[골] 쉰동골 안에 있는 골짜기.
  • 범상-골[골] 양지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범이 자주 나타났다 함. ‘범산골’이 변하것임.
  • 분산-골[골] 쉰동골 안에 있는 골짜기. 난민주택이 있엇던 곳임.
  • 불무-탕[들] 갈티골 북쪽에 있는 들. 옛날 이곳이 최대장이 운영하던 대장간이 있었다고 함.
  • 상궁-저수지(上弓貯水池)[저수지]갈티골 동쪽에 있는 저수지. 1965년에 준공되엇으며, 처음엔 ‘궁들저수지’라 불렀음.
  • 소맨-골[골] 쉰동골 안에 있는 골짜기. 소를 즐겨 매어놓던 곳임.
  • 쇠꼬-재[산] 갈티골 서북쪽에 있는 산. 옛날 쇠를 캐던 철광이 있엇음.
  • 쉰-동골(五十洞谷)[골] 갈티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회북면 애곡리 보고실 밑까지 이어지는 약 4km정도의 골짜기로 그 안에 작은 골짜기가 50개나 있다고 함.
  • 아란-산[산] 느리울골 동쪽에 있는 산. 마을 앞에 잇는 산으로 ‘아래인산’이 변하여 ‘아란산’이 됨. 높이 346m
  • 아란산-청벽[벼랑] 아란산 남쪽에 있는 벼랑.
  • 작은-논네골[골] 느리울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상궁식당’ 서쪽에 있음.
  • 차돌-배기[골] →큰골.
  • 첫-골[골] 쉰동골 안에 있는 골짜기로 첫 번째 있음.
  • 큰-골[골] 갈티골 나쪽에 있는 골짜기. 일명 ‘차돌배기’라고 부르는데 큰 차돌이 박혀 있고 골이 커서 큰골 이라고 부름.
  • 큰-논네골[골] 작은 논네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횟돌-배기[골] 갈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의 주성분이 화강암으로 되어있어 횟돌배기라고 하며, 회가 많이 난다고 함.
  • 홀개-골[골] 쉰동골 안에 있는 골짜기. 도둑이 소를 훔펴 홀개골로 들어가서 번개골로 번쩍 하고 넘어가서 소맨골에 매어 놓았다고 한다.

5. 문화유적

  • 용산사(龍山祠)
    진주 강씨(晋州 姜氏) 복천공파 선조의 제항을 올리는 사당으로 1992년에 건립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겹처마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면에 ‘龍山祠’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사우 앞에 사당건립기념비가 있다.
  • 강공희동위선사업공적비(姜公熙東爲先事業功績碑)
    1991년 건립되었으며 용산사 구내에 있다.

아곡리(峨谷里)

1. 위치

면적 1.07㎢, 인구 33가구 87명(1999년 말)
면 소재지로부터 남쪽 5㎞ 지점으로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이원리(이院里), 서는 법주리(法住里), 남은 용수리(龍壽里), 상궁리(上弓里), 북은 대안리(大安里)와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청산군(靑山郡) 주성면(朱城面) 지역으로서 아차산(峨嵯山) 밑에 있어 아차실, 아치실 또는 아곡(峨谷)이라 하였는데, 1906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보은군에 편입되어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서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의 신흥동(新興洞) 일부를 병합하여 아곡리(峨谷里)라 하고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강-아치실(姜峨谷, 峨谷)[마을] 진주 강씨(晋州 姜氏)들이 자리잡고 마을을 일으켰다 하여 강아치실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강씨는 1가구로 살지 않는다 함.
  • 아-곡(峨谷)[마을] → 아치실.
  • 아차-실[마을] → 아치실
  • 아차-실[마을] 소룡골 안쪽에 마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모든 마을을 습격하였는데 마을 앞에 숲이 울창하여 잘 보이지 않으므로 그냥 지나간 후 뒤늦게 지나친 것을 알고 아차 빠뜨렸다고 후회한 뒤부터 조상들이 ‘아차실’이라 부르게 된 것이 변하여 ‘아치실’이라 부른다고 함.
  • 청산-뜸(靑山-)[마을] 아곡리 1반 지역. 옛날 이곳이 청산현에 속하였을 때 현감이 부임 도중 이곳에서 출산을 하였다 하여 청산뜸이라 부른다고 함.

4. 기타지명

  • 고시-미[산] 아치실 동쪽에 있는 산.
  • 고시랑-골[골] 아치실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골-바우[바위] 아치실 남쪽에 있는 바위.
  • 골바우-들[들] 아치실 남쪽에 이원리 다락골에 이르는 들.
  • 도세-골[골] 아치실 남쪽 아곡학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돗대-봉[산] 아치실 동쪽에 있는 봉우리. 지형이 배안에 돛대가 서있는 형국이라 함.
  • 동냥-골[골] 아치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동기미태[들] 아치실 남쪽 선경들 서쪽 냇물 건너에 있는 들.
  • 밀개봉[산] 아치실 남쪽에 있는 밀개처럼 생긴 산.
  • 방아-골[골] 아치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산위에서 내려다보면 방아처럼 생겼다 함.
  • 바창-골[골] 아치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배-안[골] 아치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동기미태 서쪽 골짜기로 배의 형국이라 함.
  • 부무-골[골] 아치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소룡-골[골] 아치실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구룡산 아래가 됨. 본래 아치실은 이곳에 있었던 마을이라 한다.
  • 신경-들[들] 아치실 남쪽에 있는 들.
  • 신금실-골[들] 아치실 동북쪽에 있는 들. 아랫대 안까지 이른다.
  • 오-기미(玉金)[골] 아치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금이 난다고 하여 오기미라 부름. 지형이 계주형(繫舟形)이라 하여 이곳에 묘를 설치하면 상석, 입석 등을 하지 않는다고 함.
  • 장터-거리[거리] 아치실 동쪽에 있는 거리. 예전에 장이 섰다고 함.
  • 조리-터[터] 아치실 북쪽에 있는 터. 지형이 주리처럼 생겨 웬만큼 재산을 모으면 떠나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 인가가 있었으나 모두 이주하고 현재는 농지로 변하였음.
  • 투구-봉[산] 아치실 북쪽에 있는 산. 부무골 뒷산으로 투구처럼 생겼다 함.
  • 평솔-앞[골] 아치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황새-봉[산] 아치실 남쪽에 있는 산. 산형이 황새의 두 눈과 부리의 형국을 갖추었다고 함.

5. 문화유적

  • 운곡 유동화 송덕비(雲谷 庾東華 頌德碑)
    1969년 건립된 비로 아곡초등학교 교정에 있다.
  • 만취 송만순 송덕비(晩翠 宋晩淳 頌德碑)
    1970년 건립된 비로 마을 입구에 있다.
  • 의사 파평윤공정훈 송덕비(義士 坡平尹公鼎勳 頌德碑)
    1979년 마을앞 도로변에 세운 비.
  • 선돌,br/> 아치실 마을앞 19호선 국도 변에 있다. 본래 마을 입구에 서 있던 것을 1960년대 옮겨 세우고 앞면에 ‘재건’이라 음각하여 놓았다. 판석형의 편마암으로 높이 170㎝, 너비 55㎝, 두께 20㎝로 정동 쪽을 향하고 있었으나 도로확장시 없어졌다.
  • 민속
    -산신제: 마을 뒷산 구룡산 하단부에 있으며, 매년 정월 13~15일 중 택일하여 행사하고 있음.
    -수구막제:마을입구 국도 19호선 도로변에 돌장승이 2개 있으며, 산신제를 행하고 난 뒤 제를 올리고 있음.

6. 산업

고추, 담배.

염둔리(鹽屯里)

1. 위치

면적 3.8㎢
면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대안리(大安里), 서는 청원군 가덕면(凊原郡 加德面), 남은 법주리(法住里), 북은 화전리(花田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 지역으로 염둔(鹽屯)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법주리(法住里) 일부와 보은군(報恩郡) 주성면(朱城面) 염둔리(鹽屯里) 일부를 병합하여 회북면(懷北面)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다. 1988년 한국화약 보은공장 건설로 마을이 없어지고 주민은 모두 이주하게 되었다.


3. 자연마을

  • 빗기-실[마을] 염둔 서남쪽에 있었던 화전민 마을.
  • 산-막(산막)[마을] 염둔 남쪽에 있었던 마을. 동서남북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고 그 중심에 마을이 있었다.
  • 염둔(鹽屯)[마을] 염둔리의 중심이였던 마을.

4. 기타지명

  • 가장골[골] 산막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청벽이 많고 경치가 좋았던 곳이라 가장골이라 불렀다고 함.
  • 감바지터-골[골] 빗기실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까치밭-골[골] 빗기실 서남쪽 청원군과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로 까치가 무리지어 살고 있다하여 부르게 되었다 함.
  • 구렁-이[골] 산막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구렁이가 많이 살았다 함.
  • 노적봉[산] 산막 동쪽에 있는 산.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생겼다 함.
  • 눗적-골[골] 산막 서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에서 보이는 산이 비스름히 누워있는 형태라 함.
  • 만수리-골[골] 산막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만-줄[골] 산막 남쪽에 있는 골짜기. 벼농사의 수확이 많이 나고 들이 넓어서 붙인 이름.
  • 만치나무-골[골] 산막 남쪽에 있는 골짜기. ‘만줄’의 북쪽이 된다.
  • 메자리-골[골] 염둔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명-골[골] 빗기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무죽-골[들] 염둔 북쪽에 있는 들. 들판이 마을 경지로서는 넓다고 함.
  • 방아다리-고개[고개] 산막에서 화전리 무두리로 넘어가는 고개.
  • 방아다리-골[골] 산막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방아다리 고개 아래에 있음.
  • 방아다리-들[들] 산막 동쪽에 있는 들. 방아다리골 아래에 있음. 모양이 옛날 디딜방아 형태라고 함.
  • 백-골[골] 염둔 북쪽에 있는 골짜기. 배의 돛대같이 묘한 형태의 골짜기라 함.
  • 분무-골[골] 염둔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막 북쪽이 된다. 양쪽 마을로 흔들리는 형태라 한다.
  • 빗기실-골[골] 염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에서 산이 멀리 떨어져 있다하여 ‘빗긴산’또는 ‘빗기실’이라 부른다고 함.
  • 사랭이-골[골] 염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살-티(사흘티, 三日峙)[고개] 염둔에서 청원군 가덕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에 노인이 고개를 넘는데 고개가 길어 사흘이 걸려 넘었다고 함.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대안리→말구리 고개→살티→미티고개→청주에 이르는 길목이였다.
  • 새-골[골] 염둔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양쪽으로 큰 산이 있다 하여 ‘사이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 소시랑-골[골] 빗기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쇠-바우[들] 산막 동남쪽에 있는 들. 옛날에 들이 바위로 뒤덮이고 쇠가 나온다 하여 ‘쇠바위’라 하였다 함.
  • 여수-골[들] 산막 동쪽에 있는 들. 밤이면 여우의 울음소리가 났다고 함.
  • 왜막-골[골] 빗기실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요왕-둠벙[둠벙] 염둔 서북쪽에 있는 굼벙. 옛날에 자녀들을 위하여 용왕에게 치성을 드렸던 곳이라고 함.
  • 용년이뒷-골[골] 빗기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작은-살티[고개] 염둔에서 화전리 먹골로 넘어가는 고개. 모양이 살티고개와 비슷하다 함.
  • 잿-들[들] 염둔 동쪽에 있는 들. 마을이 없어지고 들이 되었다 함.
  • 절-골[골] 빗기실에 딸린 골짜기. 전에 절이 있었다 함.
  • 진달래-골[골] 빗기실에 딸린 골짜기. 진달래가 많다고 함.
  • 집건너-들[골] 산막 남쪽에 있는 들.
  • 탑-거리[길] 염둔 서북쪽에 있는 길. 돌로 쌓은 탑이 있었음.
  • 터-골[골] 염둔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5. 산업

  • 기업체 현황
  •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주)한화 보은공장 염둔리 111 화약류 350

용수리(龍壽里)

1. 위치

면적 23.9㎢, 인구 73가구 214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남쪽 5㎞ 지점으로 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상궁리(上弓里), 서는 회북면(懷北面), 남은 신궁리(新宮里), 북은 법주리(法住里)와 아곡리(峨谷里)에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적동(壽積洞) 용흥동(龍興洞)과 보은군 내북면의 상궁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흥과 수적의 이름에서 각기 한자씩 따라 용수리라 하고 보은군 회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도랫-말[마을] 옛날 용흥동(龍興洞)이라 부르던 마을로 아곡리와는 도랑을 경계로 마을이 형성되여 있다. 수적골의 동북쪽에 있으며 수적골을 가려면 배고개를 넘어 황새봉을 끼고 돌아야 한다.
  • 수적-골(壽積洞)[마을] 용수리의 중심마을.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농사가 잘된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수적’을 ‘수적’으로 보지 않고 ‘수적’으로 보고 한 말인 듯 하다.

4. 기타지명

  • 갈비-봉[산] 수적골 서남쪽 세촌리와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높이 406m.
  • 강상-골[골] 수적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뒷-골[골] 수적골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 등-골[골] 수적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소류지가 있다.
  • 무지-봉[산] 구룡산(九龍山:548m)을 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옛날 회인현감이 기우제를 올리던 우단(雩壇)이 있었으며, 기우제의 우리말인 무제를 올리던 곳이라 하여 ‘무제봉’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무지봉’이 되었다. 주봉이 수적골 서북쪽에 있다.
  • 배-고개[고개] 수적골 동북쪽에 있으며, 도랫말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형이 배가 나아가는 형국이라 한다.
  • 배고개-골[골] 도랫말 서남쪽에 있으며 배고개로 가는 골짜기.
  • 벼락-바우[바위] 수적골 마을 앞에 있는 바위. 벼락재 쪽으로 150m 정도의 벼랑을 이루고 있다.
  • 벼락-재[도랑] 수적골 마을 앞에 있는 도랑.
  • 탑사이-골[골] 수적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하-고개[고개] 수적골에서 세촌리로 넘어가는 고개.

5. 문화유적

  • 열녀증숙인경주이씨지문(烈女贈叔人慶州李氏之門)
    도랫말에 있는 장낙원정(掌樂院正) 정지신(鄭之信)의 부인인 경주이씨의 열녀정문으로 1557년(영조 33년)에 명정되고 1910년에 노강(魯岡)에서 배고개 아래로 이전하였다가 1992년 현위치로 다시 이건하고 정문 앞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 선돌
    적골 마을 입구 길가 좌우에 쌍을 이루고 서있다. 북쪽 선돌은 속칭 ‘할아버지’라 불리우고 사각기둥형의 편마암계 판석으로 높이 146m, 너비 36m, 두께 25m이다. 마을사람들은 ‘돌장승’이라 부르며 동제를 지내오다 중단되었다.
  • 민속
    -산제당:무지봉 하단에 있으며 매년 정월에 택일하여 올리고 있다.
    -성황당:하고개와 배고개에 있다.

6. 산업

  • 담배와 고추
  • 기업체 현황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주) 엠마뉴엘 음료 용수리 78-1 솔잎음료, 은행엑기스 20

이원리(泥院里)

1. 위치

면적 5.75㎢, 인구 78가구 214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남쪽으로 7㎞ 지점인 면의 남쪽에 위치하여 동은 두평리(斗坪里), 서는 아곡리(蛾谷里), 남은 상궁리(上弓里)와 보은읍(報恩邑), 북은 성티리(星峙里), 적음리(積蔭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보은군 내북면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문라원(門羅院)이 있었으므로 원마을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백운동(白雲洞), 웅곡(熊谷), 누곡(摟谷)을 병합하여 이원리(泥院里)라 하고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1934년 중초리(中草里)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되여 소재지가 되었으나 1984년 다시 창리(倉里)로 옮겨갔다.


3. 자연마을

  • 곰-골(熊谷)[마을] 이원 동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곰이 이 마을 부근에 많이 살았고 자주 나타났다고 함.
  • 다락-골(樓谷)[마을] 이원 서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에 다래나무가 맣았다 함. 지금도 ‘큰곡골’에는 다래나무가 많다고 함.
  • 도장-이(道場)[마을] 곰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원님이 청주 왕래 도중 쉬어가면서 이곳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따뜻하며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고 물도 맑아 산수가 좋다하여 도장이라 불렀다 한다. ‘도장’은 ‘안방(樓閣)’의 고어로 산으로 둘러쌓여 안방같이 아늑하다는 뜻임.
  • 백운동(白雲洞)[마을] 이원 동북쪽에 있는 마을. 최영장군이 이곳을 지나면서 항상 마을이 구름에 덮혀있다 하여 백운동이라 했다고 한다.
  • 아랫-말[마을] 곰골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웃-말[마을] 곰골의 위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감투-바우[바위] 다락골 서북쪽에 있는 바위. 감투처럼 생겼다 함.
  • 건너-앞들[들] 곰골 서남쪽에 있는 들. 보청천 건너에 있음.
  • 곰쟁이-고개[고개] 곰골에서 두평리 곰쟁이로 넘어가는 고개.
  • 꼬깜-바우[바위] 제비티 중간에 있는 바위. 곶감처럼 생겼음.
  • 굴봉-골[골] 백운동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다락골-앞[들] 다락골 앞에 있는 들.
  • 대산-골[골] 중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대나무가 울창했다 함.
  • 도장이-골[골] 곰골에서 도장으로 가는 골짜기.
  • 뒷-골[골] 곰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뒤편에 있으며 백운동으로 통하는 골짜기가 됨.
  • 말-바우[바위] 선바우 동쪽에 있는 바위. 말처럼 생겼다 함.
  • 배나무-골[골] 다락골 앞에 있는 골짜기. 한 아람 반이나 되는 배나무가 있었다고 함.
  • 북증-산(北甑山)[산] →시루산.
  • 비재-고개[고개] 곰골에서 성티리(星峙里)로 넘어가는 고개로 ‘별재고개’가 변한 것임.
  • 비재-골[골] 이원 동북쪽 비재고개로 통하는 골짜기.
  • 산지당-골[골] 백운동 동쪽 시루산에 딸린 골짜기. 옛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제당이 있었다 함.
  • 삽작-고개[고개] 다락골에서 상궁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을을 드나드는 고개라 하여 붙인 이름으로 사립문처럼 생겼음.
  • 삽작재-골[골] 삽작고개로 통하는 골짜기.
  • 상도-골(상도골)[골] 다락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상두골’이라고도 부른다.
  • 상도골-보[보] 다락골 북쪽 보청천에 있는 보. 앞 골짜기가 상도골이다.
  • 새-들[들] 곰골 서쪽에 있는 들. 전에 논이 아닌 땅을 개답하여 새로 생긴 들이라고 한다.
  • 선-바우[바위] 도장이 남쪽에 서있는 바위. 바위가 우뚝 서 있음.
  • 시루 - 산(甑山: 48m)[산] 곰골 북쪽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시루르 엎어놓은 형국이라 하며, 속리산 아래있는 4개의 시루산 가운데 북쪽에 있다하여 북중산(北甑山) 이라 한다.
  • 웃 - 머리(上頭)[골] → 상도골
  • 작은 - 다락골[골] 다락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다래나무가 다락골보다 조금 적다함.
  • 재피 - 골[골] 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제비 - 티(燕峙)[골] 다락골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다락골에서 보은읍 상초리로 넘어가는 길이다. 골짜기의 형태가 제비의 집을 짓는 형상이라 함.
  • 중티 - 고개[고개] 백운동에서 산외면 중티리로 넘어가는 고개
  • 증산 - 골[골] 이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현 이원리와 백운동. 도장이 마을의 중간에 위치하였다 함.
  • 큰 곡 - 골(大谷)[골] 다락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다락골에서 가장 크다고 함.
  • 해골 - 바우[바위] 아랫말 남쪽에 있는 바위. 어느 장마때 해골이 떠내려와 이바위에 걸렸었다 함.
  • 호너무 - 실[골] 백운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너져내려 생긴 골로써 밤이면 돌이 구르는 소리가 난다 함.

5. 문화유적

  • 의사 석성국묘(議事 石成國墓)
    한말 의병장 한봉수(한봉수)의 참모장으로 왜병과 전투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웠으나, 1908년 적정을 탐색하기 위하여 홀로 출진하여 적들에 포위되어 중과부적으로 체포되자 온갖 고문에 굴치않고 혀를 깨물어 끊고 저항하다 마침내 자신의 성기를 뽑고 자결한 의사 석성국과 남편의 시신을 업고 고향에 돌아와 장례를 치루고 묘앞에서 자결한 그의 부인 성산 이씨(星山 李氏)를 합장한 곳이다. 1968년 내북면 애향동지회에서 묘비를 건립하고 매년 추념제를 올리고 있다.

6. 산업

고추, 담배, 1970년대까지 천연스레트 생산지로 각광을 받았으나 현재는 모두 폐광되었음.


7. 기타

1957년 개교되었던 이원국민학교가 인구감소로 폐교되었다.

적음리(積蔭里)

1. 위치

면적 3.06㎢, 인구 45가구 134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3㎞ 지점으로 면의 동북쪽에 위치하여 동은 산외면(山外面), 서는 성티리(星峙里), 남은 이원리(泥院里), 두평리(斗坪里), 북은 창리(倉里), 성암리(聖岩里), 봉황리(鳳凰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酒城面) 지역인데, 1906년 보은군에 편입되어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내저리(內底里), 외저리(外底里)를 병합하여 적음리(積蔭里)라 고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아랫 - 말(下村)[마을] 웃말 동쪽에 있는 마을. 아래쪽에 있음.
  • 웃 - 말(上村)[마을] 아랫말 서쪽에 있는 마을. 적음리에서 제일 위쪽이 됨.
  • 원 - 마루[마을] 적음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이곳이 청산현(靑山縣)에 속하였을 때 주성원(酒城院)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청산현감이 민정을 살피려고 왔을 때 자주 숙소로도 이용하였다고 함.

4. 기타지명

  • 노루 - 고개[고개] 웃말에서 창리와 성티로 넘어가는 고개.
  • 노리개 - 들[들] 웃말 서쪽에 있는 들. 노루고개 아래에 있다.
  • 뒷 -들[들] 원마루 남쪽에 있는 들. 원마루 뒤쪽에 있다.
  • 문앞 -들[들] 아랫말 남쪽에 있는 들. 마을 바로 앞이 됨.
  • 물탕 - 골[골] 웃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약수물탕이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오고 있음.
  • 미사리 - 골[골] 웃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밤소 - 보[보] 원마루 남쪽 달천에 있는 산외면 이식리의 보
  • 뱀 - 골[골] 아랫말 동남쪽에 있는 골자기. 들은 ‘뱀골들’이라 부르며 뱀이 많았다고 함.
  • 벼재 - 들[들] 웃말 서쪽에 있는 들. 성티리로 가는 길을 경계로 하여 남쪽은 ‘노리개들’ 북쪽은 ‘벼재들’ 이라 부른다.
  • 사타 - 골[골] 아랫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사태가 많이 나므로 ‘사태골’이라 부르던 것이 ‘사타골’이 됨.
  • 새들 - 보[보] 원마루 북쪽 달천에 설치된 산외면 이식리의 보.
  • 새시 - 골[골] 웃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숫가마 - 골[골] 웃말 서쪽 물탕골 옆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이곳에서 숯을 구웠다고 함.
  • 엄나무 - 고개[고개] 아랫말에서 원마루로 넘어가는 고개. 엄나무가 많았다고 함.
  • 옥녀 - 봉(玉女峯 :454m)[산] 원마루 북쪽에 있는 산. 옥녀가 머리를 산발한 형국이며, 뻗어 내린 주령이 거문고 형이라고 함. ‘백옥산’ 이라고도 부른다.
  • 원도랑이 - 들[들] 원마루 북쪽에 있는 들. 달천이 서쪽으로 굽이치는 지점에 있음.
  • 재피 - 골[골] 웃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큰골 왼쪽이 됨.
  • 차돌백 - 골[골] 아랫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천적 - 골[골] 아랫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차돌백골 왼쪽이 됨.
  • 참 - 샘(寒泉)[샘] 웃말 서쪽 노리개들 가운데 있는 샘. 아무리 가물어도 그치는 일이 없고 물이 차고 맛이 좋다고 함. ‘찬샘’이 변한 것임.
  • 칠봉 - 산(七峯山)[산] 적음리 남쪽에 잇는 산. 봉우리가 일곱으로 한남금북정맥 줄기로 이원리와 경게가 되며, 주봉이 시루산임.
  • 큰 - 골[골] 웃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큼
  • 홍께 - 울[골] 웃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홈통으로 물을 댔기 때문에 ‘홈께울’이라 부르다 변한 것임.

5. 문화유적

  • 청산현 주성원터((靑山縣 酒城院址)
    적음리 47-1번지 원마루에 있는 조선시대 청산현 주서원터.

6. 산업

  • 고추, 담배
  • 기업체 현황
  • 업체명 소재지 생산품목 종업원수
    (주)라인실업 적음리 286-1 장애자용 차량 57
    (주)산마을 적음리 80-1 식료품 조미료 30
    (주)라인실업 제2공장 적음리 285-1 장애자용 밧데리카 20
    산마을 소개 적음리 80-1 엑상소스 효모 5

7. 전설

  • 유씨와 어미소
    옥녀봉 아래 적음리 91-1번지와 99번지는 적음리에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는 릉유씨 집터라고 한다.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유씨는 앞산인 시루봉 아래 새가달린 어미소를 메어 놓았는데 시루봉에 살고 있던 호랑이가 내려와 송아지를 잡으려 하자 ‘어미소가 호랑이와 맞써 싸워 마침내 호랑이를 잡았다 한다. 유씨는 매우 기뻐하였으나 호랑이와 싸워 이긴 어미소는 사나워져 매일같이 집을 돌며 날뛰기 시작하므로 마침내 유씨는 살지 못하고 가솔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한다. 그러므로 처음 마을을 이룩한 유씨들은 한집도 살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8. 기타

1993년 6월 15일 마을회관 앞에 마을 자랑비를 건립하였음.

창리(倉里)

1. 위치

면적 5.7㎢, 인구 98가구 258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 면의 북부에 위치하여 동은 성암리(聖岩里), 서는 화전리(花田里), 남은 대안리(大安里), 적음리(積蔭里), 북은 동산리(東山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酒城面) 지역인데, 청산현 사창(社倉)인 10칸의 주사창(酒社倉)이 있어 창말 또는 창리(倉里)라 하였는데 1906년 보은군(報恩郡)에 편입되어 주성면(朱城面) 소재지가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천곡리(泉谷里)와 엽동(葉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창리라 해서 내북면(內北)에 편입되었다. 1984년 이원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되어 소재지가 되었다.


3. 자연마을

  • 엽 - 골(葉洞)[마을] 창말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사창의 짐을 운반하던 우마를 매었던 곳으로 작은 역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역골’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옛날 솟대가 있었다고 한다.
  • 장 - 터[마을] 창리에 있는 마을로 전에 5일장이 섰었던 곳임.

4. 기타지명

  • 곰 - 티(熊峙)[고개] 창말에서 대안이로 넘어가는 고개. 곰이 자주 넘어다녀 밤에는 인적이 일찍 끊어졌다 함.
  • 도리 - 들[들] 창말 동남쪽에 있는 들. 돌이 많아 농사짓기가 어려웠다 함.
  • 도리들 - 못[못] 도리들 서쪽 끝에 있던 못으로 지금은 메워 어린이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음.
  • 명지 - 골(명지곡)[들] 창말 서쪽에 있는 들. 골이 따뜻하고 명당자리가 많은 곳이라 함.
  • 비석거리 - 들[들] 창말 서남쪽에 있는 들. 내북중학교 앞이다.
  • 샘 - 골[들] 창말 동쪽에 있는 들. 집터가 있었던 곳으로 샘에 무지개가 자주 생겼다고함. ‘생골’이라고도 부른다.
  • 엽골 - 들[들] 창말 동남쪽 엽골 앞에 있는 들.
  • 옻 - 샘[우물] 엽골 서쪽에 있는 샘. 옻오를 때나 피부병에 효험이 좋다고 함.
  • 잔자리 - 들[들] 창말 남서쪽 창리교 건너편에 있는 들.
  • 케 - 들[들] 창말 서쪽에 있는 들. 하천 옆에 있는 들이라 갯들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5. 문화유산

  • 주성산성(酒城山城, 朱城山城)
    염골 남쪽 주성산(酒城山 : 360m)에 있다. 북동의 산봉우리에 남서로 달리는 2개의 산봉우리를 잇는 능선과 그 북서의 사면을 이용하여 반달의 형태로 쌓은 634m의 산성으로 현재 붕괴되었고 1개소의 우물자리가 남아있다. 삼국시대에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어모장군김서경신도비 (禦侮將軍金恕憬新道碑)
    엽골마을 입구에 있다.
  • 면장방창우공적비 (面長方昌雨功績碑)
    창말 내북파출소 옆에 1982년에 건립되었다.
  • 선돌
    엽골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다. 본래 현재의 비석이 있는 곳의 돌탑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새마을 사업으로 도로확장을 하면서 돌탑과 함께 철거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한다. 높이 120Cm의 편마암으로 전혀 다듬지 않은 자연상태의 사각기둥형이며, 상단부는 뾰족하다. 매년 정월 14일 탑제를 지냈으나 철거후 중단하고 있으며 선돌도 방치된 상태이다.

6. 산업

담배, 고추

하궁리(下弓里)

1. 위치

면적 2.95㎢, 인구 14가구 51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남쪽 11㎞ 지점으로 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보은읍(報恩邑), 서는 회북면(회북면), 남은 수한면(水汗面), 북은 신궁리(新宮里), 상궁리(上弓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지역으로서 궁들(穹坪) 아래가 되므로 아래궁뜰 또는 하궁평(下弓坪) 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율성리(栗城里)와 회인군(懷人郡), 동면(동면)의 신평리(신평리). 율성리(율성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하궁리(下弓里)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겅검 - 바우(乾金岩)[마을] 하궁리의 중심마을. 앞산에 있는 바위에서 염료로 쓰는 겅금이 나므로 겅금바위라 하던 것이 변한 것임.
  • 대수 - 리[마을] 겅검바우 남쪽에 있는 마을. 수한면과 경계 아래 있는 화전민 마을로 70년대 화전정리시 이주하고 현재는 1가구만 있음.
  • 윗 - 궁뜰[마을] 겅검바우 상궁저수지 위에 있는 마을.
  • 하 - 궁평(下弓坪)[마을] → 하궁리

4. 기타지명

  • 겅검 - 바우(乾金岩)[마을] 겅검바위 앞산에 있는 바위로 겅금이 나므로 겅금바위라 부른다.
  • 까치메기 - 골[골] 겅검바위 남쪽에 있는 골짜기.
  • 까치목 - 재[고개] 겅검바위 동남쪽에 까치메기골 위에 있는 고개로 보은읍 노티리로 넘어가는 고개임.
  • 노티 - 고개[고개] 겅검바위 동남쪽 까치목재 남쪽에 있는 고래로 보은읍 노티리 딴동네로 넘어가는 고개임.
  • 노티 - 골[들] 노티고개 아래 골짜기
  • 대수 - 골[골] 겅검바우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노티골 아래에 있다.
  • 반목 - 골[골] 대수리에서 수한면 산척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 새청 - 골[골] 겅검바우 남쪽에 있는 골짜기. 까치메기골과 대수골 중간에 있음.
  • 선반 - 다리[산] 겅검바우 남쪽에 있는 산(375m). 선반을 올려놓은 것처럼 생겼음.
  • 쇠종 - 골[골] 대수골에 딸린 골짜기./li>
  • 재피 - 골[골] 겅검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li>
  • 진 - 들[들] 겅검바우 남쪽에 있는 들. 넓지 않고 길기만 하므로 ‘긴들’이라 부르던 것이 ‘진들’로 변하였음.

5. 문화유산

  • 내북면장김도식송덕비(內北面長金道植頌德碑)
    1971년에 건립되 송덕비
  • 민속
    - 산제당 :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산신당에서 매년 정월 14일 산제를 올렸으나 방범관계로 경찰에서 산신당 파괴후 중단됨.

6. 집성

경주 김씨(慶州 金氏)


6. 산업

담배, 고추


화전리(花田里)

1. 위치

면적 5.08㎦, 인구 67가구 193명(1999년말)
면 소새지로 서쪽으로 2㎞ 지점인 면의 서북쪽에 위치하여 동은 동산리(東山里), 서는 청원군(淸原郡), 남은 염둔리(鹽屯里), 북은 도원리(桃源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酒城面)지역으로 1906년 보은군(報恩郡)에 편입되어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묵동(墨洞), 수평동(水坪洞), 염둔리(鹽屯里) 일부와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 염둔리(鹽屯里) 일부를 병합하여 화전리(花田里)라 하고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음.


3. 자연마을

  • 먹-골(墨洞,웃말) [마을] 화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전에 먹을 생산하였다고 함.
  • 무-두리(水坪 ) [마을] 화전 2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로 아랫말 남쪽에 있음. 마을 앞으로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평평한 들판이 있어 ‘물들’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솔-정 [마을] 집넘어 동쪽에 있는 마을
  • 아랫-말(下村 ) [마을] 무두리 북쪽으로 먹골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집-넘어 [마을] 아랫말 남쪽에 있는 마을. 등성이 넘어에 마을이 있음.
  • 하-촌(下村 ) [골] → 아랫말

4. 기타지명

  • 괫-들(棵坪 ) [들] 무두리 동쪽에 있는 들. 옛날 오얏나무가 많았으며 그 나무로 기둥들 만들었다 하여 괘들이라고 하였다고 함. 전에 마을이 있었으마 모두 경지로 변하였음.
  • 괫들-보 [보] 무두리 앞 괫들에 물을 대는 보.
  • 구렁-고개 [고개] 아랫말에서 동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 국사-봉(國師峯:586m) [산] 먹골 북쪽에 있는 산. 청원군과 경계가 됨.
  • 꽃다리-봉 [산] 먹골 북쪽에 있는 산. 꽃봉우리 같이 생겼음. 화전리 지명의 근원이 되는 산임.
  • 노적-봉(露積峯:366m) [산] 무두리 동쪽에 있는 산. 노적가리처럼 생겼음.
  • 독작-골[골] 먹골의 북서쪽에 있는 골. 돌이 많다하여 ‘독작골’이라 함.
  • 뒷-골[골] 먹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뒷-보[보]→ 괫들보
  • 말랑-들[들] 먹골 남서쪽 산위에 있는 들.
  • 먹-골[들] 먹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명박-골[골] 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명지-골(名地谷)[골] 먹골 동쪽이 있는 골짜기.
  • 무두리-보(水坪洑) [보] 무두리 앞에 있는 보.
  • 무두리앞-들[들] 무두리 동쪽에 있는 들. 마을 앞이 됨.
  • 무주-골[골] 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물방-골[골] 무두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물레방아가 있었으므로 ‘물레방아골’이라던 것이 줄어서 ‘물방골’이 되었음./li>
  • 방다리-고개[고개] 무두리에서 염둔리로 넘어가는 고개. 방아처럼 생겼음.
  • 방아다리-골[골] 무두리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방아다리 고개로 이어진다.
  • 살티-재(三日峙)[고개] 무두리 서북쪽에 있는 고개. 집넘어에서 염둔리로 이어짐. 옛날 노인이 삼일동안 이 고개를 올라가 이 곳에서 죽었다고 함.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대안리의 말구리 고개→살티→미티고개→청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 삼일-재(三日峙) [고개]→살티재
  • 샛골[골] 집넘어와 작은 살티 사이의 골짜기
  • 솔정-펀던[버덩] 솔정 서쪽에 있는 버덩. 소나무가 많았다 함.
  • 아랫말-들(下村坪)[들] 아랫말 남쪽에 있는 들
  • 앞-보[보] 무두리보
  • 작은-뒷골[골] 먹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뒷골의 아래가 됨.
  • 작은-살티[고개] 집넘어에서 염둔리로 넘어가는 고개.
  • 지신덕-골[골] 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길게 올라간 골이라 하여 ‘지신덕골’이라 부른다고 함.
  • 집넘어-들[들] 집넘어 서쪽에 있는 들.
  • 집넘어-개울[개울] 화전리 중앙을 흐르는 시냇물.
  • 찰방-산소[묘] 솔정펀던에 있는 찰방 벼슬을 하였다는 황씨묘./li>
  • 청안산-바우[바위] 무두리 앞 도로변에 있는 바위
  • 큰-살티[고개]→살티재
  • 함막-골[골] 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홀팅이-골[골] 무두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법주리까지 이어짐.

5. 문화유산

  • 운곡유공동화기념비(雲谷庾公東華記念碑)
  • 경주이공창우기념비(慶州李公昌雨記念碑)
    1971년 중학교 부지를 회사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비들임
  • 민속
    - 탑 제 : 매년 정월 14일과 7월 칠석에 마을입구에 있는 돌장승 밑 돌탑에서 거행되고 있음.
    - 성황제 : 매년 정월 대보름과 칠석에 집넘어에 있는 성황당에서 거행되고 있음.

6. 집성

  • 전주 이씨(全州 李氏)
    조선 명종때 먹골에 입향
  • 장수 황씨(長水 黃氏)
    조선 성종때 무두리에 입향

7. 산업

고추, 담배


8. 기타

1996. 3. 2 마을회관 앞에 마을 자랑비를 건립.